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노후설계

은퇴후 행복에 영향주는 첫째 요건

이예경 2016. 6. 23. 16:01

은퇴 후 행복, 인간관계에 달렸다

글 송양민 가천대학교 보건대학원장

 

은퇴설계는 크게 노후자금을 마련하는 ‘재무적인 준비’와 돈 이외의 문제(여가활동과 건강관리, 주거계획 등)에 대비하는 ‘비재무적인 준비’ 2가지로 나뉜다. 비재무적인 준비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취약한 분야가 가족을 포함한 인간관계이다.

  

우리가 나이 들어서도 좋은 사람들과 꾸준하게 친분을 나누고, 취미·여가나 사회적 활동을 통해 활발하게 교류한다면 행복한 삶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우리나라 은퇴자들이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고통 중의 하나가 바로 고독(孤獨)이라는 병이다. 노후에 대부분 사회관계가 단절되어 외롭게 지내는 것이다.

  

은퇴자들의 인간관계가 원활하지 않는 이유는 2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학연, 지연과 같은 기본적인 네트워크가 은퇴 후엔 점차 힘을 잃어간다는 점이다.

젊었을 때는 이런 네트워크가 큰 위력을 발휘하지만, 나이가 들어 서로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면 영향력이 줄어든다. 그 대신 이웃과의 관계가 더 중요해지게 된다. 그런데 한국인은 은퇴 후 이웃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게 너무 서툰 모습을 보인다.

  

두 번째로는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가 은퇴 전과 은퇴 후에 크게 변화한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부부관계가 크게 변화하며, 친구들과의 관계 역시 변화가 불가피해진다. 이런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현역시절처럼 행동하는 은퇴자들이 많다. 아무쪼록 은퇴 후엔 생활의 중심이 일터에서 가정과 이웃으로 옮겨진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식하고,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하도록 해야 한다. 

  

은퇴설계에서 인간관계의 재정비를 크게 강조하는 이유는, 은퇴 후의 인간관계가 노후행복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유명한 ‘하버드대 성인발달 연구’에서 잘 드러난 바 있다. 814명에 이르는 성인 남녀의 삶을 70여 년간 추적 조사한 이 연구의 책임자인 조지 베일런트(George Vaillant) 교수는 “사람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는 것을 결정짓는 것은 지적(知的) 수준이나 계급(階級)이 아니라 사회적 인간관계”라고 강조했다.

  

원만한 인간관계는 건강한 노후를 보내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은퇴 이후야말로 사회적 관계가 더욱 중요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할 일이 많기 때문에 가족과 친구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지만, 일을 그만두게 되면 이들이 노년생활에 만족을 주는 중요한 원천임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은퇴 후에도 좋은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다양한 연령층과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좋다. 사람들은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는 경우가 많은데, 심리적 안정감은 있지만 활발하고 긍정적인 자극이 적어서 나중에는 서로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은퇴자들이 함께 모여 사는 실버타운에 가보면, 여성들은 서로 잘 어울리며 즐겁게 지내지만 남성들은 외로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남성들이 학력과 배경, 출신 등을 따져가며 친구를 사귀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자, 친구, 이웃 등과의 친밀한 인간관계는 수명을 연장하는 효과도 가지고 있다. 특히 배우자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미 시카고대학 노화센터의 조사결과를 보면, 심장병을 앓고 있는 기혼 남성은 건강한 심장을 가진 독신 남성보다 4년 정도 더 오래 살았다. 아내와 함께 사는 남성은 매일 한 갑 이상 담배를 피워도 비(非)흡연 이혼 남성만큼 오래 산 것으로 나타났다.

  

멋진 남편, 멋진 아버지로 거듭나자 

 

특히 정년 후엔 시간을 가장 많이 함께 보내는 사람이 배우자라는 점에서, 은퇴생활의 행복은 부부생활의 만족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보건사회연구원이 베이비부머들(1955~1963년생)의 부부관계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충 만족하고 산다’는 베이비부머 부부들의 비중이 무려 62%에 달했다.

  

왜 우리나라 중·장년층 부부들은 그렇게 행복하지 못한 것일까?

  

대체로 남자 배우자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조직형 인간으로 살아온 남편들은 은퇴 후 집에서 쉬면서 갑자기 무기력증에 빠지거나 아내와 자주 마찰을 빚는다. 이른바 ‘은퇴남편 증후군(Retired Husband Syndrome)’이라는 병이다. 사소한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잔소리가 심해지는 행동이 대표적인 증세다.

 

사실 남자들은 은퇴 후에 권위와 명예를 모두 상실하고 마치 삶이 끝난 것 같은 상실감에 시달린다. 후유증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직장 등 외부생활에 중심을 두고 살았다는 증거이다.

  

은퇴자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자기의 역할을 빨리 되찾는 것이다. 생활비를 벌어다주는 전통적 가장이 아니라, 아내의 멋진 친구로서, 자녀들의 멋진 아버지로서의 새로운 역할을 되찾는 것이다.

 

이런 노력은 ‘머리’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고, ‘행동’의 변화를 통해 실천해나가야 한다. 우선 가장의 권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내게 필요한 일은 직접 하는 것이 원칙이다. 아침에 커피도 끓여 먹고, 집안 청소도 하고, 간식도 만들어 먹는다. 때때로 직접 요리를 하여 아내와 아이들을 기쁘게도 해 본다. 무게만 잡는 가장이 아니라, 다정한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을 되찾아가는 것이다.

  

특히 직장 다니느라 소홀했던 아내와의 관계 회복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려면 몇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첫 번째는 부부간에 일치될 수 있는 은퇴설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 시간 나는 대로 머리를 자주 맞대고 주거계획, 건강관리 계획, 부부가 같이 즐길 수 있는 취미여가활동 등 많은 계획을 세워야 한다. 계획수립 과정에서 부부가 충분한 대화를 통해 공통점을 발견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만약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