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이해인 시집<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1983)
손 시린 나목(裸木)의 가지 끝에
홀로 앉은 바람 같은
목숨의 빛깔
그대의 빈 하늘 위에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차오르는 빛
구름에 숨어서도
웃음 잃지 않는
누이처럼 부드러운 달빛이 된다.
잎새 하나 남지 않은
나의 뜨락엔 바람이 차고
마음엔 불이 붙는 겨울날
빛이 있어
혼자서도
풍요로워라.
맑고 높이 사는 법을
빛으로 출렁이는
겨울 반달이여.
이해인(李海仁)은 현직 수녀로 시를 쓰고 있다. 그의 시는 내밀한 고백체로 서정적이며 상징적인 성격을 지닌다. 시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는 구원의 존재로 나타나는 임을 찾고자 하는 구도(求道)의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의 ‘반달’은 현재는 불완전해도 언젠가는 완전하고 충만한 보름달로 떠올라 맑고 높이 사는 법을 꿈꾸고 있는 시적 자아의 소망을 상징한다. ‘보름달’은 현재의 불완전한 삶을 극복하고 미래에 맞이하게 되는 완벽하고 완전한 존재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현재의 결핍되고 불완전한 상황에 놓여 있어도 그것을 극복하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종교적 소망과 구도의 자세가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이 시를 이해하는 방법이라 하겠다.
이 시는 경건하고 차분한 독백적 어조로 불완전한 삶을 극복하여 완전한 삶을 이루기를 소망하고 있다. 즉, 시인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준비로 현재의 결핍 상황을 극복하려 한다. 그러므로 ‘반달’을 소재로 상징과 비유의 표현을 구사한다. 제1단락(제1~3연)은 반달로 뜨는 ‘나’를, 제2단락(제4~6연)은 충만된 삶을 꿈꾸는 ‘나’를 노래하고 있다.
“손 시린 나목(裸木)의 가지 끝에”는 나뭇잎이 다 떨어진 벌거벗은 겨울 나무를 통해 시적 화자는 자아의 고독한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홀로 앉은 바람 같은 / 목숨의 빛깔”은 앙상한 겨울 나무 가지 끝에 걸려 있는 ‘반달’을 나타낸 표현이다. ‘반달’은 지금은 불완전하지만 완벽하고 충만한 보름달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그대의 빈 하늘 위에”에서 ‘빈 하늘’은 제1연의 ‘나목’과 대응되며, ‘고독’을 나타낸다.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는 시적 화자가 미래의 언젠가는 완전하고 충만한 ‘보름달’로 뜰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시적 화자는 현재 불완전한 삶을 살고 있지만, 내일은 완전한 삶을 살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것은 개인의 욕망을 벗어나 종교적인 이상에 도달하고자 하는 신앙의 자세와도 관계된다. “차오르는 빛”은 빛으로 충만해 가는 모습을 말한다. 이것은 풍요롭고 완전한 이상을 향해 성장하고 지향하는 원동력이 무엇인가를 말해 주고 있다. “구름에 숨어서도 ~ 부드러운 달빛이 된다”에서 어려움과 시련을 감수하는 시적 화자의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원형적 심상으로 볼 때 ‘달’은 예로부터 여성으로 나타났고, ‘달빛’의 속성을 부드러운 누이로 표현한 것도 이와 같은 사고 방식과 연관된 것이라 하겠다. “잎새 하나 남지 않은 / 나의 뜨락엔 바람이 차고”는 시적 화자에게 놓인 부정적이고 결핍한 어려운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 “마음엔 불이 붙은 겨울날”에서 시적 화자는 힘겨운 현실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다져 현실을 극복하려는 내면적 구도(求道)의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빛이 있어 / 혼자서도 / 풍요로워라”는 시적 화자가 지향하고자 하는 방향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세속적 욕망이 아닌, 종교적 구도를 통해 얻게 되는 보다 맑고 드높은 이상적이고 완전한 삶을 의미한다. “맑고 높이 사는 법을”은 시적 화자의 삶의 지표(指標)를 제시하고 있다. “빛으로 출렁이는 / 겨울 반달이여”에서 시적 화자는 겨울 밤하늘에 떠 있는 ‘반달’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있다. ‘빛이 있어 풍요롭고’, ‘빛으로 출렁이는’ 반달을 통해 시적 화자가 지향하는 ‘맑고 높이 사는 삶’은 빛으로 충만된 종교적인 방향의 삶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시적 화자의 내면에 깔려 있는 소망은 보름달과 같은 완전하고 밝은 빛의 신앙적 존재로 거듭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김원호의 한국시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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