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마음

6/28 아버지 안색이 우리들의 일기예보

이예경 2011. 7. 2. 22:04

화요일은 아버지 병원에 가는 날,
오전에 부리나케 일들을 처리하고 친정으로 가는 내 마음은 바쁘다

오후 2시 넘어 친정에 도착, 주차장을 둘러봐도 어머니는 안보인다
 
전화하니 준비가 안되었으니 올라오라 하신다

어머니는 방금 시장봐서 들어오셨다고 하시며
통새우를 냄비에서 바글바글 끓이시면서 점심도 안잡수셨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기다리기로 해놓고 식사도 안하셨다니.....
나는 금방 떠나려던 생각을 접고, 차라리 시계를 안보기로 하였다
어머니는 오전 내내 대청소 하시느라 기진맥진이다가
청소를 끝내고야 시장에 다녀오시느라 아버지 병원에 가져갈 음식 장만이 늦어졌다고 하신다
 
일이 우선인 나는 일이 있으면 청소는 나중에 하게되는데
노인네가 부지런하게 일일이 다 하고 사시느라 애를 쓰신다
나도 어머니를 닮아 저렇게 부지런이 청소하고 살아야하는데...

그리고 기운이 딸리건  안딸리건 퍼지지않으시고
어느 순간이나 최선을 다해 사시는 어머니가 존경스럽다
 
어머니는 점심을 잡수시고 나는 새우를 까서 담고 ...그럭저럭 3시가 넘었다
병원 휴게실에 나와 창밖만 보고 계실아버지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마음이 바쁜데
어머니는  과일가게에 들러 수박을 한통 가져가자고 하셨고

그럭저럭 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어머니는 힘들어도 일을 건너뛰는 법이 없이 모두 챙기신다
 
남양주로 가는 길은 오랜만에 갠 장마비로 온세상이
물청소를 방금 끝낸듯 산뜻하고 깨끗했다

길가에 차들은 태풍으로 장대비로 참았던 외출을 나온듯 제법 막혔다
 
4시가 넘어서야 병원에 도착하니 간병인이 우리더러 안오는 줄 알았다 한다
아버지께서는 4시까지 2층 로비에서 마냥 우리를 기다리시다가
방금 침대로 가서 누우셨다니 너무나 죄송하다

 
아버지가 피곤하신지 표정이 좀 무겁게 느껴졌다. 이마에 미열이 있었다
열도 오르고 기침도 하고 밤새 잠을 설치셨다고 한다
손은 차갑고 자주빛의 시작이었고 손톱은 보라빛이 감돌았다
 
요 며칠 감기로 고생하시더니 기력이 매우 떨어진듯 보였다
평소같이 내가 안마를 해드리려하니 별로 반기지 않으셔서 그냥 쓰다듬어 드렸다
그래도 청포도라도 좀 잡수셔서 다행이었다
 
아버지께서 새우로 저녁식사를 하시는 동안 어머니가  옆에서 시중들어 드렸고
식후에는 주무신다 하셔서 어머니랑 나는 한시간 가량 2층 휴게실에서 쉬었다
30여분 있다가 간병인이 나왔기에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와 이야기를 잘 나누던 건너침대 할아버지는 엊그제 정신병원으로 옮겼다하고
아버지 바로 화장실 옆침대 할아버지는 폐렴에 걸렸다가 나았다고 한다
목사님께선 아버지와 가끔 대화를 나누고 기도를 해주신다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사나흘 전부터 이상한 말씀을 하신단다
 

아버지께서 가끔 이상한 말씀 하시는건 약 부작용인듯 하다
요며칠 변비해결용 설사약, 해열제 감기약 기침약....등을 계속 복용하셨고
식사를 남기셔서 체력이 떨어졌고 건강이 편찮으시니 약간 건강염려증도 오셨고
원래 복용하시던 약들과 상충작용이 이루어져 부작용이 왔을 것이다
어머니는 간병인에게 주홍색 알약 도파민을 반만 잡수시게 일렀다
 
다시 아버지 침대병실로 들어갔다
"아버지, 바깥에 산보를 가실까요? "
"싫다"
"비가 개었어요. 뻐꾸기소리도 들리고 좋아요"
"아냐, 싫어"
그러다가 얼마 후 아버지가 말씀하셨는데
우리더러 뜬금없이 강원도에 가자고 하셨다
웬 강원도?...어머니와 나는 마주보며 영문을 몰라한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대화를 시도했으나 발음이 어려워 우리는 도통 이해를 못했고
재차 재차 물어 확인을 하려니 아버지가 짜증을 내셨다
짜증의 이유는 우리가 아버지 말씀을 못알아듣기도 했지만
알게모르게 치매 말씀인가 해서 자꾸 물어본 것을 눈치 채신 듯 했다
 
아래층 로비로 내려가는 것도 싫고, 밖으로 산보도 싫고, 식사는 반이나 남기시고...
기침을 자주 하시고 가래도 많이 뱉으셨다
두달 전보다 사뭇 다르다
 
가져간 수박은 삼등분하여 하나는 간병인에게 알아서 먹으라고 했고
다른 하나는 간호사실에 보내 먹게 했고
나머지는 모두 세모로 잘라서 룸메이트 할아버지들에게 나누어드렸더니
다들 맛있게 잡숴주셔서 다행이다
아버지는 저녁식사후라 그런지 딱 두입만 잡수셨다

귀가길에 어머니는 영정사진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펄쩍 뛰며 오래 사실거라고 말했지만 솔직한 마음은 어머니랑 똑같다

딸만 두신 어머니는 요즘 부쩍 아들가진 집을 부러워하신다
어머니가 애처롭고 내가 딸인게 또 미안하다
맏딸인 나는 주먹을 불끈 쥐어보며
만약의 경우를 각오해보고있다
  

아버지 안색이 우리들에겐 일기예보 같다
쾌청이면 우리도 기분 좋고 흐리면 우리 맘도 흐려진다
 
지금은 아버지의 심신의 평안을 위해서
계속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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