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마음

친정 성묘

이예경 2011. 9. 10. 18:49

친정 성묘를 어머니를 모시고 추석 1주일 전에 둘이서 가게 되었다
하늘은 청명하고 나무들은 진초록으로 투명하게 깨끗하고
바람만 선들거리지 늦여름의 기운을 뿜어내는 아름다운 날씨다
77번 자유로를 계속 가다 당동 인터체인지 문산에서 37번으로 접어든다
 
엄마는 새로 난 길이 너무 좋다고 감탄 연발....산속에 뚫어놓은 길이라
옛날처럼 동네를 지나지 않으니 꼬불꼬블한 재미는 없지만 시원스럽기는 하다
문산에서 장파리로 좌회전해서 장자리로 접어드니 금방 산소가 나왔다
 
그래도 시간은 1시간50분 걸렸다 할아버지께 인사를 고하고
잡초가 눈에 띠어 보이는대로 잡아 뿌리째 뽑았다
손에 흙은 묻어도 잘뽑혔고 제법 수북이 쌓였다
 
햇볕이 너무 따가와 긴팔 브라우스를 입었는데도 계속 따갑다
벌초를 하며 엄마는 추억담을 풀어놓으신다 좋은 추억들이 많았다
할아버지는 좋은 추억과 그리움을 남겨주셨으니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촐하게 상을 차리고 묵념을 하고 소리내어 기도를 했다
엄마는 약주를 따라 산소에 뿌리며 내게도 하라고 했다 기독교식은 아닐지라도 그렇게하니
웬지 친근한 생각이 들고 할아버지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떠올랐다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또 기도하고 찬송가 580장 삼천리강산~ 375장~을 부르고 옛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할 얘기가 많기도 하다
고향에서 갓시집온 새댁에게 할아버지께서 마음으로 행동으로 잘해주신것
항상 같은 편이 되주시고 겪려해주신것 그리고 삼팔선이 자유롭지 못할때
아낙으로 수더분하게 차리고 집을 나서는데 젊은 새댁이 걱정되신다며 만약을 생각해서
머리에 수건쓰고 뺨에 숯검댕을 바르라고 일러주신것
 
625때 부산 피난 갔다가 우연히 남하하신 할아버지 소식을 듣고 수소문해서 찾아갔더니
피난지의 거주가 힘들어 노인 다섯분이 지하 방에서 계셔서 집으로 모셔온 일
부부간에 생사를 모르던 엄마한테 아버지가 낸 신문기사를 가지고 주소지인
대구에 있던 아버지를 찾아가서 연락을 이어주신일.....그리고.......그리고.......
 
이야기가 한없이 풀려나온다.
그러고도 뭔가 미진한 마음이었던지 엄마가 산소를 보며 말씀하셨다
아버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아버님께서 좋아하실 노래를 제가 하겠습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욱마다 눈물 고였-네~~"
일제시대에 엄마 여학교시절에 힛트한 유행가라고 했다
얼마전까지 가수 김정구가 부르던 노래인데 당시에 중국에서 떠도는 조선사람들 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혼자 살다보면 생각나는 노래였다고....... 
 
엄마의 진심이 느껴져서 나도 할아버지께 노래를 불러드렸다
"그리운 금강산.....누구의 주제련가~
꿈길 밖에 길없어.....(나는 가곡밖에 생각이 안나서......)"
내가 6세때 돌아가셨으니 64세된 손녀딸이 얼마나 대견하실까
 
할아버지의 웃으시는 얼굴이 보이는 것 같다
49세에 부산에서 맹장수술 후에 돌아가셨다고....49세면 한창 나이인데....
경기중학교 함흥고보를 나오시고 중국에서 공부하셨다고....
지금 내 막내동생도 50대인데.......막내 나이보다 더 젊으셨을때 돌아가신거다
 
4시에 출발하여 집에 오는 길이 하나도 안밀렸다
친정집에 돌아온 시각이 5시 20분. 똑같은 길인데 시간 차이가 많이도 난다
동생이 차려주는 이른 저녁을 먹고 딩굴다가 8시에 일어섰다
 
친정에 다녀오는 가슴은 항상 애잔한 마음이다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 덩그라니 혼자 사시는 어머니 ....
나 젊어서는 이런 모습 상상도 못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