조개구이 조개구이 이예경 입 꼭 다문 조개들이 바구니에 그득 큰 것과 작은 것, 동그란 것과 길쭉한 것 화로 위에 올리니 코를 간질이는 바다내음 풍기며 여기저기서 팍!팍! 소리내며 입을 벌인다 즙 많고 쫄깃쫄깃 고소한 맛 내 입안에 바다가 그득하다 행복한 입맛이지만 조개한테는 미안하다 자작 시 2012.08.01
노약자석 노약자석 이예경 만원전철을 타면 항상 경로석이 궁금하다 오늘따라 청년이 앉아있다 서있는 노인 한분이 그 자리가 탐나서 힐긋 “이봐 일어낫! 여긴 경로석이야” “넷!” 청년이 엉거주춤 천천이 일어나는데 의외로 그는 심한 지체장애자였다 저런! 모두가 찔끔 했지만 에헴! 노인은 .. 자작 시 2012.08.01
빈자리와 노숙자 빈자리와 노숙자 이예경 만원 전철역에 비어있는 한자리 반가워 냉큼 앉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람” 악취를 못 이겨 슬그머니 일어서고 말았다 옆자리 남자는 큰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끄적거린다 영어와 한자로 유식하게 써내려간다 다음 역에서 밍크코트 여자가 탔다 빈자리를 .. 자작 시 2012.08.01
나이든 티 나이든 티 이예경 과천역에서 전철을 탔다 용산역에서 어머니와 만나기 위해 동작역에서 옆에 애기엄마가 앉았다 등에 업힌 아가와 내 눈을 맞추니 방긋 웃는다 락꿍! 했더니 계속 웃는다 아가 손을 만졌더니 내손가락을 꼬옥 잡고는 오호! 자기 입으로 끌어당긴다 아가에게 환영받고 내.. 자작 시 2012.08.01
비바람 지난 후 비바람 지난 후 산자락 초입부터 시냇물소리 좔좔좔 기세좋게 달려와 잡념을 날려준다마는 숲은 높은가지에 달린 물방울 뿌리며 발걸음을 긴장 시킨다마는 잔가지들이 땅을 덮어 비바람의 기세를 뿜어낸다마는 고목나무등걸이 뿌리째 덩그라니 처참하게 길을 막고 누웠다마는 고개들.. 자작 시 2012.08.01
그때 그 시절 1 그때 그 시절 당신은 회사원, 나는 철부지 신부감 그렇게 한국에서 만났지마는 당신은 철부지 대학생, 나는 직장인으로 신혼생활이 미국에서 시작되었지요 그러다 준비도 안된 부모가 되었지요 출근길에 세식구가 함께 집을 떠나면 엄마는 아빠를 학교앞에 내려주고 아가를 먼 동네 한.. 자작 시 2012.07.29
아버지 1 아버지 88미수를 맞으신 아버지 귀, 눈, 말씨까지 어눌하시더니 거동조차 힘들어 하시네 대신 아파드릴 수도 없고 좁은 가슴으로 포근하게 안아드릴 수도 없고 겨우 안마를 해드리며 큰사랑 갚을 길 없어 웁니다 아버지 너른 등에 업혀 흔들리며 안심하고 잠들어 꿈꾸던 시절 그 믿음직한.. 자작 시 2012.07.29
엄마 없는 밤 1 엄마 없는 밤 "큰언니 무서워!" 간 큰 고양이가 지나가나 저벅저벅 지붕위 발자국소리 세상은 어둠 속에 파묻히고 고향 내려가시는 어머니께 큰소리 쳤는데 내색할 수 없는 무섬증이 덮쳐 연탄 갈 일이 아득한데 동생들 앞에서 티를 안내려고 옛이야기 다 해주고, 지어서 또 한다 귀가 쫑.. 자작 시 2012.07.29
어머니의 정원 1 어머니의 정원 암투병 이기시고 여신 첫 개인전 여든 둘 대단하신 우리 어머니 목단, 도라지꽃 나리꽃에 연꽃이 향을 뿜어내며 어머니의 정원에 나란이 앉아 기다리네 꽃송이 사이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비와 새는 어머니의 솜씨를 자랑하네 그 꽃밭에 앉아계신 우리 어머니 영락없이 꽃.. 자작 시 2012.07.29
등을 펴세요 1 등을 펴세요 앞서 걸어가시는 구순 어머니 구부정한 등 애기 걸음거리로 생을 짚어가신다 등을 펴라 늘 반듯하세 걸어라 타이르시던 말씀 어디 두셨나 내게 전해주신 그말씀 내 등은 펴 주시더니 세월의 무게가 버거우신가 볼 때마다 자꾸만 더 굽어지네 건강의 상징이시던 우리 어머니 .. 자작 시 2012.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