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컴퓨터

이예경 2009. 8. 11. 14:09

인생의 반을 놓치고 사는 거에요

 

남편이 명퇴 후 개인회사 사무실을 새로 차리면서 내게 일하러 나와 달라고 했다. 솥뚜껑 운전 경력만 이십여 년에다 알던 것도 잊어지는 오십 나이인지라 사양하였지만, 주위에서는 사양이 정답이 아니라고 한다. 나는 얼떨결에 할 수 없이 사무실에 출근하게 되었다.

그런데 금전출납을 공책에 적는 나를 보고 남편은 하품을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사무실에만 나와 주면 다 가르쳐주겠다니 자기일이 바빠지자 가르쳐주기는커녕 주문만 많아졌다. 이런저런 문서작성 뿐 아니라 회사 홈페이지까지 만들라고 하는데, 나는 터무니없이 역부족이다. 컴퓨터학원, 세무학원에 등록하여 배우려했더니, 사무실 비우고 학원이나 다닐 새가 어디 있느냐 목청을 높인다. 그러더니 어느 날 두꺼운 컴퓨터 책을 몇 권 내밀며 독학을 하라고 하였다.

더러는 책에서 해결을 했지만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한번 막히면 진도가 안나가니 짜증만 났다. 대학생 딸에게 물으면 처음 몇 번은 찬찬히 설명하며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돌아서면 가물가물하니 세 번 이상 묻게 되는데, “저번에 가르쳐 드렸잖아요.” 하면서 바쁘다고 제방으로 들어가 버리기 일쑤다. 그래도 남편은 차근차근 잘 가르쳐 주기에 “역시나 내 낭군이시네” 하며 듣고 있는데, 갑자기 싹 지우더니 내게 다시 해보라고 한다. 정신은 버쩍 들었으나 그때 내 기분이 묘했다. 그래도 문제는 해결해야하니, 애들과 남편에게 눈치껏 물어가면서, 홈페이지도 만들고 사무실 일을 하면서, 일이 시원치 않아 마음도 편치 않게 삼년이 지나갔다.

그러다가 컴교실 특강에서 워터마크 넣어 편지쓰기, 편지병합, 주소록 작성하여 라벨 만들기 웹에서 검색하기 등, 여러 가지를 배웠다. 이제는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책으로 예습한 덕을 본 셈이다. 연말에는 너무나 손쉽게 그림을 넣어 이름까지 프린트된 고운 편지와 연하장을 만들 수 있었다. 포토샾도 배웠는데 흐린 사진을 선명하게, 구도, 채색, 합성까지 가능하니 여러 기능을 실습해 보면서 갑자기 전문가가 된 기분이 든다. 묵은 앨범도 CD 한 장에 넣고 CD cover는 검색 사이트를 이용하여 멋진 그림을 오려다가 합성, 컬러 프린트로 인쇄하니 꽤나 그럴 듯 하다. 역시나 아는 것이 힘이다.

시아버님 생전에는 83세에 노인복지관에서 컴퓨터를 배우셨는데, 최근래에 가장 잘한 것이 컴퓨터 배우신 일이라 하셨다. 교회신문에 투고하실 글을 쓰시면 내게 퇴고를 부탁한다며 이멜로 보내오기도 하시고, 놓쳐버린 연속 방송극도 보시고, 검색을 이용해서 취미에 맞는 사이트로 가보신다며 컴퓨터가 “친구중의 친구” 라 하셨다. 지난가을 시어머님이 뇌졸중으로 입원하신 후, 나는 가족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사형제 가족이 번갈아 문병을 다녀와도 어머님과 나누는 이야기가 다르고 서로가 일일이 내용을 전달하기도 힘들다보니 진도가 안 맞아서다. 요즘은 각자 병문안 내용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의견이나 전달사항도 나누고 있다. 가족들이 뒤늦게 웹에서 자주 만나다보니 여태까지 몰랐던 속모습도 엿보여 재미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내 컴퓨터의 인터넷에 이상이 생겼다. 한밤중이니 수리공도 못 부르고 서당개식 풍월로 전선을 일일이 점검하고 켰다껐다 하다보니 모니터 스위치에 불만 깜빡이고 화면까지 먹통으로 보인다. 그 이틀간 옆에 있던 친구가 멀리 외국에라도 떠나간 듯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루도 컴퓨터 없이는 못 사는 날이 없으니 이제는 컴퓨터에 대해 장단점을 논하는 일은 우스울 뿐이다. 누구던 배우기만하면 컴세상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게 내세상이 된다. 그 세상이 밝던 어둡던 내 선택에 달렸다. 아직도 배울 것이 많기는 하지만, 나는 혹시 아직도 컴퓨터의 세계로 들어와 보지 않은 분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인생의 반을 놓치고 사시는 거에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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