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에 무슨 일이?

과천 역사문화산책 문원길

이예경 2019. 12. 30. 16:03



10월의 화창한 날에 해설사와 함께하는 역사문화산책 문원길을 다녀왔습니다.

과천에서 터를 잡은지 34년. 평소에 청계산을 주1회 다녀오고 있는지라

문원동 일대를 잘 아는데 어떤 역사가 있을지 한편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일행은 대공원나들길 입구에서 운동화 차림을 오전 10시에 만났습니다

남자 해설사님이 나오셨고 우리는 산쪽으로 조금 가다가 해설을 듣기 위해 벤치에 모여 앉았습니다

과천의 일반적인 역사 이야기로 시작하여 옜날 사진을 몇장 보여주셨습니다


과천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입니다. 학교 역사가 100년이 넘었다지요


문원동 일대의 논에서 모내기를 하는 모습입니다. 사진을 보니 제가 1986년 봄에 이사왔을때 생각이 났습니다.유치원생 막내가 문원동 논에서 잡아온 올챙이를 보여주던 일, 집에서 키워도 한참 후 올챙이 뒷다리가 나와 신기해 하던 적이 있었지요. 여름 밤, 창문을 열고 누우면 개굴개굴 청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잠들던 일이 엊그제 같이 남아있네요.


이 그림은 1960년대 관문사거리 인데 동네 어르신의 증언에 따라 작성한 지도랍니다

현재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당시에는 관문사거리 큰길 중간에 고목나무가 있었다고 하니까요


일행은 동쪽 대공원 방향으로 길다라 걸어갑니다


왼쪽에 대공원주차장이 끝나는 곳에 길이 갈라지면 우리는 오른쪽 서울대공원 야구장 팻말을 보며 아스팔트 길로 따라 올라갑니다. 

가는 길에 지각생 일행 한 분이 오셔서 길에서 반갑게 만났습니다

해설사는 숲길을 가기전에 숲해설도 해주고 나무에 대한 깊은 내용을 알려주었습니다

나무는 평생 한자리에서 살다가 죽지만 자기 몸을 지키고 지혜롭게 살아간다고 하였습니다 


10여분 올라가다가 왼쪽에 정자가 나오고 오른쪽으로는 문원동으로 넘어가는 등산로가 나오는데요

완만하지만 오르막 숲길이니 미끄러지지않게 조심하면서 계속 올라갑니다




과천시립 문원도서관 안내가 나오더니 내리막길로 이어집니다


문원동 주차장에 도착하니 저멀리 산중턱에 비석이 보였습니다.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의 증손자의 묘역에 가보로 했습니다. 백번도 더지나간 길인데 처음 알았네요

묘역에 올라 보니 양지바르며 탁트인 시야 건너편에 산이 보이고 명당의 조건을 갖추고 있네요


우의정 정문형 묘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정문형(鄭文炯)은 세종91427~연산군7(1501) 시대에 살던 분으로

증조는 조선개국공신 삼봉 정도전 조부는 정진, 아버지는 정 속, 어머니는 경주이씨 배위는 정길홍의 따님 동래정씨입니다

세종29914470 별시문과에 급제, 정자 감찰 예조좌랑을 지내고 세조1(1455) 교리로서 좌익원종공신2등에 녹훈되었지요. 이후 예조정랑 재직시에 또한번 기생을 불러들여 음주한 죄로 장형을 받았어요. 1464년 경상도 관찰사로 갔고 이듬해 진주에 살던 소훈 윤씨 어머니의 병환을 잘 돌보지 않았다는 죄로 의금부의 국문을 받고 파직되었습니다. 그래도 정도전 가문의 후광 덕인지 1466년 함길도 절도사 장예원판결사를 거쳐 이듬해 동지중추부사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고 합니다..



성종3(1472) 병조참판 평안도관찰사 형조판서 황해도관찰사 호조판서 1494 공조판서로 산릉 1495 우의정에 승진되고 궤장을 하사받았으나 이해 용렬하고 탐학한 재상이라는 탄핵을 받고 영중추부사를 하였어요. 연산군41498 무오사화때 김종직을 대역죄인으로 논단하였다 연산군7년에 과천 묘역에 잠들었다고 합니다



문인석입니다


문원동 주택가를 지나면서 보니 집집이 커다란 과실수가 자라고 계절이 계절인지라

감, 모과, 꽃사과 또는 이름 모를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어 보기 좋았습니다


영보수녀원에 가봅니다.




















문화재 이미지

효자 최사립정문[과천시 향토유적 제3호]

정려는 충신, 효자, 열녀 등을 왕명(王命)에 의하여 조정(朝廷)에서 그 훈공 미덕(勳功美德)을 정문을 세워 표창하고 액자(額字)에 새겨 하사함을 말한다.

최사립(崔斯立)은 1505년 과천 막계(果川莫溪)에서 출생하여 살았던 효자로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그 지극한 효행(孝行)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정각은 소실(燒失)되고 하사받은 액자(額字)만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으므로, 충효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과천시에서 1995년에 정각을 복원하고 2011년도에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