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대의 탄생
이예경
지난 1월 중순, 재작년에 장가든 아들이 가을에는 첫손주를 보실 것 같다고 하였다. 오월에는 외손주를, 구월에는 친손주를 볼 예정이니 인생살이에서 뭔가 진도가 팍 나가는 느낌이다. 한편으로는 인생의 뒷전에 가까워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지난 연말에 아들이 주택 융자금을 다 갚게 되는 내후년쯤에 아기를 가질 예정이라고 했을 때 남편과 나는 그게 하나님 마음이지 사람 맘대로 되느냐 하고는 옛일이 떠올라서 마주보며 웃었다. 내가 아이를 가질 무렵에 남편은 학생이었다. 물론 아기는 2년 후에 가질 계획이었다. 외국에서 유학생이라 살림도 안정되지 않았고 책이니 학용품이니 더 급한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건강하던 나는 두 해는 커녕 두 달도 안 되어 갑자기 식욕을 잃었다. 나는 대중교통수단이 적은 미국에서 자동차도 없고 영어도 어눌한 상태였다. 학생이니 살림도 어려운 지경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날이 갈수록 입덧이 심해지니 일상생활이 힘든 나머지 보름달만 쳐다보며 고향생각에 눈물지었다. 그러다가 할 수 없이 한두 번 마주친 이웃과 서투른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병원에도 동행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런 가운데 남편은 아기를 주신 하나님께서 아기의 먹을 것도 주시리라고 무조건 믿어보자고 했다.
한국의 부모님께 알리니 돈을 보내주신다는 편지 대신에 정신차리고 살라며 병원에는 미리 가지말고 마지막 달에나 가보라고 하신다. 별 대책이 없으셔서 궁여지책을 가르쳐 주셨을 것이다. 유학생 아들에겐 뒷바라지가 급한데 도리어 임신한 며느리의 뒷바라지 때문에 학업에 지장이 있을까봐 걱정이 되셨을 것이다.
나는 매일 신문 구직광고에서 본 전화번호를 돌리며 전전긍긍하였다. 그런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얼마 후 입덧이 끝날 무렵, 결국 믿음대로 나는 직장을 얻게 되었고, 아기예정일 사흘 전까지 일한 덕에 중고자동차를 마련하고 병원비까지 충당하였다. 남편은 더욱더 학업에 열중하여 장학금을 받았다.
아들은 자기들 예정보다 일찍 생긴 애기로 좀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아기는 제 먹을 것을 쥐고 나온다는 말이 맞는 것을 아는 나는 그저 웃음만 나온다. 나의 아이가 자기 아이를 낳게 되었으니 대견스럽다.
산모는 나날이 체중이 늘어간다. 산모는 보호 받을 권리가 있기에, 임신 초기에는 입덧으로 말기에는 배부름으로 생명의 잉태를 남들도 알게 해주는 조물주의 뜻이 재미있다. 하나님이 아기를 주실 때 열 달 후에 세상에 나오게 하시는 이치에는 절로 감탄이 나온다. 그 기간은 어버이가 될 적응기간으로 꼭 적당하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부모도 그만큼 몸과 마음과 환경의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아기를 가지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생각이 깊어지는 것 같다.
산후조리 생각을 하다가 나는 문득 조부모로써 더 중요한 일이 생각났다. 아기 이름의 돌림자를 확인하고 새로 지어줘야 하는 것이다.
족보연구회에 알아보니 국립중앙도서관 7층의 족보실에 가보라 한다. 족보에는 50년 또는 30년 만에 한번 새 자손들을 입력시키는데 2001년에 새 족보가 나왔고 다음 입력은 2051년이라니 나는 그때까지 생존이나 가능한지 알 수 없다.
새로운 세대가 태어나면 우리 모두의 호칭이 업그레이드된다. 내가 할머니가 되면 할머니는 노할머니로, 이모는 이모할머니로 그리고 시동생들은 모두 할아버지로. 내 유치원생 막내조카까지 졸지에 아줌마가 된다. 호칭이 달라진 우리들은 애기를 보면서 각자의 인생길에 대해 다시 생각에 잠긴다. 지난 길보다 남은 길이 얼마 안되니 다시 새로운 각오로 살아가야 할 것 같다. 항상 기쁨을 주는 사람으로 살기를 기대해본다.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겪게 될 때마다 걱정이 앞서지만 담대하게 맞이하여 열심히 대처하다 보면 해결책이 보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