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이 예 경
아이들이 외출준비가 끝나지 않은 내게 빨리 나오라고 소리를 지른다. 오랜만에 사촌들을 만날 기대로 들뜬 목소리다. 그날따라 동네상가가 노는 일요일이어서 집 앞이 조용한데, 빈집이라고 광고를 하는 것 같아 나는 신경이 쓰인다. 우리는 동생네 백일잔치에 가는 길이었다.
동생집 복도에 들어서니 시끌벅적한 소리가 밖에까지 넘쳐나온다. 어른들도 동심으로 돌아가 이야기 판이 벌어졌나보다. 요란한 인사 후 잔칫상이 들어오고야 장내가 주춤해졌다. 그런데 식사를 시작하자마자 전화가 울린다.
내 집도 아닌 데 나를 찾는 전화다. 상대방은 우리 동네 경찰관. 우리 빈집에 불청객이 다녀갔으니 즉시 오라는 얘기다. 난생 처음 당하는 일이라 현기증이오고 가슴은 쿵쿵거리는데, 동생이 밥부터 먹으라 잡았지만 무조건 귀가를 서둘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갖은 상상을 다하면서도 말들이 없다. 동네로 들어서면서 더 긴장된다. 숨 가쁘게 층계를 오르니, 문이 뜯겨있고 우리 거실에는 옆집 할머니와 경찰관들이 와 있다. 옆집도 현관 손잡이가 부서지고 쇠문이 늘어나서 닫히지를 않는다. 안방에는 경대와 장롱이 열린 채 내용물이 방바닥에 널려 있다. 현금과 패물들은 하나도 없다.
난장판으로 기운이 빠졌지만 일단 현관문을 고쳐야겠기에 보수센타를 불렀다. 기사는 요 며칠간 똑같이 뜯긴 문을 고친다면서 “수법이 같네요” 한다. 옆에 있던 경찰관은 조서를 꾸며야 한다며 이것저것 물었다. 나는 처음 당하는 일이라 행여 찾을 수 있을까하여 성의껏 대답했다. 그러나 경찰관은 분실물 신고 액이 엄청났던 어떤 집의 경우를 이야기하면서 맥빠진 얼룰을 한다.
그 뒤로도 경찰관은 여러번 찾아왔고, 번번이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수사에 진전이 있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렇다고 과학적인 조사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빈집털이범이 재차 오는 경우도 있으니 앞으로 사흘간은 비우지 말라면서, 한번 도둑 맞으면 찾기 어렵다는 소리만 하였다.
사흘 후 대낮에 초인종 소리가 나더니 자물쇠를 고치겠느냐고 묻는다. 나는 문을 열지도 않고 거절하여 보냈는데, 잠시 후 옆집 할머니가 나를 불렀다. 옆집에선 수입품 자물쇠 설치해준다는 남자가 왔는데 두 집이 같이하면 더 싸게 해준다 했단다. 나는 웬지 언짢아서, 다 도둑맞은 집에 뭐가 남았다고 그 비싼 잠을쇄를 하냐며 나와버렸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떻게 알고 왔는지 이상했다. 그래서 창밖을 내다보았던 것인데 그는 곧장 정류장 쪽으로 가는 것이다. 나는 경관에게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아래층 부인은 그가 사흘 전 바로 그 시간에 층계에서 마주쳤던 사람인 것 같다고 했다.
그 일을 겪은 후, 나는 사람 만나는 일이 싫어지고 외출도 귀찮기만 했다. 그 달 반상회에도 아이를 대신 보냈더니, 어머니를 오란다며 돌아왔다. 동네 부인이 호기심어린 명랑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서 어쩌다가 도둑맞게 되었는지 사고 예방을 위한 정보를 말해보라며 시시콜콜 자세히도 묻는다.
동네사람을 마주치는 일이 부담스럽고 집이 편안치 않다. 장보러 나갔다 돌아 올 때면, 부서진 손잡이와 문드러진 문짝이 연상되면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안방 문을 열려면 아수라장이던 모습부터 떠오른다. 대낮에 다니는 남자는 혹시 도둑이 아닐까 의심스런 눈으로 보게 되니, 노이로제 환자나 다를 바 없었다.
나 같은 사람도 이러하니 부자가 이런 일을 당할 때는 오죽하랴 싶다. 금고를 장만하고, 사나운 개를 기르는 마음을 알만하다. 담을 높히고 창살을 꽂고, 그것도 모자라 도난경보기 쎄콤 등에 거금을 아끼지 않는 마음에 이해가 간다.
나는 감출 것이 많지도 않다. 아기 돐반지나 결혼반지등 경대서랍 속에 둔 것이 전부였다. 애쓰고 들어온 도둑이, 가져갈 것이 마땅치않아 이불장에 양복장까지 그렇게도 샅샅이 뒤졌나보다. 어찌 생각하면 그 도둑은 재수가 없다. 우리집은 쌓아놓고 사는 집이 아니었으니.
결국, 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하고야 안정을 찾았다. 집을 옮겨서인지 흘러간 세월이 약이 되어서인지는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도 나약한 나 자신이 부끄럽지만, 아직도 불청객에 대한 불안은 가셔지지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