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노후설계

노년에 대한 틀린 생각들

이예경 2016. 6. 23. 15:21

우리가 아는 ‘노년’은 틀렸다

글 오은미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선임연구원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   세뮤얼 울만 <청춘> 중에서

  

당신 앞에 백지가 한장 있다고 하자. ‘노년’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세가지만 써보라고 한다면?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부정적이거나 어두운 단어들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실제 서울대학교에서 노인의 이미지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중년 답변자 ‘거의 전부’가 부정적인 단어를 이야기했고, 노년층은 ‘전부’ 부정적인 답을 내놓았다고 한다. 혹자는 노년의 이미지를 4D로 정리하기도 한다. 노년은 의존적(dependency)이고, 무능력(disability)하며, 우울(depression)하고, 병약하다(disease)는 것이다. 낙관적 젊음이 지나가고 비관적 늙음만 남았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노년에 대한 부정적 인식 뒤에는 경제 논리가 숨어있다. 노인들이 젊은이들에 비해 효율성과 유용성이 떨어진다는 ‘시장경쟁적’ 판단이 개입된 것이다. 그래서 노인들의 이미지는 농촌보다 도시에서 더 부정적이다. 70~80세 노인들의 경우, 도시에서는 ‘진작 정년을 맞은 어르신’인 한편, 농촌에서는 아직도 형(兄)으로 불리운다.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이 경쟁의 논리와, 도시의 시선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사회상이 일그러져 있다면 우리의 자화상도 왜곡될 수 밖에 없다. 고령화시대, 노년에 대한 상(像)은 곧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멈춰서 묻고,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노년’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고, 그 중 상당수가 노년이 우리의 편견으로 인해 왜곡되어 왔음을 주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반가운 소식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것이 ‘오해’라면, 이를 인식해야 교정이 가능할 테니 말이다. 2014년 말 <월스트리트 저널>에도 ‘노년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은 틀렸다’라는 제목의 기획 기사가 실렸다. 여러 연구 사례들을 들어 우리 머리 속 노년에 대한 생각들이 과연 어디서 온 것인가를 묻는 내용이다. 조목조목 제시된 노년에 대한 새로운 시각. 그 일부를 설명과 함께 소개한다.

  

1. 노년은 외롭다?!  VS 노년의 인간관계는 더 깊고, 진하다!

 

스탠포드 대학 심리학과 카스텐션 교수는 184명의 피실험자를 대상으로 자신의 인간관계를 ‘없으면 안되는 관계’, ‘친밀한 관계’, ‘그 외’의 세 부류로 구분하게 하고 10년동안 각 그룹에 대한 친밀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조사했다(각 관계들을 아래와 같은 동심원으로 구성해 보자). 그 결과, 전반적으로 50세까지는 전체 원이 커지지만 이후 바깥쪽 원은 사라지고 안쪽 원들에 포함된 사람들과만 관계가 유지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주목할 점은 안쪽 두 원에 포함된 사람들과의 교류나 친밀도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는 점이다. 카스텐션 교수는 노년에 사회적 관계망이 줄어들 수 는 있으나, ‘가까운 지인들을 통해 충분한 정서적 만족감을 느끼고 외로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고 이 실험을 해석했다.

 

 젊은 사람들이 맺는 사회적 관계의 상당 부분은 미래를 위한 것이다. 칵테일파티에 억지로 참여해 훗날 도움이 될지 모르는 인맥을 만들어 가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지고 바빠진다. 하지만 이것이 반드시 외롭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반면 나이든 사람들은 미래보다는 현재에 초점을 맞춘다. 즉, 지금 누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인지 분명히 알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충분한 시간적, 마음적 여유를 바탕으로 그들과의 관계에 집중한다. 그래서 오히려 젊은 시절보다 깊고 풍성한 인간관계를 가꾸어 나갈 수 있다. 우정을 비롯한 인간관계는 함께 하는 시간에 비례해 깊어진다. 노년은 이를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시기이다.

 
2. 노년에는 생산성과 창의성이 감소한다?! VS 생산성과 창의성은 경험과 연륜에 기반한다!

 

미국 노동자 가운데 ‘55세 이상’은 얼마나 될까? 2014년 말을 기준으로 22%, 즉 다섯명 중 한명으로, 적지 않은 비중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55세 이상의 노동력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노년은 젊은 인력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사회적 편견을 근본적 걸림돌로 뽑고 있다. 실제, 최근 많은 기관들이 나이와 생산성은 상관관계가 없으며 특히 경험과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직종에서는 중년 이상의 인력이 보다 탁월한 수행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대표적 예가 독일 비영리 조사기관인 막스 프랑크 연구소의 ‘벤츠 불량률 연구’이다. 독일 벤츠 공장 노동자 3800명을 대상으로 4년간 불량의 발생빈도와 심각도 수준을 조사한 실험인데, 조사기간동안 젊은 인력들의 불량률은 증가한 반면, 중년 이상의 노동자 사이에서는 불량률이 오히려 감소했다. 즉, 생산성 측면에서 젊은 인력을 앞선 셈이다. 오랜 경험을 통해 직관적으로 심각한 불량과 실수를 줄이는 법은 터득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연구진은 분석했다.

  

창의성 역시, 존 레논이나 스티브 잡스처럼 요절한 젊은 천재들의 영역으로 치부되기 쉽다. 하지만 창의성은 상상과 혁신적 사고 외에도, 경험과 연륜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혁신적 문제 해결력이 필요한 순수 수학이나 이론 물리학 등의 학문 분야에서는 젊은 학자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한편, 철학이나 문학, 역사와 같이 지식과 사고의 축적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대부분 노년의 창의성이 진가를 발휘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만의 철학을 구축하고 인생 후반 가장 창의적인 작품들을 탄생시킨 예는 마크 트웨인, 폴 세잔, 프로스트, 버지니아 울프 등 전 인류의 역사를 통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시카고 대학 데이비드 갤리슨 교수가 재미난 연구를 하나 진행했다. 예술가, 시인, 소설가 300명을 대상으로 시기별 작품 가격, 논문 인용횟수, 전문 비평지 게재 건수 등을 조사해, 이른바 대표작들이 탄생한 시기를 살펴본 것이다. 그 결과, 유명 작품들이 만들어 진 시기는 현대 예술 분야를 제외하고, 대부분 50~60년대를 넘긴 인생 후반이었다고 한다. 지혜는 나이에 비례해 쌓이고, 세상은 그 지혜를 바탕으로 창조된 작품을 알아보기 때문이라고 갤리슨 교수는 설명한다. 

  


3. 노년에는 인지적 능력이 떨어진다?!  VS 상황에 대한 분석과 판단력은 더 탁월하다!

 

과거 많은 논문들에서 노인들은 인지능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을 해왔다. 하지만 그들이 내미는 근거들은 대부분 부자연스러운 인지실험 상황에서 진행된 연구 결과들이다. 가령 젊은이와 노인을 인위적으로 설정된 실험실에 앉혀놓고 제한 시간 내에 누가 더 퍼즐을 잘 맞추는지, 단어 암기를 잘 하는지 비교하는 식이다. 하지만 그렇게 긴장된 환경에서 진행하는 지능 테스트가 과연 노인들의 실제 지적 능력을 제대로 측정할 수 있을까? 

 

워털루 대학 심리학과 그로스만 조교수팀이 여기에 반기를 들었다. 관행처럼 행해져 온 인지실험들이 현실 상황에서 사용되는 인지 능력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새로운 형태의 실험을 설계한 것이다. 그로스만 연구팀은 미국인 247명을 대상으로 특정 갈등 상황을 제시하고 예측되는 결과와 해법을 작성하게 했다. 이후 실험 참여자들의 나이를 가린채 외부 전문가들에게 그 답변을 평가하도록 부탁했다. 실제 일상생활에서 빈번히 요구되는 상황 분석력과 사회적 관계에 대한 판단력 등을 측정하고자 한 것이다. 그 결과, 상위 20%안에 들었던 사람들의 연령은 평균 ‘65세’인 걸로 밝혀졌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의 뇌도 물론 구조적인 변화를 겪는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나 암기력, 집중력 등은 점점 쇠퇴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노인들의 인지능력 자체를 평가할 수는 없다. 노년에는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지식의 양이 쌓이며, 특정 영역의 지능은 계속해서 발달하기 때문이다. 특히 워털루 대학의 실험이나 우리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노인들은 현상을 다각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해법을 찾는 능력이 탁월하다.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스마트 기기들이 단기 기억이나 단순 계산 능력을 보완해 주고 있음을 감안할 때, 노인들에게는 훨씬 쓸모있고 대체 불가능한 지적 자산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