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노후설계

은퇴 이후 길어진 노후 어디서 지낼까

이예경 2016. 6. 23. 17:11

길어진 노후, 어디서 보낼까?

글 송양민 가천대학교 보건대학원 원장

나이든 은퇴자들이 익숙하게 지내던 것과 이별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은퇴자들의 95% 이상은 현역 시절 살던 곳에서 계속 머물러 산다. 정부의 국토균형개발 정책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인구가 좀처럼 줄지 않는 데는 이런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물론, 아직 소수이기는 하지만 일단의 은퇴자들이 수도권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10년간 서울에서 타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긴 60세 이상 은퇴자들의 이동(retirement migration) 경로를 추적해 보면, 두 가지의 큰 트렌드가 드러난다.
 
첫째는 서울 아파트를 팔고 가격이 좀 더 싼 경기도 위성도시로 옮기는 행렬이다. 아파트 평수를 줄여 노후생활비를 만들려는 게 목적이다. 통계청 인구이동 조사에 따르면 2001~2010년 사이 약 40만 명의 은퇴자들이 서울에서 경기도 위성도시로 이사를 갔다. 용인·하남·분당·일산·산본·파주 지역에서 60세 이상 노인인구 비중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둘째는 서울을 떠나 아예 지방도시나 농촌으로 향하는 행렬이다. 2001~2010년 사이 약 20만 명의 은퇴자들이 수도권 밖의 지방 도시로 떠나갔다. 전국 곳곳으로 흘러갔지만 강원·대전·충북·충남 등 서울에서 150㎞ 이내에 위치한 지역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은퇴자를 끌어들였다. 서울과 가깝다는 지리적 장점에다 집값이 더 싸다는 점이 수도권 은퇴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인다.
 
지방으로 이주한 은퇴자들은 대도시에 거주할 때보다 만족스런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농촌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텃밭을 가꾸고 땀을 흘리며 사는 자신의 모습에서 또 다른 인생의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월 생활비도 150만 원 정도면 충분해 도시에서 생활 할 때보다 경제적으로 한결 느긋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무료한 여가 생활이다. 텃밭을 가꾸며 농사를 짓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은퇴자들이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무료하게 보낸다. 농촌지역이라 문화공간이 별로 없는 데다, 마을 농민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농촌이나 지방도시로 이주하려는 은퇴자들은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보고, 나름의 여가생활 플랜을 꼭 마련해둬야 할 것이다.     
 
또 은퇴자들이 아니더라도, 최근 3~4년 사이에 자연 환경이 좋은 시골에 전원주택을 마련하여 주말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이른바 '멀티 해비테이션(multi-habitation)' 현상이다. 유럽에서 시작된 '멀티 해비테이션'은 도시와 농촌 등 서로 다른 지역에 각각 집을 마련해두고 양쪽에 모두 거주하는 주거 트렌드를 말한다. 독일의 '클라인 가르텐(Klein Garten)', 러시아의 '다챠(Dacha)'가 대표적인 형태이다.
 
'멀티 해비테이션' 문화는 수도권 고속도로망의 확충으로 교통이 크게 편해지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웰빙 문화가 도시민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물론 두 집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아니면 즐길 수 없는 한계점도 있다.
 
노후자금 준비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노후를 어디서 보낼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다. 어디서 누구와 사느냐에 따라 생활비 지출 규모가 달라지고, 문화적 혜택과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범위가 결정된다. 사람들에게 노후 계획을 물어보면, 은퇴한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낼 것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 은퇴자 가운데 고향으로 돌아가 사는 사람은 2%도 되지 않는다. 언론에 농촌으로 이사를 가거나 해외로 은퇴이민을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종 실리고 있으나, 이런 사람들도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이 살던 곳에 계속 눌러앉든지, 자식들이 이사 가는 곳으로 따라가는 경향을 보인다. 이동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은퇴자들이 생활 근거지를 잘 떠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상류층은 돈이 많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주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중산층과 서민들은 자식 교육비에 돈을 쏟아 붓느라 경제적 능력이 취약해져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것을 꺼린다. 물론 돈 때문에만 같은 도시에서 계속 사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가족, 친척, 친구들을 더 부쩍 찾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자녀에게서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을 꺼린다.
 
반면 은퇴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은퇴자들의 이동이 비교적 활발하다. 미국 노년학회 조사에 따르면, 미국 은퇴자의 15%가 새로운 제2의 인생을 찾아 날씨가 좋은 곳, 생활비가 저렴한 곳,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이동을 한다. 이 가운데 5% 가량은 자기가 살던 주(洲, state)를 떠나 다른 주로 이사를 가고 있다. 미국 남부에 위치한 플로리다 주, 중서부에 위치한 네바다 주와 애리조나 주, 북서부에 위치한 워싱턴 주가 인기를 모으는 지역이다.
 
유럽 선진국들의 은퇴자들도 상당히 활발한 이동 패턴을 보인다. 유럽에서는 국경이 터져 있어서, 국가 간의 이동이 자유롭다. 그래서 은퇴자들이 친한 사람들끼리 그룹을 만들어, 물가가 싼 나라로 이사를 가는 사례가 많다. 이사를 가지 않더라도 날씨가 추운 겨울엔 2~3개월씩 날씨가 온화한 지중해 지역으로 가서 살다 오기도 한다. 이 때문에 최근 유럽연합(EU)에 가입한 동유럽 국가들은 외국인 은퇴촌(隱退村)을 만들어 돈 많은 은퇴자들을 열심히 유치하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나라는 아직 은퇴자들의 이동이 활발한 나라는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강한 독립심을 가진 고령자가 늘어나면,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처럼 새로운 곳으로 이사해서 살려는 은퇴자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노인들보다 해외여행 경험이 많고, 경제적으로 더 풍족하고, 건강상태가 더 좋은 베이비부머들이 그러한 모험을 즐기는 첫 세대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