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어머니와 아버지

이예경 2009. 10. 26. 21:42

어머니와 아버지

이 예경

[1]

요즘은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간다. 본의 아니게 초저녁잠을 잤나보다. 따르릉 전화 소리에 시계를 보니 12시 반, 이 밤중에 누굴까 물론 잘못 온 전화겠지 했는데 받고 보니 친정어머니다. 5년 묵은 우황청심환을 먹어도 되느냐는 내용인데 목소리가 어째 이상해서 응급 상황 같다. “갑자기 어지럽더니 배에서 오른쪽 발가락까지 마비되어 숨을 쉴 수가 없어. 이러다 죽겠구나.” 두려운 생각에 우황청심환을 찾아냈더니 너무 오래된 거라 큰딸한테 물어보는 거라고 하신다.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머니께는 내가 열쇄가 없으니 일단 현관문을 열어 놓으시라했고 내가 곧 그리로 도착할 테니 그대로 계시라고 했다. 그러나 빨리 가도 35분은 걸릴 텐데 긴 시간일 수도 있다. 그래서 119에 전화해서 어머니 주소를 알려주었다. 전날에 뵈었을 때 기운이 하나도 없다며 얼굴과 팔이 사흘 전부터 피부가 온통 검어 졌다고, 소화가 안 되어 배만 불룩 하다는 둥, 빨래를 널다가 갑자기 현기증이 났는데 머릿속이 답답하고 멍-해지더라는 둥, 그리고 최근에는 꿈을 많이 꾸고 가끔씩 헛것이 보인다는 말씀까지 하셨기 때문이다.

이러다 심장마비라도 와서 갑자기 돌아가실까봐 걱정되어 내색도 못하고 무조건 한의원에 모셔다 드렸다. 한의사는 큰일 날 뻔 했다며 여기저기 다 막혔다했다. 어머니는 5년 전에 대장암수술을 했기에 내심 충격 받으신 거 같았다. 어머니는 검게 변했던 얼굴과 팔다리가 한의원에 다녀온 후 많이 옅어졌다고 효과가 있는 것 같단다. 하루 밤이라도 옆에 있고 싶었지만 사정이 안돼서 집에 왔는데 밤중에 전화를 받은 것이다.

친정에 도착하니 119구조대는 이미 도착, 잘생긴 여자 1명과 씩씩한 남자 2명이 현관과 거실에서 서성이고 어머니는 잠옷 바람으로 안방에 앉아있다. 병원에 갈 필요 없다며 우기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설득하여 겨우 옷을 갈아입히고 119 엠블란스에 앉아 아산병원으로 향했다. 5년 전에 중풍으로 손가락 하나 못 움직이는 시어머니를 119구조 차에 태우고 가슴 졸이던 생각이 났다. 친정어머니는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응급실에 도착하니 새벽 1시인데도 응급실은 만원이다. 복도에도 자리를 못 찾아간 환자들 침대가 꽉 채우고 있다. 뭔가 낯익은 풍경이다.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2년 전 아버지께서 소변대신 젤리모양의 핏덩이를 뚝뚝 흘리셨을 때 응급실로 오셨다가 3박4일을 이 복도에서 밤을 새우며 침대를 지켰던 일이 떠올랐다. 그 아버지는 방광암 수술을 2번이나 했지만 지금 노인병원에서 잘 지내시는데 이번에는 어머니 차례인가.

대기실에는 뭐라 중얼거리며 서성이는 젊은 남자와 따라다니며 말리는 중년부인, 깡마른 노인 양옆에 앉아있는 두 여자 등 급해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도 눈에 띤다. 이 밤중에 뭔가 건강에 급박한 사정이 생겨 급하게 달려온 사람들이라 모두 표정이 어둡다.

차례가 되어 의사면담을 하는데 의사의 말씀이 원인을 완전히 밝히려면 별별 검사를 다 해봐야하고 비용이 엄청나겠으니 우선 기본검사를 해 본 뒤 다시 보자고 했다. 심전도, 혈액검사, 소변검사, 엑스레이가슴사진, 갑상선검사 등을 했는데 2시간 후에 결과가 나오니 귀가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평소에 1주일이나 걸리던 검사결과가 2시간 후에 모두 나와서 다시 의사면담을 했다. 나는 어머니와 가슴을 졸이며 다가갔는데 모두가 정상이라 한다. 그 말에 갑자기 안심이 되는 동시에 검사 전과 달리 돈 12만원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아라! 했다는 속담이 생각나 웃음이 난다. 새벽 4시에 끝났지만 응급실 검사결과로 정상인걸 알고 맘이 편해져서 아주 단잠을 잤다. 노환은 누구나 겪는 것…….그러나 특별한 치료약이 없으니 좀 더디게 오게 하며 시간을 버는 것이라던 말이 생각난다.

 

[2]

오늘은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지가 집으로 외출 나오시는 날이다. 모시러 가는 차 안에서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딸들은 이런 생각을 할 거야. 노인들이 나이 들었으니 당연히 노환으로 힘드신 것이고,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열심히 기도해서 기적이 일어나게 해주십사고. 그래서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잘 걸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어머니의 절실한 마음을 읽으니 가슴이 저려온다.

병원에 도착하자 아버지께서 여태 현관로비에서 기다리다가 방금 병실로 올라가셨다고 전해준다. 우리도 부리나케 5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간호사실에 가서 일주일치 약을 주문해오고 어머니는 내가 보행기를 차에 싣는 동안 병실 침대를 정돈하고 설합을 정리해서 가방을 꾸리고 간병인은 아버지 옷을 갈아입혀 휠체어를 밀고 3박자로 부지런히 퇴원준비를 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내게 별일 없었느냐고 물으신다. “네, 그냥...” 내가 얼버무렸더니 며칠 전에 이상한 꿈을 꾸고서 어머니 걱정을 많이 하셨다는 것이다. 고향땅에서 운동회를 한다고 다 모였는데 어머니가 달리기 선수로 뛰고 있었다. 그런데 씩씩하게 잘 달리다가 골인하는 순간 갑자기 어머니가 엎으러지더니 일어나지를 못하더란다. 너무 놀라서 이름 부르며 잠이 깨셨다. 날짜를 따져보니 바로 내가 아산병원 응급실에 갔던 똑같은 날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노부부끼리는 뭔가 통하는 게 있는가보다.

집에 오는 동안 차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두 분은 서로 귀가 안 들려서 대화가 잘 안된다. 내가 양쪽 말씀을 일일이 복창을 해야 하니 딸들이 교대로 비서를 해드리니 망정이지 비서 없으면 어떻게 살까 모르겠다. 두 분이 아무리 사랑해도 귀가 안 들려 소통이 어려우면 전처럼 또 다투게 될 지도 모르겠다.

집에 와서 저녁식사를 끝내고 어머니가 잠시 자리를 뜨자 아버지께서 어머니가 정말로 별일이 없었느냐고 재차 물어보셨다. 보지도 않고 다 짐작을 하고 계시니 아버지께 사살대로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랬구나, 엄마가 힘들테니 이젠 병원에 면회도 오지 말라 해야겠구나." 가장 기다리시던 낙을 포기하려하시는 아버지가 안쓰럽고 가슴 아프다.

설거지 마무리를 끝내자 밤 8시가 되어 두 분만 남겨놓고 나도 내 집에서 기다릴 시어머니 때문에 자리를 뜰 수밖에 없다. 어머니가 어지럽다며 소파에 누우시고 아버지는 의자에 앉아서 서로 목청을 높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신다. 귀가 어두운 잉꼬부부의 모습이다. 오늘저녁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우시길 기도한다. 어머니 건강이 걱정되지만 오늘은 아버지가 옆에 계시니 다행이다.

 

[3]

다음날. 따르릉 소리에 눈을 뜨니 새벽 4시. 어머니가 또 몸에서 스르르 힘이 빠져나가 금방 죽을 것 같다고 전화를 하셨다. 원인은 아버지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잠결에 일어나 아버지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니, 입을 못 다문 채 정신없이 주무시는 모습이 너무나 측은하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오더니 갑자기 가슴이 꽉 막히면서 온몸의 기운이 썰물처럼 밀려나가는 것 같고, 심장마비로 금방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럴 땐 무슨 약을 먹어야 좋은지 우황청심환이면 될까 물으신다.

큰일 났다. 내가 또 친정에 가봐야 될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간밤에 밀린 일들로 새벽 1시에 잠이 들었던 고로 비몽사몽이다가 다시 깨보니 6시가 됐다. 부리나케 남편과 시어머니를 위해 아침 진짓상을 차려놓고 친정에 달려갔다.

어머니는 축 늘어지신 채 목소리가 모기소리 같다. 반면에 식탁까지 보행기에 의지하여 어렵게 오신 아버지는 간밤에 때를 세 꺼풀 정도 벗기셨는지 얼굴과 무릎이 니스 칠한 것처럼 반짝거리고 있다. 새벽의 해프닝도 모르시는 채 표정도 아주 평온하시다. 나는 냉장고를 살펴보고 이것저것 아침장만부터 했다.

어머니는 지난 사흘간 아버지 맞을 준비에 이것저것 하시느라 기운이 소진되어 있는데다 아버지가 오시자마자 매일 목욕시켜드리면서 때까지 밀어 드리고 기저귀 시중, 침대에서 일으켜드리기 그리고 특별한 식사를 준비하고 정말로 초인적으로 하셨다. 몸이 힘들어도 할 건 해야 마음이 편하다고, 살아있는 한 움직이는 게 인생 모토라고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아버지께 무조건 헌신적인 어머니를 어찌 보면 무지하다고 해야 할지……. 차라리 아버지를 무지하게 사랑하신다고 하는 편이 좋겠다.

어쨌든 뭔가 대책을 세워야지 계속 불안해서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한의사가 어머니의 심장이 극도로 약해져있고 신장의 기능도 떨어지고 있으며 위장은 막힌 거 같다고 했는데 양방에서는 정상이라고 하고 본인은 기운 없다느니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시니 내가 내린 결론은 휴양이다. 아버지께 그리고 동생에게도 어머니가 요양원에서 휴식을 좀 취하는 게 어떤가 물었다. 정답이긴 한데 어머니가 원할 것 같지 않아 걱정된다 하였다.

처음에 요양병원 입원 이야기를 듣자 어머니는 펄쩍 뛰셨다. 그러나 열흘만이라도 휴식이 꼭 필요하다고 했더니 나중에는 솔직히 요즘 너무 힘들어서 입원환자들처럼 푹 쉬어볼까 생각을 잠시 해본 적이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어머니 자신이 막상 간다 생각하니 적응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냉장고를 비우고 짐을 싸는 내내 가겠다, 안가겠다를 수시로 왕복했다.

하루 종일 이 말씀 저 말씀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셔도 나는 미소를 띠고 참을 수밖에 없다. 적응에는 시간이 필요하니 말이다. 집을 떠나기 직전에 어머니는 뜨끈뜨끈한 물을 받아놓은 목욕통에 아버지를 강제로 밀어 넣었다. 아버지는 목욕을 전날에 잘 했으니 다시 할 필요 없다고 힘들어할까봐 완강히 버티셨지만 계획한 대로 모두 끝내야 직성이 풀리시는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드디어 어머니는 집 정리, 은행일, 냉장고 청소, 아버지 목욕, 엄마 가방 싸기, 몸단장의 순서로 준비를 끝내고 요양병원을 향해 집을 나섰다. 깨끗하게 몸단장된 아버지를 보며 “거봐요 목욕하시고 새 옷 갈아입으시니 얼마나 보기 좋으신데요” 라고 흐뭇해하신다.

요양병원에 도착하여 의사 진찰을 해보니 응급실의 검사결과와 똑같이 신체 상태는 모두 정상이라 했다. 그 말에 안심이 되었는지 웃음이 자꾸 나오신다고 휴양만 잘하면 되겠다고 편안한 얼굴이다. 병원에 갈 필요 없다며 병원 가는 차안에서도 나를 계속 불편하게 했던 어머니가 4인실 병실 한쪽에 마련된 침대에 누워 보시더니 맘에 든다고 하셨다. 뭔가 포기 하셨나보다. 오길 잘했다고 하시니 내가 긴장이 풀려 잠이 스르르 온다. 침대에 어머니랑 눈감고 나란히 누워 얘기도 하고 떨어질까 봐 부둥켜안았다. 어머니가 행여 낯선 침대에서 불면증이라도 올까봐 그 방과 침대에 딸내미의 기운을 묻혀 놓았다 할까…….

낯선 병원에 어머니를 두고 오면 마음이 더 짠 할 텐데 아버지가 계신 낯익은 병원에 맡기게 되어 불행 중 다행이다. 저녁식사를 같이 마치고 5층 아버지께 갔다. 아버지도 막 식사를 마치고 205호로 내려갈 작정이셨다며 반가워하셨다. 어머니도 "이제는 우리가 매일 아침으로 저녁으로 보게 됐어요." 한다. 아버지는 내심 동지가 생겨서 좋으신 거 같고, 엄마도 밤중에 공포에 떨지 않게 되었으니 안심이 되나보다.

 

한동안 응급실에도 안가고 응급 전화도 없이 평온했다. 그런데 병원으로 면회를 갔던 동생이 어머니 청을 못 이겨 친정집에다 모셔다 놓았다고 연락이 왔다. 편해서 좋으나 할일이 많다면서 어머니가 살짝 묻어 나오셨던 것이다. 어머님의 심경을 가족홈피에서 읽어본다.

 

큰딸은 보기엔 편안해 보였으나 속맘으로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강제 노동에 끌려가듯이 간 것이기는 했어도 큰딸 덕분에 공기 좋은 요양병원에서 508호 호산(아버지)과 205호 심제(어머니)는 아침 정오 저녁 식후 시간을 5층 꼭대기 로비에서 만나 서로 마주보며 다소곳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지냈으나 심제는 10일 만에 퇴원했다.

만나는 시간이 길지 않을 것 같은데 더 있다 나가지…….하는 호산 말 속에 무언가 느껴져 심제는 눈물샘에 물이 고여 착잡한 심정이었으나, 아니다! 나는 주먹을 왈칵 쥐었다. 둘이 애쓰며 하나님의 은총으로 사는 데 누가 뭐라나. “비켜라! 하나님 두 영혼 은혜 주시옵소서. 두 심령에 새 힘을 주시옵소서. 내 육체 가운데 새 능력을 주옵소서. 옥상에서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호산 방으로 다음은 205호로…….

퇴원 얘기를 들은 같은 방 70대 할머니들이 “영감이랑 연애 잘 했어요?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만나고 싶어 하는데 가지 말고 좀 더 있어봐유” 하면서 부러운 눈치였다. 산속 고요한 저녁 창문으로 스며드는 솔잎 내음, 수목들의 향기 그윽함을 맡으며 여생의 한 토막을 경험하면서 덧없는 세월을 보내노라.....

 

퇴원 후 어머니는 교회에 백화점에 인사동에 열심히 다니시고 저녁에는 거의 혼수상태로 누워계신다. 그리고 툭하면 한밤중에 내게 위급을 알리는 전화를 하시고, 나는 그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며 달려가고 있다. 그래도 부모님을 이미 보내드린 친구들은 나를 많이 부러워한다. 효녀라면 어떻게든 내 집에 모셔야 하거늘, 그렇게 할 수 없는 내 처지가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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