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마음

아버지 가신지 1년

이예경 2014. 5. 16. 09:50

아버지 가신 길

이예경

 

해마다 피는 벚꽃인데 올해는 유난히 환하게 느껴진다. 작년 이맘때 노환 중이던 아버지를 뵈러 가서 툭하면 병원에서 밤을 새우던 일, 천호역에 내려 병원까지 벚꽃 만발한 가로수아래를 걷던 생각이 난다.

처음 응급실에 가던 날 전화기속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는 아버지가 급성폐렴으로 숨쉬기가 어려워 앰뷸런스를 타고 삼성병원 응급실로 가는 중이라 했다. 나는 병원으로 가는 동안 별별 생각이 다 들어 가슴이 벌렁거리고 현기증이 났다. 응급실에 도착하니 어머니와 동생들의 걱정스런 표정이 보이고. 중환자침대에서 산소 호흡기를 코에 꽂고, 소변줄, 심전도줄...등등 주렁주렁 줄을 달고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 드렁드렁 소리 내며 누워계시는 아버지는 혼수상태였다. 소변은 자주색, 이러다가 어떻게 되려는지, 최악의 상황이 오면 어쩌나 마음 각오가 필요하다.

둘째 날 새벽 5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에 깜짝 놀라 가족들이 다 모였다. 이대로 가시면 안되는데, 생명불이 꺼질까봐 서로가 할 말도 아끼고 숙연한 분위기에서 우리가 할 것은 간절한 기도 밖에 없다. 두 시간이 하루같이 흘러갔다. 혼수상태이던 아버지께서 눈을 뜨셨다. 100년 전의 의술로는 상상도 못할 현대의술은 기적이다.

말할 수 없는 감격으로 어머니가 먼저 아버지 손을 잡으셨다. 한마음으로 아버지, 아버지를 부르짖으며 딸들이 차례로 이름을 말하고 손을 잡고 뽀뽀를 해드린다. 평소에는 부끄러워 못했지만 마지막이 될 수 있다 생각되니 남들이 보거 말건 뭐라도 할 수 있다. “아버지 열이 떨어졌으니 금방 낫겠어요. 기운 내셔요.” “눈빛이 맑으시고 혈색도 좋으셔요…….” 겉으로는 벙긋벙긋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속으로는 모두가 목이 메는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다. 눈물을 삼키며 “아버지 사랑해요”를 연발했다. 우리는 아버지와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며 안아드리고 지난날 감사했던 마음을 말로 전했다. 아버지께선 환한 미소를 띠우며 간간히 응답을 해주셨다. 자리에 없는 미국 딸과 작은아버지께 국제전화로 연결해드려 작별인사를 나누시게 했다. 이역만리에 살아도 두루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감사하다.

발병 증상이 무엇이었던 간에 치료하는 건 사랑인가보다. 가족들이 모여 차례로 아버지와 1:1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머리맡의 심전도, 혈압, 호흡 등의 수치가 오르락내리락 했다.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쉬면 수치가 내려가고 이야기에 활기가 생기면 올라가는 것이다. 다같이 손잡고 가슴을 쓸어드리며 붙잡고 기도를 해드리니 표정이 편안해지셨다. 발병원인 중 하나는 고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라도 쉬면 아버지의 활기가 내려갈까봐 가족들은 번갈아 아버지가 궁금해하실만한 내용을 생각해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워낙 인자하셨던 아버지이신지라 우리는 쌓인 추억거리가 아주 많다. 옛날 일을 되돌아보면서 아버지와의 추억이 더욱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아버지도 그때 일들을 기억하신다고 끄덕끄덕 하셨다. 어버지께서 우리에게 항상 “든든한 내편”이 되어주신 것이 좋았다고 딸들이 이구동성을 하니 아버지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고비를 넘기신 아버지가 너무나 감사하다.

셋째 날, 이제는 산소 호흡기를 떼어도 정상수치가 나오니 퇴원하라고 했다. 부활하신 아버지는 소변 줄이니 이것저것 줄을 아홉 개나 매달은 채 앰뷸런스를 타고 천호동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옮겼다. 넷째 날 새벽에 미국에서 두 딸이 도착했다. 앞일을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며, 육자매는 오랜만에 만났어도 마음껒 기쁨을 표현해볼 경황도 없고, 아버지의 절망적인 상황이 슬퍼도 겉으로는 희망찬 화제로 말하면서 속으로는 저린..... 그런 마음으로 날들이 지나간다.

주치의는 폐렴이 노인들의 사망원인 1위라고 하며 음식이던 물이던 기도에 들어가면 절대 안된다고 하며 영양링거를 매달았다. 손등에 주사바늘이 안들어가서 다리에 바늘을 꼽았다. 식사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 하시던 아버지는 혀끝에 음식을 느껴보신지 며칠인가. 밥은 언제 가져오느냐고 하시지만 어쩌랴, ... 얼떨결에 일생의 식사는 이미 끝난 상태가 되어버렸으니 거즈를 적셔 입술만 축여드릴 뿐이다.

아버지께서 링거의 내용물이 뭐냐고 궁금해 하셨다. 간호사가 영양제 포도당 항생제와 위장보호제, 거담제를 넣었다했다. 그런데 나를 부르시더니 길게 뭔가 말씀하시는데 너무 어눌해서 알아들을 수가 없다. 얼마가 지났을까. 한밤중에 아버지께서 손을 허공으로 휘저으시며 링거 줄을 잡아당기고 있다. 잠시 후 또 줄이 없어져서 찾아보면 어느새 주먹 안에 꽉 움켜쥐고 계속 그러신다. 의사가 달려와 환자의 팔을 묶어야겠다고 했다. 간병은 이럴 때 정말 힘들다. 단순히 통증 때문이었을까.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냐 그런 뜻이었을까. 어느 쪽도 답답하기는 다를 게 없다.

아버지께서 아프다고 자꾸 호소하시니 나는 의사를 찾아가 언제 이 고통이 끝날 것 같으냐고 물었다. 의사는 “아무도 모르지요. 혹, 하나님은 아실까요?” 한다. 가는 날까지 고통만 없게 해달라고 당부하니 “그게 누구나 원하는 똑같은 소망인데 뜻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한다. 세상일이 그냥 넘어가는 게 없는 것 같다. 인간이 처음 이 세상에 나올 때 애기들이 좁은 데를 통과하느라 온몸이 산통을 겪고, 나비 같은 미물들도 번데기에서 빠져 나오느라 고통을 겪듯이 이 세상을 떠날 때도 좁은 길목이라 고통 없이는 지날 수 없는 것일까. 세상과 주위와 가족들과 이별하고, 몸속의 장기들과도 이별, 하나하나 차례로 기능을 잃어가고, 근육이 줄어지고 핏줄이 가늘어지고 몸 전체가 말라 작아진 뒤에야 저세상으로 갈 수 있는 것일까.

스무날 째 가족들이 병상을 지키면서 시간이 길고도 짧다는 느낌이다. 밤새 간간이 들려오는 그렁그렁 숨소리와 신음소리가 아직도 살아계시는 신호같다. 간헐적으로 팔다리에 오는 경련은 뇌세포가 하나씩 꺼지는 신호라고 하였다. 어쨌든 급한 고비를 넘긴 것 같은데 아버지 건강상태는 치료되는 것도 아니면서 고통을 호소하니, 주위에서는 환자 자신이나 남은 사람들에게나 의미가 없다며 자손들이 회의를 해야 한단다. “너 같으면 통증 속에서 아홉 개의 줄을 주렁주렁 달은 채 연결 주사바늘을 온몸에 꽂고 그렇게 오래 살고 싶으냐?” 한다. 고문을 당하듯 계신다는 말을 들으니 아버지의 고통에 나도 온몸이 조여지는 느낌이다. 절친 간호사에게 조언을 구하니 자기라면 하루빨리 퇴원시켜 모든 병원 줄을 떼고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겠단다. 그것만이 환자 본인에게 가장 편안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목전에 닥치고 보니 어쩔 줄을 모르겠다. 생명줄을 떼자마자 당장 호흡곤란, 욕창과 폐렴이 온몸으로 퍼져 금방 돌아가실 것이다. 과연 그게 정답이라 해도 나는 용단을 내릴 자신이 없다. 아버님의 불편을 줄여드린다는 결과가 엄청난 일로 연결될 것을 뻔히 예지하면서도 그것을 거절함으로 인해서 생명이 단축된다면 너무도 아쉬운 일이다.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람이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

이승을 떠날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티벳 사자의 서”란 책에서 보면, 깜깜한 동굴 같은 길을 한참 가게 되고 동굴 끝에 다다르면 갑자기 눈앞에 눈부시게 흰빛이 쏟아지면서 다른 세계로 인도된다던가. 그때 흑백 두 가지 세력이 다가오는데 사자가 선택을 해야 한다던가. 하여튼 선택을 잘 하실 수 있도록 우리가 옆에서 계속 성경과 찬송을 불러드리면 좀 편안하게 계시다 가시지 않을까 바램을 가져본다

사십 여일 지난 새벽, 꿈속에서 아버지가 내 집에 오셔서 나를 부르신다. 잠이 확 깨면서 내 가슴이 쿵 울렸다. 무조건 병원으로 달려갔다. 방금 운명하신 아버지의 얼굴은 체온이 아직 남아있었다. 오열이 절로 터져 나왔다. 만개한 벚꽃 따라 떠나신 아버지 소식에 미국동생들이 재차 왔고 남들이 하듯이 장례절차에 따라 일이 진행되었고 문상객들이 다녀갔고 자손들이 모여 일을 잘 치렀다.

해가 바뀌어 다시 벚꽃이 만발했다. 길고 길던 하루하루가 지나고 보니 때로는 꿈같이 느껴지곤 한다. 이별이 한없이 슬프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고통도 눈물도 없는 천국에서 편안히 계실 것 같기도 하다. 돌아가셨기 때문에 천국에 가신 것이 아니라 천국에 가시려고 돌아가신 것이라던 목사님의 말씀이 귀에 남는다.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와의 추억이 밀려오고 그럴 때마다 눈앞이 흐려지고 목이 메니 이제는 시공을 초월하여 어디에나 다 계신 것일까.

아버지께서는 이제는 영육이 분리되셨으니 그렇게도 그리워하시던 함경도 고향, 그리고 먼저 가신 일가친척들 모두 자유롭게 반갑게 만나보셨을까. 빨리 통일되어 할머니 산소에 흙 한 줌 뿌려드려야 한다고 벼르셨는데 거기도 물론 가보셨을 것이다. 거기도 여기처럼 벚꽃이 만발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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