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까 치

이예경 2009. 8. 11. 14:08

까 치

 

이 예 경

 

서울의 아파트에서 살다가, 공기 맑은 동네를 찾아 과천에 머물게 된 지 7년이 넘었다. 서울에서 경기도와 경계를 이룬 남태령을 넘어오면, 시야에 펼쳐지는 색깔과 냄새가 달라진다. 내 집 베란다에 서면 산을 마주보게 되는데, 옆에 서 있는 굴뚝 사다리에 까치가 둥지를 틀고 있는 것이 이채롭게 띈다. 신기한 것은 그것들이 집에 들어올 때 둥지로 곧장 날아들지 않고, 둥지에서 떨어진 곳에 내려서 한 층씩 올라가는 것이다. 다른 새와는 달리 암수가 똑같이 생겼는데, 봄이 되면 새끼를 낳아 둘이서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먹이를 물어 나른다.

몇 해 전에 그 둥지가 사라진 적이 있다. 아파트 외벽 도장 공사 때 굴뚝을 청소하면서, 둥지를 헐어 내고 페인트로 칠을 해 버린 것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들은 저마다 변을 당한 까치를 화제로 올렸다. 위층에 사는 장난꾸러기 국민학생은 지난 해 백일장에서 그 까치를 소재로 시를 써낸 것이 장원을 했다면서 아쉬워했다. 굴뚝에 달려있던 둥지는 없어졌어도 우리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다음해 봄에, 한동안 소식이 없던 까치가 돌아왔다. 쉴 새 없이 마른 나뭇가지를 물어 와 둥지를 틀었고, 이듬해에는 둥지가 하나 더 늘었다. 그리고 해가 바뀌면서 외벽 도장 공사를 또 하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주민들이 건의해서 둥지가 둘 다 무사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칠 공사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도록 까치는 보이지 않았다. 페인트 냄새가 지독하여 참기가 힘든 때문이었을까. 떠나 버린 이유가 궁금했고 서운했고 또한 허전하였다.

어느날 동생이 자기의 신랑감 후보라면서 낯선 총각을 앞세워 찾아 왔다. 큰언니에게 보여주고 인물 평을 받겠다는 것인데, 수줍은 듯 창 밖을 내다보던 그 총각이 까치 둥지를 보면서 신기해했다. 결혼하면 들어가 살 집이 있느냐는 동생의 물음에, 그는 까치 둥지를 가리키며 ‘저기가 비었다는 데’ 하고 웃었다. 조각을 전공한 그는 결혼 후 예술적인 솜씨로 새둥지같이 아늑한 보금자리를 꾸몄다고 한다.

철이 바뀌어 따뜻한 봄 날 아침, 나는 시끄러운 까치소리에 밖을 내다보았다. 대여섯 마리가 저마다 깍깍대는데, 아무리 보아도 둥지 싸움인지 짝짓기 싸움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외출 후 돌아와 보니 조용했다. 새들은 다음 날부터 집을 보수하는 것 같았다. 얼마 후, 둥지가 세 개나 보여서 웬일인가 했는데, 유심히 살펴보고서야 제일 위의 것 만 까치 둥지이고, 밑의 두 개는 흔적인 것을 알았다. 원래 있던 둥지를 물어다가 새 둥지 하나로 만든 것이었다.

어제는 청계산 약수터에 다녀오는 길에 큰 나무 위에 있는 세 개의 둥지를 보았다. 주위는 시원한 바람 소리와 함께 매미의 합창이 어우러져 요란하였는데, 아이랑 같이 쳐다보다가 우리 집 앞의 까치 생각이 났다. 한여름 무더운 날 뙤약볕 아래 굴뚝에 달랑 매달린 둥지. . . 그놈들은 왜 하필 거기에다 지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까치가 나무 위에서만 사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까치가 굴뚝을 나무로 잘못 알고 왔을 리는 없겠고, 산 속보다 이곳에 먹이가 더 많아서도 아닐 터인데, 그렇다면 이놈들도 도시가 좋아서란 말인가.

나는 어릴 적에 살았던 삼청동 산밑의 한옥이 떠올랐다. 그 집에는 화장실이 마당 한쪽에 있어서, 밤이면 그곳에 가는 것이 무서웠다. 비오는 날이면 손가락처럼 굵은 지렁이가 꽃밭에서 기어 나와 댓돌 위의 신발 옆에서 돌아다녔다. 그리고 연탄불을 갈아넣으려고 마루밑 아궁이에 들어가면, 도둑고양이 때문에 놀라곤 하였다. 그러던 집을 떠나 고층 아파트 속에 살다 보니, 산을 떠나와 사는 까치와 내가 무언가 공통점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오늘도 까치는 새벽부터 분주하게 산 쪽으로 날아간다. 그놈이 아침에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데. . . 사람들은 자연 그대로보다는 인간의 손이 닿아야 비로소 편리하고 문화적인 즐거움을 주게 된다고 생각하는데, 아파트촌에 와 사는 까치는 삭막한 주거 환경 속에서 우리에게 오아시스 같은 즐거움을 안겨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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