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후 이혼이 급증하는 이유는?
글 한혜경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언젠가 신문에서 ‘프랑스에서는 여름휴가 후 이혼이 급증한다’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여가를 중시하는 프랑스에서는 긴 휴가를 함께 보내는 부부 사이도 당연히 좋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휴가란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부부간의 애정을 확인하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기사를 조금 더 읽어 보니 이해도 갔다. 휴가 후 이혼이 급증하는 이유는 휴가기간 중에 부부가 서로 일대일로 직면하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평소에는 부부관계를 대체할 것들이 많다. 설사 부부간의 사이가 소원하다 해도 일에 파묻혀 지내거나 자녀의 뒷바라지에 열중하면서 배우자에 대한 불만을 완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휴가 중에는 이 모든 대체가 불가능하다. 일을 할 수도 없고 다른 친구를 만날 수도 없다. 그저 남편과 아내가 있는 그대로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게 되고, 이렇게 한 달 두 달 지내고 나면 ‘아니, 저 사람이 저런 사람이었어?’ 하는 의문이 점점 커지다가, 결국 더 참을 수 없어서 휴가 직후 헤어지는 부부가 생긴다는 얘기였다.
은퇴 후의 이혼, 황혼이혼도 긴 휴가 후의 이혼과 비슷하지 않을까? 은퇴 후는 인생의 휴가 기간과 같다. 자녀는 커서 부모 곁을 떠나고,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여러 가지 일에서 해방된다. 휴가지에서 문득 생각난 도시 생활이 비현실적인 전쟁터에 대한 기억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듯이, 은퇴 후에는 사회적 성공이나 돈에 대한 생각도 바뀔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앞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배우자와의 관계이다. 즉 부부관계가 새삼 중요하게 다가온다.
만일 부부 사이가 좋다면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은 쉽고 삶은 풍요롭고 즐거울 것이다. 그러나 부부 사이가 좋지 않다면? 그때부터는 정말 고역이다. 은퇴로 인한 여러 가지 위기는 더욱 심각하게 다가온다. 그토록 열중했던 일도, 완충 역할을 하던 자녀도 더 이상 가까이 있지 않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휴가를 반납할 수도 없는 노릇아닌가.
황혼이혼을 주도하는 사람이 대부분 여자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나는 우리나라 남자들이 가정에 소홀하고 일과 돈에 그토록 열중하는 것을 자신만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일터에서의 남자의 삶은 때로는 장엄하기까지 하다. 오죽하면 중년 남자의 사망률이 그토록 높겠는가. 하지만 우리나라 남자들은 가족은 중시하지만, 부부관계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중년의 남자들은 아내를 아이들의 어머니로만 보는 경향이 농후하다. 놀 때는 아내가 아닌 ‘여자’하고 논다. 그러나 은퇴 후 나이가 들면 ‘여자’는 가고, ‘아내’만 남는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앨포드-쿠퍼(F. Alford-Cooper)는 은퇴한 남편이 긍정적 자아개념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부인이 지지하고 동반자적인 관계를 형성할 때, 그리고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이 많고 평등한 관계를 유지할 때 결혼만족도가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황혼이혼을 겪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노력해야 할 것이다. 즉 부부가 서로 대면하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한다. 은퇴와 노년이라는 즐거운 휴가를 맞았을 때, 이미 너무나 멀어진 사이를 고통스럽게 발견하곤 헤어지는 프랑스 부부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둘 사이의 관계를 미리미리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나중에 둘만 남게 되었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당황해하지 않도록. 긴장과 갈등만이 남지 않도록 말이다. 지금부터 함께 노는 연습을 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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