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수필 산책

나무 이야기

이예경 2012. 9. 7. 13:20


사진: 박은덕 (53 회)


                              나무 이야기

                                                                                                      

   저녁 먹고 나서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다.
동네를 걷다가 보면 어느 집의 나무는 속성수인지 몇 년 만에 담장을 훌쩍 넘어 키와 몸
피가 무섭게 커버려서 옆에 아무도 안 보인다는 듯 그 옆을 걷노라면 공연히 몸이 움츠
러드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연리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유래를 찾아보다가 나무의 모양새에 관심을 두게 되었
다. 그러다 우연히 쳐다본 앞집 나무가 바로 그 연리지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눈앞
에 두고 매일 산책하면서도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것이다.

   가끔 나는 거실 창가로 가서 그 나무를 부러운 듯이 내다본다.  
행여 창문을 가릴까 살짝 빗기어 서서 둘로 된 기둥줄기가 위로 곧게 자란 침엽수 종류
이다. 위로 조금 올라가다가 가지가 둥그스름한 삼각형 모양이 되어 2층 지붕 끝에 닿
을 듯이 바르게 서있다.  두 나무가 손잡기까지는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까.
서로 비키라고  밀기도 했을 것이고  네 그림자 때문에 내가 못 자란다고 화도 내었을 것
이고, 밀쳐내다가 서로 부대껴 상처내며 잎새를 떨구기도 했을 것이다.

가로등 어스름한 밤이면 서로  부비며 속삭이기도  하고 무섭게 바람 불고 눈보라치는
날이면 꼭 껴안고 흔들리지 않게  서로 의지하며 서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둘은 화해
했나 보다. 우리 이럴게 아니라 서로 사이좋게 배려하고 양보하며 하나의 보기 좋은 모
습으로 가꾸어가자고. 그래서 더 튼튼하게 위로 뻗을 수 있었을 것이다. 

  차를 타고 거리를 지나가다가도 유심히 보게 된다. 세 그루가 늠름하게 잘 뻗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잘 자란 우애 깊은 삼형제 같다.  
아래는 여러 줄기인데 대여섯 그루가 위로 가면서 잎새와 가지가 하나로 엉키어 하나의
둥치를 이룬 것을 보면 마치 한마음으로 똘똘 뭉친 가족이 함께 서서 합창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럴 때 나는 패밀리 나무라 이름 지어준다. 

  얼마 전에 찾아갔던 수녀원 뒤뜰 산책길엔 열네 그루의 키 큰 나무가 정확한 간격으로
서있었다. 산책하며 기도하기 위해 오래 전에 그 누군가가 14처로 심은 것이었을 것
이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얼마나 많은 기도를 먹으며 자란 성스러운 나무들인가. 나
도 나무를 쓰다듬으며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그 나무는 위로하는 나무
였을지도 모른다.  

   나무의 종류에 따라 수형이 아름다운 그래서 혼자서도 충분히 아름다운 은행나무나
마로니에, 포플라, 후박나무 같은 것도 있다. 잘 자란 나무를 보면 의연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무도 사람처럼 어려서부터 잘 가꾸어야 한다. 묘목일 때부터 전지를 하고
잘 손질하고 가꾸면 보기 좋은 나무가 된다. 길섶의 절로 자란 작은 풀꽃도 아름답기
는 하지만 난초 화분도 정성스레 가꾸고 쓰다듬고 보살펴줘야 좋은 난으로 향기론 꽃을
피운다.  

    아프리카에 6천살 정도로 추정되는 거대한 바오밥 나무가 있다고 한다. 생떽쥐 뻬리
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 종류이다. 실제 사진을 보니 줄기가 둥글번번하니
정말 신기하게 생겼다. 일본 남쪽의 야쿠시마 라는 섬에 가면 7천 2백 년 된 조몬스
기라고 이름하는 삼나무가 있는데 그 줄기는 흡사 늙은 할아버지의 얼굴과도 같은 모
습이다. 그 근처에 있는 메오토스기 라는 부부삼나무는 천년 된 나무라고 한다. 그런
데 그 부부 나무가 손잡는데 5백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천 년의 반이나 걸린 거다.

   부부가 진심으로 손잡는 데는 얼마 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지금 우리 부부는
과연 연리지가 될 수 있을까? 은혼식을 지나 금혼식을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때론  틱탁거리니 말이다. 그리고 과연 우리의 아이들은 패밀리 나무가 될 수 있을까?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커다란 숲으로 이루어가길 바라는 모든 부모들의 마음을
그들은 알까?.  


  연리지(連理枝) : 한 나무의 가지와 다른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서 결이 서로 통한 것.  

                                                                      ( 캐나다 중앙일보 9월 1일자)

'명 수필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을 보며 - 이해인  (0) 2013.12.31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 이해인  (0) 2012.12.01
삶속의 참과거짓 True and Fake in our Life   (0) 2012.02.17
뻐꾹 뻐-꾹  (0) 2011.11.28
암 고통이 축복이에요  (0) 2011.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