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 지혜

놀이와 기다림....

이예경 2010. 6. 30. 15:42

[자녀교육필독서] '놀이'와 '기다림'에 대한 새로운 시선
△ 딥스/ 버지니아 M. 액슬린 지음/주정일ㆍ이원영 옮김



‘놀이’와 ‘기다림’ 이 두 가지에 대해 잘못 알거나 잘못하고 있는 엄마들이 많다.

 놀이는 공부에 방해가 되고 낭비일 뿐이라는 생각에 젖어 있고,
아들딸의 변화와 성과를 도무지 기다려주지 않고 조급히 득달해대는
열성(?) 탓에, 오히려 그들의 성장점에 장애를 일으키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엄마들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다. 놀이는 중요한 공부이고,
공부를 놀이로 하게만 이끌면 엄마 입으로 ‘공부,
공부!’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리고 밥도 뜸이 들 시간이 필요하듯 아이들의 변화도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지켜볼 줄 알아야 한다.  
그 기다림에서 엄마도 오히려 성장을 지켜보는 참 기쁨을 맛볼 수 있고,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의 노력이 어떻게 보람으로 발효하는지를 느끼고 더욱 즐거이 노력하게 된다.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 <딥스>다.
 
이 책은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교수이자 놀이 치료의 권위자인 버지니아 M. 액슬린 박사가 썼다.
부모의 섣부른 기대에 가로막혀 움츠러들고 숨기만 했던 소년(5 세)이 “나는 나를 사랑해요.”라고
 말하며 밝게 웃게  되기까지의 기록이다.
 
저자가 실제로 실시했던 놀이 치료 사례를 구체적으로 생생히 보여주는데,  
그 진지한 긴장이 끝까지 이어져 한 번 펼친 책장을 덮기 어려울 만큼 재미있다.  
천재 과학자인 아버지와 외과 의사였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딥스는 언제나 혼자다.
유치원에서 벙어리처럼 말없이 앉아서 오전 내내 움직이지 않을 때도 있고,
교실 안을 기어 다니거나 갑자기 버럭 화를 내기도 한다.
 
부모조차 그를 정신 지체이거나 중증 정신 장애라고 젖혀놓는 형편이다.  
 이 무렵에 액슬린 박사가 딥스를 대상으로 놀이 치료에 나선다.
병정 놀이, 모래 놀이, 그림 그리기 같은  놀이를 딥스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한다.
 또한 딥스에게 자신이 바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대화도 딥스가 주도하길 바라며 인내로 기다린다.  

이런 신뢰와 기다림, 신중함, 존중감이 가득한 놀이는
딥스에게 세상과 자아를 깨달아가는 공부다.
 
마음이 병들었던 이 가여운 아이는 ‘자아 발견’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놀랍게도 똑똑하고 유능한 아이로
거듭난다.
이런 딥스의 변화는 나중에 그의 부모까지 자아를
되찾게 하도록 엄청난 영향을 준다.
 
이 책을 읽다가 보면,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불끈 쥐게끔
 용기가 솟기도 하고,  좋은 동화에서보다 큰 감동을 받아
 눈시울을 붉히게도 된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보다 일반 독자에게 더 유용하고
흥미로운 책이며, 고학년 아이들도 동화처럼 넉넉히
읽을 수 있다.  
 
 <딥스>를 읽는 동안에 오래 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프랑스 파리에서  딸을 초등학교에 보냈던 어느 어머니가 겪었던 일이다.
 
딸이 프랑스 말을 배울 때 숙제였는데, 같은 낱말을 세 페이지에 빽빽이 써서 갔다.
그날 선생님의 평가는 ‘D’였으며, ‘이렇게 많이 쓰느라 친구들과 놀 시간이 없었을 게
분명하다.’는 게  낮은 점수를 주는 까닭이었다 한다.  
 
 이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은연중에 강조하는 게 있다. 기다리고 존중하는 기준마저
아이의 입장에서 세우라는 것이다. (샘터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