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매우 수줍은 성격이었던 나는 집에 낯선 손님이 오시면 나서서 인사하기가 부끄러웠다. 눈을 마주치고 빙긋이 웃고는 슬며시 도망치기 일수였다. 어머니는 큰딸이 인사도 할 줄 모른다고 손님들에게 미안해 하셨지만 나를 귀여워하시던 친척아저씨들은 활짝 웃어주는 인사가 진짜라며 괜찮다고 했다. 나는 그 말씀이 마음에 들었는데, 워낙 친했던 아저씨 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게 겉치례같고 쑥스러워서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손님이 가신 후에는 어머니로부터 매번 걱정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매사에 철저했던 어머니가 인사 못하는 딸 때문에 무안할까봐 친척들이 그렇게 위로 하신게 아닐까 싶다. 그분들이라고 인사 받는 것이 싫을 리가 있었겠는가
반면에 활발했던 내 동생은 초인종 소리가 들리면 부리나케 대문으로 뛰어가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해서 칭찬을 많이 들었다. 문간에서 서성이는 손님의 손을 잡아끌고 어서 오시라고 문턱을 넘게하니 모두들 웃으며 들어왔다. 어머니 또한 사교적인 둘째딸을 자랑스러워하셨다
눈을 마주보고 그냥 "안녕하세요" 하면 될 것을 나는 왜그리 말꺼내기도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다행이 밖에서 남들에게는 기본 인사정도로 면피는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집에서는 어머니의 걱정소리에 더욱 쑥스러워 계속 인사 못하는 환자 취급을 받으면서 어른이 되버렸다.
그런 내게 생긴 결혼 상대가 알고보니 친척이 많은 사람이었다. 8남3녀중 둘째이신 시아버님, 그리고 4남1녀 중 맏이인 신랑, 사촌동생들은 28명이나 되었다. 그러니 결혼식 당일에 폐백을 드릴 때 어떠했겠는가. 어르신들은 물론 사촌들까지 일일이 소개하며 절을 하니 누군지 잘 외우지도 못한 채 한시간도 더 걸렸다. 탈의실에 와서 숨을 돌리며 옷을 갈아입으려하니 시누이가 황급히 뛰어와 사당제를 안 지냈으니 한복을 다시 입고 절하러 오라고 하였으니 첫날부터 절하느라 파김치가 되었다.
시댁 친척들은 절받기를 좋아하셨다. 시댁에 손님만 오시면 한복으로 갈아입고 큰절을 해야했다. 8월이라 더운 여름에 속고쟁이, 속치마에 겹치마 받쳐입고 대청으로 들어가면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다. 새댁의 큰절을 받은 어르신들은 만면에 희색을 띠며 시댁에서 지켜야할 법도에 대해 무게 있는 훈계를 해주셨다. 어쨋던 인사 받은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하시니 계속 할 수 밖에 없었다. 아침 저녁 문안인사를 비롯해 친정 동생이 했던 것처럼 반색을 하며 인사에 신경을 썼더니 어느날 인사는 이제 그만 됐다고 그러신다. 시댁에서는 내가 원래 인사를 잘하는 며느리로 알고 계셨을 것이다.
인사를 할 때는 천천이 고개를 많이 숙이고 하는걸 모두가 좋아하는데 웬지 우월감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인것 같다. 남자는 처갓집에 가도 친척들 모두에게 그렇게 큰절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여자는 모든 친척들에게 일일이 고개를 푹 숙여 큰절을 하여야한다는게 이제 생각하니 불공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당시에는 새댁 시절이라 모든게 발등의 불이 떨어진 상태이니 내가 잘해야 친정어머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 시댁 풍습에 열심히 순종하려고 애를 썼고 별 탈없이 지나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