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결혼식 청첩장이 날아오지만
특히 봄철이라 그런지 어떤 토요일에는 하루에 두세군데씩 겹치기도 한다
그래도 시간 조정을 잘해서 웬만하면 얼굴이라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얼마전에는 조카 결혼식에 다녀왔다
내가 결혼식을 올렸을 때가 얼마전 같은데 어느새 40년이 흘렀고
이제는 시동생이 사위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많던 친척들이 별로 눈에 띠지 않아 나는 계속 두리번거렸다
10년전에만해도 내아들 결혼식에는 친척들이 제법 많이 오셨는데
시동생네 행사에는 그렇지가 않다
세월이 너무나 많은 것을 변하게 했나보다
40년전에 내가 오남매의 맏아들한테 시집을 가보니 시아버님은 8남3녀의 둘째이셨다
당시 83세이셨던 정정한 시할머님은 거기서 32명의 손주를 두고 계셨는데
내남편이 그 중에 제일 연장자이고 결혼하는 첫 행사였다
그러니 기쁨보다 호기심이 앞서 모두들 아이들까지 데리고 참석하여
친척들만해도 예식장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씨족단합대회를 방불케했었다
지금은 시할머님은 물론 8남3녀 중 대부분 저세상에 가셨고
현재 1남2녀만 생존해 계시는데 그나마 건강악화로 외출이 쉽지 않으시다
시할머님 생존시에는 생신이나 제사같은 행사로 모임이 자주 있었으나 사후에는
32명의 자손들은 몇몇을 빼고는 왕래가 없으니 대체로 소식을 모르고 산다
그렇게 살아도 불편한게 없어서일까 서로 그리워하지도 않는것 같다
월남 가족으로 친척들을 못보고 살아온 나는 부모님께서 먼 친척들과도 왕래하며
가깝게 지내온 것을 보았기에 시댁의 번창함에 기대를 했었는데
실제로는 친척이 너무 많다보면 재미있게 친하며 살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나 자신도 회갑을 한참 전에 넘겼으니 세월따라 변할 것이다
조카결혼식에 와서 친척들도 별로 없는 데를 괜히 둘러본다
강산이 네번이나 변했을 세월을 더듬어보며
그전에 보았던 저세상에 계신 친척들을 떠올려본다
시할머님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작은 아버님들은 종교가 모두 달랐다
장례식을 천주교 기독교 불교 유교...식으로 해야한다고 제각기 주장하느라
초상 중에도 어성이 높아졌고 각기 주장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아무도 포기하지 않아 여러식으로 다 하느라고
빨간 휘장 십자가 휘장.....등이 차례대로 관위에 쒸워졌다
모든 종교가 모두 기도할테니 천당 극락 하늘나라...등
좋은 곳에 가실 수 밖에 없겠다고 모두들 이야기를 하였다
시할머님이 돌아가신 후 49제를 올린다고 연락이 왔으나
종교가 다르다고 형제들 모두가 한 마음으로 모이지는 못했다
그 이후로도 각자 자기 종교대로 그 식을 따라 각자 제사를 지낸다
그래서 다같이 모일 기회가 없는것 같다
아버님 형제분들이 자주 모이지 못함 같이
내 시어머님이 돌아가시면 4남1녀 자손들도 그렇게 될까
그 손주들 12명들은 어떻게 지내게 될까...
내력을 무시 못한다는 말도 있는지라 걱정을 놓을 수가 없다
남편의 형제들은 일단 기독교로 통일은 되어있다
아직까지는 행사때마다 잘 모이고 있기는 하지만
어느핸가 시아버님 제사때는 형제간의 불화로 모임에 빠진이가 있었고
가끔씩 삐걱거릴때가 있었기에
내가 맏며느리이므로 잘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때때로 이생각저생각에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데.....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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