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노후설계

4명 중 1명은 정신질환을 앓는 한국

이예경 2016. 6. 23. 15:46

한국인 4명 중 1명은 정신질환을 앓는다구요?

글 홍창형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최근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정신질환 및 정신병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아지고 있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정신질환은 정신병과 동일한 말이 아니고, 두 가지 모두 올바른 치료를 통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올바른 치료를 가로막고 있는 사회적 편견입니다.

 

 

 

정신질환, 남의 일이라고요?

 

 

 

복지부가 2011년 정신질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9시 뉴스와 중앙일간지에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3명은 누구나 평생 1번 이상 정신질환을 앓는다는 내용이 집중적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우리나라 성인 18세부터 74세까지 6,022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25개 정신질환 중 1개 이상의 정신질환에 걸릴 비율이 평생 동안 27.6%나 된다는 뜻입니다. 27.6%란 숫자는 10명 중 3명 또는 4명중 1명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01년부터 5년에 한 번씩 전국단위로 정신질환 실태조사를 하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으며 2011년 발표된 복지부 발표는 제3차 실태조사 결과입니다 (이 당시 실태조사에서 조현병을 포함한 정신병적 장애의 평생 유병율은 0.6%로 발표되었습니다). 올해 2016년에 또 대규모 실태조사가 이루어질 예정으로 연말쯤에는 제4차 실태조사결과가 발표되겠네요.  

 

 

 

 

 

 

 “아니 우리나라에 정신질환자가 이렇게 많았어?
내 그럴 줄 알았지.
어쩐지 세상이 흉흉하더라구… 쯧쯧.”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놀라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내심 걱정이 되었습니다.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치료 음성화라는 부작용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사람은 어떨까요? 미국 국립정신보건원(NIMH, 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 자료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보다 정신질환을 더 많이 앓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만 19세 이상 9,282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19개 정신질환에 대해 면접조사를 하였을 때 평생 유병률이 46.3%나 되었습니다. 10명 중 5명은 평생 동안 1개 이상의 정신질환을 앓는 셈이지요. 이쯤 되면 정신질환은 더 이상 특별한 그들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네 일상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해야 합니다.  

 

 

호흡계에 생기는 병을 호흡기 질환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호흡계는 코끝부터 폐포까지 공기가 들락달락하는 모든 공간을 얘기하지요. 그래서 감기, 기관지염, 폐렴 그리고 폐암까지 호흡기 질환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감기가 왜 호흡기 질환에 속하냐고 따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호흡기 질환에 대한 편견이 없기 때문이지요. 정신질환은 신체질환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정신 또는 마음에 병이 생겼을 때 붙이는 이름일 뿐입니다.

 

 

 

 

 

 

우리나라 30세 이상 성인 10명중 3명은 고혈압이 있습니다. 10명중 1명은 당뇨가 있구요. 심지어 모든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암은 3명 중 1명에게 걸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왜 우리는 신체적 질병이 누구나 생길 수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정신적 질병에 대해서는 관대하지 않을까요? 결국 뇌도 1000억 개의 뇌신경 세포가 모인 인체의 한 기관일 뿐입니다. 출산 이후 사망까지 아무런 고장이 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어도 ADHD, 인터넷중독, 알코올중독, 니코틴중독, 조현병, 조울병, 우울증, 공황장애, 강박장애, 수면장애, 치매, 화병 등은 전세계 어디서나 일정 비율로 생깁니다. 3만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자동차가 80년 동안 고장이 나지 않고 운행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우리의 뇌도 살다 보면 뇌 자체의 결함이나, 크고 작은 외부환경 스트레스 때문에 일시적으로 고장이 날 수 있습니다.

 

 

 

정신질환의 치료를 위해서

 

 

 

문제는 올바른 진단과 치료입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첫 단추를 잘 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문의의 올바른 진단을 통해 치료하지 않고 기다리면 저절로 낫는 병인지, 상담과 같은 비약물 치료만으로 쉽게 해결되는지, 약물치료까지 필요한지, 더 나아가 입원치료까지 필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기침, 가래, 열이 날 때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도 올바른 진단을 통해 단순한 감기인지, 폐렴인지, 폐암인지 밝혀내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이 단계가 어긋나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같은 조건에서 같은 정신질환에 걸린다면 어떤 사람이 예후가 좋을까요? 저는 단연코 증상이 처음 생겼을 때 병에 대한 인식, 즉 병식(insight)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병식이 있는 사람은 재발하지 않고 결혼생활, 직장생활, 사회생활을 잘 유지하지만, 병식이 없는 사람은 매번 스스로 치료를 중단해서 결국 재발하고 가족들이 비탄에 빠집니다. 이런 병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바로 사회적 편견입니다.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을 사회에서 무시하고 차별하는 분위기가 많을수록 “나는 절대 정신질환자가 아니다”라고 생각하여 치료를 받지 않거나, 치료를 받더라도 임의로 치료를 중단해 버립니다.

 

 

 

 

 

 

우리나라는 만원 내외의 진료비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정신과 증상이 처음 생긴 이후 치료를 받을 때까지 걸리는 기간이 평균 84주나 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영국은 30주, 미국은 52주라고 하니 우리나라는 꾹꾹 참다가 결국 집안에서 해결이 안될 때야 겨우 치료를 받는 셈입니다. 문제가 점점 더 커져서 호미가 아니라 포크레인으로 막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정신과 증상이 있을 때 정신보건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의 비율이 미국은 39%, 호주는 35%, 한국은 15%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신과 증상을 애써 외면하거나, 주변 사람들 눈치 때문에 상담과 치료를 받지 않거나, 미신적인 방법으로 스스로 해결한다는 뜻이지요.

 

 

수 많은 신체질환으로 사람들이 고통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유독 정신질환에 대해서만 일반 대중들이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지와 편견 때문입니다. 누가 이런 무지와 편견을 조장했을까요? 혹시, 정신질환을 정신병으로 둔갑시키고, 정신병 중에서도 치료를 잘 받아 우리와 함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 치료를 받지 못해 혼돈 상태에 있는 극히 일부 장면을 선정적으로 과대 포장한 언론에 책임이 있지는 않을까요? 정신질환을 의학의 관점이 아닌  사회현상의 관점으로 해석해서 치료시기를 놓치게 만드는 일부 비전문가 집단에 책임이 있지는 않을까요? 정신질환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정보를 일반대중들에게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전문가 집단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평생 4명 중 1명이라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정신질환의 문제를 실제로 가지고 있어도 보험 가입을 비롯한 후진적 제도의 차별을 철폐시키지 못하고 있는 정부의 문제는 아닐까요?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완벽한 존재가 아니고, 언제, 어디서나 불운한 사건, 사고, 질병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최선의 문제해결방법을 찾아나간다면 오해와 편견해소를 통해 정신질환은 극복될 수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 노화과학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재임중이다. 수원시 노인정신건강센터장이자 통합정신건강센터장을 겸임하고 있으며, 국내 노인 정신건강 관련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