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노후설계

은퇴 후에도 자기계발이 필요할까?

이예경 2016. 6. 23. 17:07

은퇴 후에도 자기계발이 필요할까?

글 송양민 가천대학교 보건대학원 원장

 
 
우리나라 남자들은 은퇴를 하면 대부분 집에서 TV나 신문을 보며 지낸다. 심심하다 보니 아내가 밖에 나가면 “어디 가느냐”, “언제 오느냐” 꼬치꼬치 캐물으면서 아내를 귀찮게 한다. 본인이야 답답해서 그렇게 하겠지만, 갑자기 아내에게 의존하는 생활 태도는 아내에게 큰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
 
사실 일에 쫓겨 이렇다 할 취미도, 노년에 대한 설계와 준비도 없이 퇴직을 맞은 사람에겐 은퇴 후의 인생은 괴롭기만 할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처럼 실패한 남성 노인들을 ‘젖은 낙엽족’이라고 부른다. ‘젖은 낙엽족’은 자립하지 못하고 부인에게 거의 모든 것을 의존하는 노인들을 가리킨다. 마치 젖은 낙엽이 빗자루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듯 부인을 24시간 졸졸 따라다니며 한사코 붙어 있다는 뜻이다. 
 
아내들은 남편이 정년을 맞으면 가사 일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어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기대한다. 남편만 제2의 인생을 맞는 게 아니라, 여성들에게 있어서도 제2의 인생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남편이 아내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젖은 낙엽족’이 되어 오히려 간섭이 심해지면 마음이 언짢아 진다. 
 
실제로 요즘 남편의 정년을 계기로 가정에서 불화가 발생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황혼이혼(黃昏離婚)’의 비극이다. 황혼이혼은 정년이라는 생활상의 변화를 계기로 누적됐던 아내의 불만이 표면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이 회사에 다닐 때는 부부가 오랫동안 얼굴을 맞대는 시간이 별로 없다. 그러나 정년 후에 줄곧 부부가 얼굴을 맞대다 보면 티격태격 말싸움을 벌이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아내를 쫄쫄 따라다니는 ‘젖은 낙엽족’이 되지 않으려면, 은퇴 후에 할 일을 미리 준비해 두고, 아내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마음을 새롭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아내는 이 세상에서 가장 나와 가까운 사람이긴 하지만, 아내는 어디까지나 아내이고 나는 나일뿐이다. 은퇴 후에도 아내는 아내의 삶을 살아가고, 나는 나의 생활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친구 잘 사귀는 사람이 장수해
 
박상철 서울대 명예교수의 ‘한국 장수인 연구보고서’를 읽어보면, 친구를 잘 사귀고 솔직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100세까지 장수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은퇴한 후에 가급적 집에 머무르지 말고 밖에 많이 나가 친구를 사귀라는 얘기다. 친구들의 수가 많은 사람일수록 더 오래 산다는 의학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현역시절 뿐만이 아니라 은퇴 후에도 출퇴근은 필요하다. 그래야 정신건강에 좋다. 갈 데가 없으면 근처 구립도서관이나 시립도서관에 가서 책이라도 읽을 일이다. 일단 밖에 나가 활동하다 보면,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통해 인생의 새로운 전기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게 바로 ‘자기 계발’이다.
 
은퇴생활에서 강조되는 자기 계발 노력은 은퇴생활의 보람과 활력을 찾을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일반적으로 자기 계발이란 자신의 잠재력이나 능력을 밖으로 드러내어 발휘할 수 있도록 일깨워 주는 활동을 말한다. 자기 계발을 통해 은퇴자들은 근로할 때와는 다른 자신의 소질에 맞고 자신이 가장 즐거워 할 수 있는 일에 몰입할 수 있다.
 
물론 은퇴자들은 현역시절 학교와 기업을 다니면서도 자기 계발을 계속 해왔다. 그러나 그 목적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즉 현역시절에 하는 자기 계발의 목적이 대체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수단이었다고 한다면, 은퇴 후에 하는 자기 계발은 자아(自我)를 찾기 위해, 자기 인생의 목적과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또는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기 위해 한다는 것이다. 
 
자기 계발이 은퇴설계에서 이처럼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계발을 하는 중장년층은 그렇게 많지 않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55~64세에 달한 한국인 가운데 자기 계발을 하는 사람은 31.5%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정도면 높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겠지만, 선진국들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낮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스웨덴은 73%, 노르웨이는 54%, 미국은 49%, 영국은 49%, 독일은 45%, 캐나다는 42% 선을 각각 보이고 있다. 또 선진국에서는 스포츠, 음악, 미술과 같은 분야의 교육이 인기를 얻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자격증 취득, 학위 취득과 같은 목적을 가진 자기 계발이 주류를 이루는 경향을 보인다.
 
은퇴 후 가장 바람직한 자기 계발 전략은 무엇보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분야, 하고 싶은 분야를 선택하는 것이다. 평소 자신의 관심사를 잘 살펴보고 앞으로 몇 년 동안 공부를 할 것인지 등 자기 계발 계획서를 미리 짜보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55세에 방송통신대 영문학과에 진학하여 60세에 졸업한다’, ‘60세에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하여 63세에 중국어 통역 자격증을 획득한다’는 식으로 자기 계발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이다.
 
자기 계발을 하는 목적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두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순수한 관심에 따른 자기계발 30%, 타인과 교류를 위한 자기 계발 30%, 사회활동(봉사, 일)을 위한 자기 계발 40% 등등이다. 자기계발의 목표와 방법, 그리고 기간 등에 대해 어느 정도 마음을 정했으면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데도 의욕만 넘치면 중간에 스스로 포기해 버리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