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외딴 골목길 - 황인숙 아주 외딴 골목길 - 황 인 숙 이 외딴 골목길 빗방울도 처마에 부딪혀 자주 발 딛지 못하는 곳 길이라기보다는 틈 낡은 장롱 같은 집들의 틈 그 틈, 더 좁아지지 않도록 시멘트로 다져놓았다 길인 듯 아닌 듯 숫기 없는 사람은 그 앞에서 발길을 돌릴 것이다 인기척 없는 집들의 인적 없는 이 외딴 골목.. 명 시 산책 2011.06.05
낙화 - 이형기 낙화 (落花) - 이 형 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 명 시 산책 2011.06.05
꽃진 자리에 - 문태준 06/03 18:28 꽃 진 자리에 - 문 태 준 생각한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꽃잎들이 떠난 빈 꽃자리에 앉는 일 그립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붉은 꽃잎처럼 앉았다 차마 비워두는 일 ) 명 시 산책 2011.06.05
봄 길 - 정호승 < 봄길>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 명 시 산책 2011.04.11
있는 힘을 다해 있는 힘을 다해 이상국 해가 지는데 왜가리 한 마리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저녁 자시러 나온 것 같은데 그 우아한 목을 길게 빼고 아주 오래 숨을 죽였다가 가끔 있는 힘을 다해 물속에 머릴 처박는 걸 보면 사는 게 다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명 시 산책 2011.04.09
시 쓰기 시 쓰기 마종기 높고 먼 산을 향해 힘껏 돌 하나 던지기 매일 또 안간힘하며 돌 하나 더 던지기 돌 맞은 산이 간지럽다고 나보고 하하 하얗게 웃을 때까지 내 몸 하나 던지기 던진 몸들 발 앞에 쌓여 앞산이 한 발짝쯤 물러설 때까지 아니면 뒷산이 목을 돌려 뒤돌아 볼 때까지 아득한 맥박을 깨워 내 몸.. 명 시 산책 2011.04.09
그때는 설레었지요 그때는 설레었지요 황인숙 그때는 밤이 되면 설레어 가만히 집 안에 있을 수 없었지요 어둠이 겹주름 속에 감추었다 꺼내고 감추었다 꺼냈지요. 만물을 바람이 어둠속을 달리면 나는 삶을 파랗게 느낄 수 있었지요 움직였지요 삶이 움직였지요 빌딩도 가로수도 살금살금 움직였지요 적란운도 숲처럼 .. 명 시 산책 2011.04.09
별 - 공재동 별 즐거운 날 밤에는 한개도 없더니 한개도 없더니 마음 슬픈 밤에는 하늘 가득 별이다 수만 개일까 수십만 개일까 울고 싶은 밤에는 가슴에도 별이다 온 세상이 별이다 명 시 산책 2011.03.30
이 순간 / 피천득 피천득 / 이 순간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 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현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현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 명 시 산책 2011.03.23
시를 읽는다 / 박완서 시를 읽는다 / 박완서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 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 명 시 산책 2011.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