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노후설계

내 상상속의 노인의 모습, 내 미래의 모습

이예경 2016. 6. 23. 15:19

머릿 속 노년’이 내 미래가 된다

글 오은미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선임연구원


 

 

몇 해전, 예일대 심리학과에서 ‘노년의 자아’에 대한 연구[1] 하나가 진행됐다. 재연해보자면 이런 식이다. 노인과 젊은이로 구성된 팀에게 ‘스타워즈’를 보여주면서 중간중간 ‘노년’에 관련된 단어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 단어들이 노출되는 시간은 피실험자들이 인식하지 못할 만큼 짧은 ‘찰나’이며, 한 쪽에는 ‘지혜’, ‘연륜’, ‘온화함’과 같은 긍정적인 단어들을, 다른 쪽에는 ‘노쇠’, ‘노후’, ‘낡음’ 등과 같은 부정적 단어들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어떤 결과가 생길까?

 

 

 

# 노년에 대한 부정적 말들이 미치는 영향

 

 

우선, 간단한 암기력 테스트 결과부터 보자. 노년에 대한 부정적 단어에 노출되었던 노인들은 같은 팀 젊은이, 또한 긍정적인 단어에 노출되어 있었던 노인들에 비해 점수가 현저히 낮았다. 또한 부정적 단어들은 ‘손글씨 쓰기’와 ‘걷기’처럼 자연스러운 신체적 행동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영화 보기 전후의 필적과 걷는 속도를 비교한 결과, 부정적 단어에 노출된 노인들의 경우, 수행능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글씨는 흔들렸고, 걷는 속도는 느려졌다. 생리적 기능은 어떨까. 혈관 기능 역시 영화를 보기 전과 후 차이를 보였다. 부정적 단어의 노출 후, 특히 노출 후 특정 스트레스 상황에 처했을 때 혈압은 크게 상승했다.

 

 

 

 

 

 

이 뿐 아니었다. 부정적 단어들에 대한 노출은 삶에 대한 의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실험 후, 노인들에게 수명 연장을 위해 의학적 수술이나 치료를 받을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확실히 더 오래 살 수 있지만, 치료 비용이 많이 든다든가, 가족 가운데 누군가 상주해서 자신을 보살펴 주어야 하는 식의 대가가 지불되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긍정적 단어들에 노출되었던 노인들 가운데는 상당수가 비용이나 대가를 떠나 일단 치료를 받겠다고 답한 반면, 부정적 단어들이 제시되었던 노인들 대부분은 추가적인 치료를 거부하겠다고 답했다.

 

 

 

# ‘머릿 속 노년’의 이미지가 내 자화상이 된다.

 

 

왜 이런 결과가 생긴 걸까? 찰나의 순간이었으나 노년에 대한 부정적 단어들이 노인들 머리속에 내재되어 있던 ‘노년’에 대한 인식을 자극했고,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부정적 노년=노인인 나의 모습’이라는 등식이 성립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심리적인 위축이 생겨나고, 인지적, 신체적, 또한 의지적인 기능이 저하되는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하나 더 던져보자. 노인들 머리속에 내재된 부정적 ‘노년’의 이미지들은 과연 언제,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세살짜리 아이에게 할아버지 흉내를 내라고 하면 미간 사이 주름과 굽은 등을 따라한다. 가족 등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통해 1차적으로 노인에 대한 외적 이미지를 습득하는 것이다. 이후, 자라면서 접하게 되는 미디어 속 노인의 모습이나 사회적 인식을 바탕으로 노년에 대한 관념과 이미지를 형성해 가게 된다. 하지만 경쟁사회, 성과주의의 틀 안에서 노년은 나약하고, 쓸쓸하며, 무가치한 이미지로 그려지기 쉽다. 그리고 그렇게 부정적으로 정형화되고 강화된 이미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머리속에 깊게 각인된다.

 

 

 

 

 

 

우리도 실험을 하나 해보자. ‘노년, 노화, 노인’ 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머리 속에 어떤 것들이 떠오르는가? ‘늙은이처럼 사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느낌은? 아마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익숙해져 있던 ‘결핍’과 ‘결함’의 이미지들이 떠오를 것이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나이 들어가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닐까. 대부분의 경우, 그 생각들은 내가 만들어 낸 것도, 내 경험에 의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인생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길고 비중있는 시기임에도 노년에 대한 연구나 성찰, 객관적 조명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사회적 편견을 기초로 거칠게, 어쩌면 잘못 그려진 지도를 들고 노년을 헤매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내면에 각인된 고정관념을 마주보고, 왜곡되고 부정된 이미지를 떨치는 일부터 시작해보자. 심리학자인 엘리자베스 슐롬프는 노년은 크기와 길이, 넓이가 아닌 ‘깊이의 증가’가 이루어지는 시기라고 평가했다. 영부인이었던 레노르 루즈벨트 역시 노년을 아름다운 예술작품에 비유하기도 했다. 돌아보면 사회적 지평을 확장하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아름다운 노년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을 애써 노년의 ‘예외적 사례’로 구분짓는 근거는 어디서 온 것인가.

 

 

내 머릿 속 ‘노년의 이미지’가 훗날 내 자아를 형성하고, 삶의 질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만연해 있는 ‘노인’의 부정적 이미지들을 스스로 걸러내고 맞서야 할 이유는 충분해진다. 우리의 인식은 변화가 가능하다. 우리도 스스로 노년을 즐길 준비를 해보자. 노년에 대한 이미지를 치우치지 않게, 또한 긍정적으로 잡아가는 노력은 우리가 소홀히 해서는 안될 중요한 노후 준비가 될 것이다.

 

 



[1] <Journal of Gerontology> 에 실린 예일대학교 Becca R.Levy 심리학과 부교수의 논문 Mind Matters: Cognitive and Physical Effects of Aging Self-Stereotypes에 소개된 일련의 실험들을 바탕으로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