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부는 날 /윤수천 바람부는 날 [윤수천] 바람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억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아라 풀들이 바람 속에서 넘어지지 않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손을 굳게 잡아주기 때문이다 쓰러질 만하면 곁의 풀이 또 곁의 풀을, 넘어질 만하면 곁의 풀이 또 곁의 풀을 잡아 주고 일으켜 주기 때문이.. 명 시 산책 2009.11.16
11월.....나희덕 11 월 - 나 희 덕 바람은 마지막 잎새마저 뜯어 달아난다 그러나 세상에 남겨진 자비에 대하여 나무는 눈물 흘리며 감사한다 길가의 풀들을 더럽히며 빗줄기가 지나간다 희미한 햇살이라도 잠시 들면 거리마다 풀들이 상처를 널어 말리고 있다 낮도 저녁도 아닌 시간에, 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절에, 모.. 명 시 산책 2009.11.04
늦가을의 소원 - 안도현 늦가을의 소원 - 안 도 현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빛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 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명 시 산책 2009.11.04
얘야, 너 요즘 무슨 속상한 일이라도 있냐. 자훈 (慈訓) - 윤 효 얘야, 너 요즘 무슨 속상한 일이라도 있냐. 지난 시제 때 이 에미가 울안 가득 국화꽃을 피워놓았는데도 아무 말이 없더라. 네가 통 말이 없으니 이 에미 목에 생선가시 걸린 것만 같더라. 얘야, 너 정말 이 에미 모르게 무슨 속상한 일이라도 있는 것이냐. 하기야 요즘같이 바쁜 세상.. 명 시 산책 2009.11.02
낙엽끼리 모여 산다 -조병화 낙엽끼리 모여 산다 - 조 병 화 낙엽에 누워 산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 명 시 산책 2009.10.31
과거로의 여행 자동차 소리 요란하고 사람들이 떼지어 다니고 매미도 한꺼번에 창공을 울음으로 가득 채워 자지러지는 그런 도회지 한 가운데 앉아 내 나이 백년의 한 가운데에 이르러 나는 어린 시절의 그 한적함이 몹시도 그립다. 사람 사람 사람.... 그러나 그리운 사람은 없는 그런 사람 사람 사람의 홍수 속에서,.. 명 시 산책 2009.10.21
대추 한 알 - 장석주 대추 한 알 - 장 석 주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린 몇 밤, 저 안에 땡볕 한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 명 시 산책 2009.09.29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신달자 에세이 신달자 에세이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일반인들에게는 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신달자 시인. 그녀가 2008년 3월 [민음사]를 통해 펴낸 에세이집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를 중심 으로 카톨릭 신문과 조선타운플러스에 게재된 기사를 발췌하여 그.. 명 시 산책 2009.09.09
열 애 / 신달자 열 애 / 신달자 손을 베었다 붉은 피가 오래 참았다는 듯 세상의 푸른 동맥속으로 뚝뚝 흘러내렸다 잘 되었다 며칠 그 상처와 놀겠다 일회용 벤드를 묶다 다시 풀고 상처를 혀로 쓰다듬고 딱지를 떼어 다시 덧나게 하고 군것질하듯 야금야금 상처를 화나게 하겠다 그래 그렇게 사랑하면 열흘은 거뜬히 .. 명 시 산책 2009.09.09
봄길 - 정호승 봄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당 사이의 모든 꽃잎들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 명 시 산책 2009.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