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수필 산책

백임현-감당하며 살아내기

이예경 2014. 1. 12. 16:50

백임현-감당하며 살아내기

                                                                                                      백임현

 건강이 갑자기 나빠진 것은 지난해 이른 봄부터였다. 며칠 동안 몸살 비슷한 증세로 시름시름 앓더니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전신의 모든 근육과 뼈마디가 끊어지는 듯 통증이 잠시도 쉬지 않고 지속되었다. 자리에 누운 채 미동도 할 수 없었으므로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였다. 이제까지 너무도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해오던 당연한 동작이 스스로 하기가 어려웠다.

갑자기 당한 일이라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건강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체격이 왜소해서 남 보기에는 허약해 보이나 강인한 편이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앓아 누운 적이 별로 없었고, 병이 나도 악화되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 집안은 혈통적으로 무병 장수하는 내력이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도 건강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무모할 정도로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았다. 불규칙한 식사와 불규칙한 수면 그리고 집안 일이 많아 기력에 부치는 무리한 과로를 하면서도 잘 지탱해 왔기 때문에 내세울 것은 건강뿐이라고 자랑하며 살았다.

그래서 그처럼 무서운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한 며칠 고생하면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 낙관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빗나간 기대였다. 그것은 또한 순리를 무시한 오만이기도 하였다.

가볍게 생각한 병이 시일을 끌었다. 병이 나면 명의도 많고 명약도 많은 법이다. 주변 사람들이 갑자가 나빠진 내 건강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며 애정 어린 치료법을 소개해 주는 것이었다.

가까운 병원에 가서 물리 치료도 하고 한의원에서 한방 치료도 하였으나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공연히 한 달여의 시간만 허비한 셈이 되었다. 거의 참담한 심경이 되어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지금까지 다니고 있는 병원이었다.

그간 상태가 더욱 나빠져서 휠체어를 타고 진찰실에 들어선 나를 의사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담담하게 맞이하면서 가지고 간 진찰 기록과 사진 등을 검토한 다음 이런저런 것들을 차분하게 설명하였다.

평소 건강에 대해 물었다. 아주 건강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니 그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요” 하며 웃었다. 그러면 내가 지금까지 건강하다고 믿었던 것은 착각이었을까. 내 건강에 대해서 마음을 써주던 이웃 친지들의 말이 예삿말이 아니었구나 싶다.

퇴행성관절염으로 특히 무릎이 많이 상해 있고, 골다공이 심한 상태라고 하였다. 주변에서 하도 익숙하게 들어온 병명이었다. 친구들도 중년을 넘기면서 이런 증세로 고생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대개 몸이 무거운 친구들이 그런 확률이 높아서 체중이 가벼운 나는 그 점에 대해서는 안심하고 있었는데, 내 몸이 이처럼 쇠약해 있다니 당혹스럽고 착잡하였다.

병에는 예외가 없음을 의사는 말해 주면서 사람이 나이가 들면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가 세는 것처럼 그것은 병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나이 들어 감당해야 할 과정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장기간 치료를 한다 해도 완전히 회복하기는 힘들고,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남은 생애를 병을 안고 환자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로 이미 나에게 다가와 있었다. 이런 사실을 저항 없이 내 몫으로 인정하는데 아픔이 따랐다.

요즘도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고 약을 타온다. 그야말로 내 병이 자연 현상일 뿐 특별히 병이랄 것도 없어서 치료 절차는 아주 간단하다. 담당의사는 어떠냐고 묻고, 나는 그때그때 증상에 따라 여전 하다던가 조금 덜한 것 같다고 하면, 진통제를 포함한 몇 가지를 섞어 한 달치 약을 처방해 주는 것으로 치료는 끝이 난다. 처음 몇 달간은 전혀 차도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나를 치료해 주는 담당의사는 성품이 착하게는 보여도 환자를 대하는 데 있어서 남다르게 친절하거나 자상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어쩌다 나누게 되는 말 속에 환자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배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 내가 왜 이렇게 회복이 더디냐고 물으면 의사는 아주 담담한 어조로 대답한다.

“감당하면서 사셔야지요. 생활하는 가운데 그 불편에 스스로 적응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가 항상 강조하는 말은 감당하며 살라는 이야기다. 처음 들을 때는 매우 차갑고 몰인정하게 들린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의 말에는 깊은 뜻이 들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인생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진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세상에 감당하고 살아야 할 일이 어디 육신의 고통뿐이겠는가.

발병한 지 일년이 넘고 있으니 지금도 몸놀림이 자유롭지 않아 남 보기에 거북해 보일 때가 많다. 그러나 초기에 겪었던 고통이나 심적 부담은 없다. 어느 새 불편에 익숙해진 것 같다. 처음부터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예사롭다. 사람은 어떠한 여건에서도 적응하며 살게 되어 있는가 보다. 그렇다면 세상에 절대적인 불행이란 없는 것이 아닐까. 감당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의사의 말이 결국 이런 의미가 아니었나 싶다. 사람이 항상 최적의 조건에서만 살 수는 없다. 어떤 환경에서도 지혜롭게 적응해가는 생명의 힘이 경이롭다.

우리는 지난 가을 의정부 민락동(民樂洞)으로 이사를 왔다. 이곳은 산이 많은 곳이다. 여기저기 산자락에 펼쳐진 배 밭과 사철 채소를 기르고 있는 넓은 들녘이 아직 시골스러운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참나무 숲이 울창한 동산에서는 해도 뜨고 별도 뜬다. 그리고 저녁이면 때묻지 않은 달이 뜬다.

우리가 이곳으로 온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나의 건강을 위한 것도 한 몫 차지하고 있다. 다리 운동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아침이면 약수터로 물을 뜨러 가기도 하고, 일주일에 두어 차례는 능선이 아름다운 앞산으로 등산을 간다. 산마루에 올라서 보면 여기저기 산자락에 크고 작은 마을이 꿈속처럼 아련하다. 서울 근교에 아직도 이런 촌락이 남아 있다는 것에 안도와 감사를 같이 느끼며 낯선 곳에 와서 사는 외로움을 달래 본다. 아마 이곳은 예부터 나무가 잘 자라는 산과 기름진 들이 함께 어울려 농사가 잘 되고 백성들이 평화롭게 잘 살았는가 보다.

민락동(民樂洞), 산 아래 어느 마을에서 백성들의 흥겨운 농악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민락동으로 이사했다고 하면 관심 있는 사람들은 동네 이름이 좋다고 한다. 나도 이사하기 전부터 이곳을 지날 때마다 마을 이름이 인상에 남았었다. 어쩐지 모든 일이 잘 될 것 같다. 여기서 내 건강도 회복되고 집안 일도 잘 되었으면 좋겠다. 백성이 즐거운 마을에서 나도 즐거운 백성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