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수필 산책

3인칭 수필의 가능성 /정진권 -참고자료

이예경 2014. 1. 12. 16:28

3인칭 수필의 가능성-참고자료

 

세월 1-김소경

젊은 부부와 아기가 사는 방에는 장롱 같은 세간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머리맡으로 창 하나, 앞문을 열면 두어 뼘 마루요 부엌이다.

한여름이면 새댁은 마루 끝에 놓인 찬장 곁에서 미역을 다듬어 오이냉국을 만든다. 해가 기울면 저녁상에 오색보를 씌워 놓고 잠든 아기에게 가만가만 부채바람을 보내면서 골목을 지나는 발소리에 마음을 모은다. 밤이 깊어 갈 즈음, 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남편은 사과 몇 개가 든 봉지를 아내에게 안겨 준다. 아기가 깰세라 저녁상을 물리고, 그들은 장독대에 올라가 별을 보며 더위를 식힌다. 언젠가는 마련할 그들의 예쁜 집을 그려보면서 뜰에 심을 꽃나무도 미리 골라 본다. 그때를 위해 이번 일요일에도 아기의 손을 잡고 집 구경을 다니자고 한다. 세 식구의 이런 나들이는 아마도 한참 해야 할 것 같다.

한겨울 좁은 방에는 구석에 연탄난로가 있다. 난로 위에는 보리차가 끓고 둘러진 그물망에는 아기의 옷가지가 시나브로 마른다. 아침이면 남편은 아내가 따뜻하게 해 준 외투를 입고 눈길을 나선다. 저녁 장을 보러 가는 새댁은 아기에게 털실로 짠 케이프를 머리까지 씌운다. 눈길을 걷노라면 아기가 밖을 보겠다고 조그만 손가락을 움직이며 칭얼댄다. 엄마는 아기를 재운다. 아기의 숨결은 방 안 가득히 향기를 채운다. 이처럼 들려 줄 이야기가 있는 아내는 창으로 들려올 그의 발소리를 기다린다. 깊어 가는 겨울밤, 남편에게 들려 줄 이야기가 있는 아내는 창으로 들려올 그의 발소리를 기다린다.

오래 전, 겨울밤이면 머리맡에 놓아 둔 물그릇이 얼던 시절이었다.

月刊文學출판부 5매 수필의 멋과 맛2002

 

추워 보이잖아-장생주

그녀는 초등학교 6학년을 가르치는 선생님입니다. 그리고 글을 쓰는 문인입니다.

그녀는 어느 날 아들아이와 함께 재래시장에 갔습니다. 이것저것 물건을 고르고 값을 깎느라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들아이는 엄마가 답답해 보였습니다. 단돈 몇 백 원에 저리도 실랑이를 벌이나 싶으면서 엄마가 얄미웠습니다. 그러나 내색은 않고 엄마가 사 주신 물건을 들고 엄마를 따라 시장 밖으로 나왔습니다.

길가에는 남루한 옷에 추워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나물 한 바구니를 팔고 있었습니다. 그녀와 아들은 그 앞을 지나갔습니다. 그러다 그녀가 뒤돌아보았는데, 그 할머니가 자꾸만 손을 흔들었습니다. 와서 좀 도와 달라는 그 손짓, 어쩌면 저리도 측은해 보이는가. 그녀는 되돌라가 그 나물 한 바구니를 모두 사 버렸습니다.

 

엄마! 왜 값을 깎지 않아?”

, 추워 보이잖아, 할머니가.”

月刊文學출판부 5매 수필의 멋과 맛2002

 

 

시골 버스-정정자

한 시간에 한 번 뜨는 시골 버스, 첫차 놓치면 지각이다.

눈 뜨자 동동거리며 아무리 바삐 움직여도 아침 시간은 늘 모자란다. 이제 첫 차 뜰 시간까지는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바르는 둥 마는 둥 화장 5, 뜨는 둥 마는 둥 식사 5, 새벽바람 가르며 헐레벌떡 뛰어가는 정거장 길에 한없이 마음은 바쁘고 다리는 더디다. 옛날에는 축지법(縮地法)도 있었다던데.

매일 타던 사람이 혹 안 보이면 무슨 일이 있나, 다만 몇 분이라도 기다려 주는 그 착한 버스에 오르면 휴우 가쁜 숨부터 고른다.

보퉁이 든 할머니, 버스에 오르자마자 바카스 한 병을 꺼내 든다.

이보슈, 기사 양반. 이것 좀 들어 보우.”

기사 양반 빙긋 웃으며 널름 받아 단숨에 들이킨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자갈길에 살랑살랑 바람 시원히 창가로 새어들면 눈꺼풀은 사정없이 내려앉고 어느새 단잠에 빠져든다.

이봐요, 아가씨. 안 내려요? 오늘은 숙박비까지 챙겨 내요.”

기사 양반 농담에 얼굴이 붉어진 잠 많은 아가씨 허겁지겁 버스를 뛰어내린다.

지금은 잘 포장된 지난날의 그 길을 좌석버스가 시원히 내닫는다. 딸네 집엘 가는 한 초로의 여인이 내릴 데를 지나칠까 안내 방송에 귀를 기울이면서 연신 창밖을 내다본다. 여인은 자갈길에 덜컹거리던 그 시골 버스가 그립다.

수필과 비평2004. 78

 

누워서 받고 앉아서 받고 서서 받고-정진권

김 선생은 매달 연금(年金)을 받는다. 이 밖에 강사료라는 것이 몇 푼 있지만 그것은 오다가다 친구 만나 삼겹살에 소주 몇 번 하면 다 없어진다. 그러니 마나님에게 가욋돈 한 푼 못 준다. 김 선생이 학교에 있을 때는 그래도 무슨 특강이다 심사다 해서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는 것, 다 지나간 이야기다.

그런데 어느 출판사와 책을 하나 내기로 해서 오늘 계약금 50만 원이 입금되었다. 김 선생은 빳빳한 만 원짜리 새 돈으로 50만 원을 다 찾아다가 하얀 봉투에 목직하게 넣어서 마나님 앞에 슬그머니 내밀었다.

아니, 이게 뭐예요? ?”

순간 마나님의 얼굴이 쨍하고 빛났다.

돈이 그렇게 좋아?”

그럼, 안 좋아요? 더구나 남편이 주는 돈인데. , 얼마만이야, 이게?”

남편이 주는 돈은 세종대왕이 둘이래?”

그럼요. 남편이 주는 돈은 누워서 받고 아들이 주는 돈은 앉아서 받고 딸이 주는 돈은 서서 받는대요.”

불손하기는.”

그럼 엎드려서 받을까?”

마나님은 천하를 다 얻은 얼굴로 돈을 세었다. 김 선생은 모처럼 목에 힘이 갔다. , 얼마만이야, 이게?

계간수필2004년 겨울호

 

* 자신의 글을 예로 드는 것은 별로 권장할 것이 못 된다. 그러나 3인칭 수필의 가능성을 탐색한다면서 자신이 실험한 바가 없다면 그 탐색이라는 것이 너무 공허하지 않겠는가? 이해 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