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다 경 찰
이 예 경
이번 폭염은 선풍기만으로는 해결이 안될 것 같다. 어디론가 피서를 가고 싶다. 지난 몇 해는 가족휴가를 가지 못했던 생각이 나서 애꿎은 지도만 펼치고 앉으니, 옆에 있던 초등생 막내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머릿속에 바다풍경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불평이다. 왠지 부모로서의 책임이 느껴져, 아이의 기억 속에 바다풍경을 확실하게 넣어 주자고 8월 초에 여행 가방을 꾸린다.
우리는 서둘러 집을 나섰지만 교통체증으로 오후 3시가 넘어서야 경포대에 도착했다. 바닷물은 파도가 없이 잔잔한데 피서객의 파도는 대단해서 해수욕장이 활기가 넘친다. 짐정리는 저녁으로 미루고, 급한 마음에 수영복부터 입고 나섰다. 옛날과 다름없이 바다 경찰서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방송이 해수욕장에 울린다. 믿거나말거나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겼으니 빨리 와달라는 내용일 것이다. 나는 젊은 시절 생각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함께 해수욕장에 갔을 때다. 바다경찰서 방송에서 같이 간 친구의 이름이 들리는데 내용인즉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즉시 경찰서로 오라는 것이다. 나는 물놀이 중에 깜짝 놀라 친구가 있는 민박집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친구는 부고를 듣자 얼빠진 얼굴로 앉은뱅이같이 기어서 툇마루까지 나오더니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갔는데, 거기에는 친구의 애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서울에서 부산 송정해수욕장으로 서둘러 오기는 했는데, 인산인해인 해변에서 애인을 찾을 길이 막연해서 꾀를 낸 것이라 한다. 사실은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둘러댄 것인데, 잘못 방송되었다고 미안해하면서도 애인을 쉽게 만난 행운에 싱글벙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거짓말에 남들이 놀랜 것은 아랑곳없는 철없는 애인이 어이없다면서도 친구는 그를 따라 가버렸다.
미국에 살 때 나도 바다경찰의 신세를 진 적이 있다. 가족끼리 해수욕장에 도착하여 돗자리를 펴고 짐을 꺼내서 점심을 차리는 동안에 세 살 아들이 어디론가 보이지 않았다. 네 살 딸에게는 과자를 먹으면서 꼼짝 말고 돗자리에 앉아 기다리라고 일러놓고 남편과 나는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찾으러 갔다.
그러고 나서 북쪽을 향해 두리번거리며 모래사장을 뛰는데, 아이도 안보이고 해변도 끝이 없어 걱정으로 가슴이 터질 지경이다. 우리가족은 한국에 직장을 얻어 일주일 후에 영구 귀국할 예정이었다. 한 달 전에 비행기 표를 예약했고, 이삿짐까지 이미 한국에 부친 터였다. 들고 갈 가방만 남겨놓은 상황에 아들을 못 찾으면 모든 일이 어떻게 되나. 만약의 경우, 나는 혼자 미국에 남아 뒷수습을 해야 할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대서양 푸른 파도의 미련 때문에 아침부터 우리가 흥분해서 이렇게 되었나하는 생각으로 모든 일이 후회막급이었다.
그때 멀리 흰 모래사장에 검정머리의 동양인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보니 우리교회의 담임목사님이다. 그분은 자초지종을 듣더니 우선 바다경찰서에 신고하라고 한다. 나는 미국에도 그런 것이 있는 줄 몰랐다. 그곳은 해변의 길이가 남북으로 50여 마일이라 방송은 안하지만, 반마일마다 바다경찰 초소가 있고 전화, 무전기 등의 전자 장비를 갖추어 놓았다고 한다. 그분 가족들에게는 오랜만의 나들이였을 텐데 도시락도 열지 못한 채 아이 찾는 일을 돕는다고 다섯 명 가족 전부가 뙤약볕 속으로 흩어졌다.
아무도 아이를 못 찾고 낙심해 있는데, 한참 만에 바다경찰이 다가와 북쪽 초소에서 아이를 보았다는 연락이 왔으니 기다리라고 한다. 나는 기다릴 여유가 없어 북쪽을 향해 무조건 달렸다. 얼마를 달렸을까 멀리 시야에 바다경찰에게 안겨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무사했구나! 안심과 고마움으로 구릿빛 털북숭이 경찰아저씨가 천사같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목사님 가족들은 그제야 안심을 하며 자리를 옮겼다. 그분들을 못 만났으면 몰라서 헤맸을 뻔 했다.
옛날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귀를 찌르는 호루라기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소리 나는 쪽을 향하니, 저 멀리 남편이 호루라기소리에 안쪽으로 다시 들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는 툭하면 경계선을 넘어간다. 그럴 때면 바다경찰이 보트를 타고 쫓아다니며 호루라기를 불었고, 남편은 보트에 실려 오면서 매번 불평을 했었다. 인산인해의 물속을 피해 깨끗하고 사람 적은 곳을 찾아 헤엄치다가 거기까지 갔을 테지만, 나는 수상 안전에 노심초사하는 바다경찰에게 미안했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번번이 그러는 남편이 야속할 때가 많다. 미국에서 유학생이던 남편은 근처에 친구도 친척도 없이 살았는데 바다수영을 하다가 깊은 데로 가서 파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으면 내 가슴에서 걱정이 시작된다. 한참을 기다리는 동안 보이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으면 나의 걱정이 점점 부정적으로 발전해 간다. 결국 남편 없이 이국땅에서 젖먹이 어린 남매를 키우며 울다가 한국 부모님께 가게 되는 내 모습까지 보이는 순간, 갑자기 호루라기 소리에 놀라 눈을 들면 미국 바다경찰과 함께 보트에 타고 오는 남편이 눈에 들어온다. 쓸데없는 걱정은 순식간에 사라져도 내 가슴은 한동안 벌렁벌렁 뛰며 진정이 되지 않았다.
경찰은 국민에게 명령하고 때로는 강제로 그 자연적 자유를 제한하여 공공의 질서 유지한다는 것이나, 경찰관 제복을 보면 공연히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바다경찰을 보면 유니폼을 입은 것도 아니요, 총이나 경찰봉을 찬 것도 아니다. 여름 내내 바닷가에서 수영복에 호루라기의 차림으로 망루에 앉아 푸른 바다를 쳐다보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바다를 일 년 내내 그리워하면서도, 여름휴가에나 고작 며칠 바다구경을 하는 우리에게는 부럽게만 보이는 직업이다. 어찌 보면 노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유심히 보니 수시로 호루라기를 불어댄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서 인공호흡을 시킨다. 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생기는 것이고, 그럴 때마다 몸을 던져 생명을 구해주는 그들―때로는 구조 작업 중에 함께 파도에 휩쓸려 희생되는 일을 신문에서 본다. 그럴 때면 그들 뒤에서 염려하는 가족들이 떠오른다. 우리 주위에는 알게 모르게 우리를 염려해주는 이웃이 있지만, 몸이 아프기 전에는 의원의 고마움을 모르듯이, 보통 때는 그런 것을 못 느끼고 살았다.
어느덧 파라솔이 걷히고 모래사장이 넓어져간다. 파장시간인 모양이다. 사람을 찾는다는 방송대신에 해변의 쓰레기 분리수거에 대한 방송이 나온다. 망루에 앉은 바다경찰도 교대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