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마음

양력설에.....

이예경 2012. 1. 2. 17:28

 

양력설에....

아침 9시에 집을 나섰다. 노인병원에 계신 어머님을 뵈러가는 길이다

준비물은 지난 주부터 차근차근 준비했으나 어머니께서 좋아하실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다른 말씀을 하시면 어쩌나 약간 염려가 되기도 한다

원래 음력설을 쇠어 왔으나 병원에 계시면 이중과세를 준비하는 것이 좋을것 같아서다

 

남편은 운전을 하고 나는 장거리외출이라 누워서 간다

조수석 의자의 등받이를 완전히 뒤로 제껴서 누우니 시야에는 하늘만 보인다

매번 가던 눈에 익은 길이 그렇게 다르게 보일수 있을까

아스팔트가 안보이니 마치 마차를 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역시나 평일과 달리 주차장에 차들이 그득하고

큰길 옆에도 주차를 했으니 방문객이 많은 게다

마침 아들네 식구들도 뒤이어 도착해서 손주들이 팔짝팔짝 뛰면서 다가온다

남편과 막내딸이 짐을 나르다가 아들네가 오니 짐을 건네주며 안심을 한다

 

병실에 들어가니 어머님은 교회에 가셨고 낯익은 어머니 집들이 나를 반겨준다

지난 3달간 어머님이 보내달라시는대로 짐을 부쳐드리면서 약간 상상했던대로

어머님의 짐들이 침대 밑으로 옷장속으로 그득하게 들어차 있었다

낯선 환경에서 낯익은 짐들은 어머니께 약간의 편안함을 느끼게 했을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간병인이 오더니 병원에선 다 필요없는 짐들이니 앞으로는 절대 보내지 말라고 당부를 한다

어머니가 원하시는데 어떻게 안보내요 했더니 자기 말은 안들으신다고 한다

놓을 자리도 마땅찮고 도난의 가능성도 있다고 여러번 말씀드렸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신이 마음대로 할것이니 말리지 말라고 하시더란다

 

그때 환자복을 입으신 어머니께서 장남이 미는 휠체어에 앉아 들어서신다

나를 보시더니 반색을 하시며 몸은 좀 어떠냐 제일 보고싶었다 하신다

서로 껴안고 등을 쓰다듬고 나는 죄송해요를 연발한다

 

어머니께서 즐겨입으시던 옷들과 라디오 장신구함 거울 안약등을 보시더니

안색이 확 펴지며 "아유, 내가 아끼던 것인데...." 하시며 너무도 반가워하셨다

홍삼엑기스를 선물로 내놓으며 같은방 환자들에게도 하나씩 따서 드리니  매우 기뻐하셨다.

어머니 건강과 안색은 맑아진 것 같고 좋아보여서 다행이다

 

식당으로 내려가 식사를 주문하고 싸온 음식들을 펼쳐놓고 점심을 먹었다

만두와 불고기를 맛있게 잡수시며 날더러 만두를 집에서 만들어온 거냐고 물으신다....손주며느리의 작품인데

"사랑에서 살림을 하니 별식은 못해먹어요" 했더니 "앗참 그렇겠구나" 하신다

 

병원에선 당뇨환자용 식사를 하셔서 김치 대신에 동치미만 잡수셨다며 굴깎뚜기니 과일도 많이 잡수셨다

찬찬이 살펴보니 얼굴에 윤기는 덜해도 안색이 매우 맑고 편안해 보인다  

집에 계실 때보다 훨씬 더 엄하게 당뇨식사를 고수하고 계신 덕인지도 모르겠다

가족에게 둘러싸여 식사를 하니 즐겁다고 하신다

 

식사후에 어머니를 병실로 모셔다드리고 우리모두가 어머니를 둘러싸고

손을 얹고 주안에서 심신의 평안을 위해 중보기도를 해드렸다 .....

작별인사로 차례로 어머니와 포옹을 해드리고 병원을 떠났다

 

친정에 도착하니 2시.  현관에는 발디딜 틈없이 신발이 가득이다

아이들과 다섯 가족이 와글와글 시끌벅적한 가운데 인사를 나누었다

남자들은 거실에서 아버지를 둘러싸고 얘기하다 트럼프 하일로루 판이 벌어지고,

여자들은 부엌에서 과일을 베끼며 얘기하다 까르르 웃고,

그리고 아이들은  이방저방을 분주히 돌아다니며 놀기에 바쁘다

 

아버지께서는 집에 오셔서 때를 미는 목욕을 하시고 딸들이 돌아가며 안마를 해드려서인가

안색도 훤해지셨고 얼굴이 반들반들 윤이 나신다

딸만 여섯을 두시고 평생 아들을 그리워하시며 살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며느리들이라면 그렇게 시아버지께 안마해드리고 코미디로 웃겨드리고 할까 싶다

목욕도 사위가 매번 때를 싹싹 밀어드리고 휠체어로 공원에 산보시켜 드리고 한다

 

나는 일단 허리를 쉬려고 방에서 한참 누워 쉬고야 아버지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께서는 주무시다가 3개월만에 보는 맏딸을 매우 기뻐하시며 허리 안부부터 물으셨다

발음도 어눌하신데 딸의 건강 회복에 도움될 이야기로 시작해서,

집안 이야기, 자매간에 6자매회를 만들것이며 어떻게 지내야하는지

엄마를 잘 부탁한다는 말씀....엄마 의견이 맘에 안들어도 일단 동의하고 들어드리라고....

그리고 젊은 날의 살던 이야기니 여러가지 인생 지침을 말씀하신다 

 

물론 처음 듣는 내용은 없지만, 재차 말씀하시는 이유는 꼭 지켜달라는 뜻일 것이다

맏딸을 제일 신뢰하시니 보기만 해도 편안해 하시는데 ....3개월이나 못 가 뵈었으니

그 말씀 또 하시고 싶으셔서 얼마나 기다리셨을까...너무 죄송한 마음이다

 

때로는 발음이 어눌해서 잘 못알아듣는 때도 있지만 내가

"~~하신다구요? ".....재차 확인하면 그렇다고 끄덕끄덕 하신다

이야기를 실컷 들어드리니 아버지께서는 기분이 후련해지신듯 얼굴이 밝아지셨다

 

병환 중에도 자손들에게 일일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을 물으신다

편찮으신데도 기억력은 아주 좋으셔서 우린 근황에 대한 연속낭독이 재미있다

평생을 자상하고 인자하신 아버지로 사셨기에 딸여섯은 모두 아버지를 끔찍히 사랑한다

 

저녁까지 먹고 처가집에서 길게 놀다 오니 남편의 눈치가 좀 보였는데

남편은 일거리 줄었다고 좋다 하니 나는 웃음이 난다

요즘은 내가 반찬을 만들고 꽤 돕는 편인데도 식사준비에 대한 부담감은 여전하니

남편은 점점 살림꾼이 되어가나보다.

 

긴긴 하루였다.

새해 첫날이 그렇게 지나갔다

작년과는 사뭇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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