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붕어찜

이예경 2009. 8. 11. 14:04

붕어찜

 

이예경

 

주말에 양평을 다녀오는 길인데 차량행렬이 끝이 없다. 앞을 보나 뒤를 보나 도무지 꼼짝을 안한다. 옆으로 눈을 돌리니 오랜만에 보는 남한강인데, 이제 보니 강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길가에는 온통 붕어찜 전문이란 간판 투성이다. 토요일 오후인지라 체증이 쉬이 풀릴 것 같지 않아서 일행은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붕어찜 식당에 들어서니 강변의 원두막으로 안내를 한다. 음식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찜에 넣은 우거지가 붕어보다 더 맛있다는 둥, 탕에는 수제비가 들어가야 국물 맛이 좋다는 둥 각자 먹던 붕어 얘기로 군침을 삼켰다. 나도 어릴 적에 어머니가 만들어주었던 붕어찜 생각이 떠올라 아득히 잊고 살았던 옛일들이 주마등같이 이어져 나를 추억 속으로 빠지게 한다.

붕어는 항상 아버지가 손수 낚시로 잡아온 것이었는데, 커다란 붕어찜이 밥상에 오르면 아버지는 뼈를 발라낸 큼직한 살점들을 아이들의 밥 위에 얹어주시며 무용담이 시작된다. 낚시를 드리우고 있다가 갑자기 고래가 당기듯 센 힘이 느껴지면, 그때부터 신경을 집중해서 풀었다 당겼다하며 수 차례 실랑이 끝에 낚아 올리는 것이다. 섣불리 당기면 낚싯줄이 끊어지기도 하고 풀어주기만 하면 낚싯밥만 채가는 수가 있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심심찮게 상을 받아오셨다 상품은 금반지 한복옷감, 코고무신 등 주로 여자 용품이라 모두 어머니 차지다. 중량 상을 받아오신 날에는 김장할 때 쓰는 커다란 양푼에 반짝거리는 크고 작은 붕어가 가득했다 수돗가에 어머니와 아줌마와 내가 자리잡고 앉아서 백 마리도 넘는 그것들을 저녁 내내 다듬는 것이다. 어떤 것은 너무 작아서 불쌍했고 어떤 것은 펄떡펄떡 살아있어서 칼을 대기에 겁이 나고 미안하기도 했다.

대어상을 받아오신 날은 다르다. 붕어는 계속 아가미를 헐떡거리고 입을 뻐끔 거렸는데, 벼루와 먹을 찾으시며 진하게 먹을 갈아 붕어나 잉어에 먹칠을 한 후 화선지에 찍어냈다. 그러면 비늘에 옆줄까지 생생한 한 폭의 물고기 그림이 생기는데 액자에 끼워 벽에도 걸고 여러 장을 만들어 보관해두고 흐뭇해 하셨다.

휴일이면 온 식구가 도시락을 챙겨 따라가서, 아버지가 낚시를 하시는 동안 옆에서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며 놀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몸이 무거워지면서 잘 가지 못했다. 해산 후에는 한동안 갈 수 없었는데, 일요일이면 먼동이 트자마자 어김없이 집을 나서는 낚시광 아버지를 못마땅히 여겨, 나중에는 낚시도구만 보아도 돌아앉을 정도였다. 그 당시에는 낚시가 유행이었던지 매스컴에서도 일요과부라는 말이 자주 들렸다.

어머니 대신에 맏딸인 내가 아버지의 자질구레한 낚시준비를 많이 도왔었다. 때로는 동행이 되기도 했는데 별로 고기를 잡지는 못했다. 순발력이 부족한 나는 고기가 걸리면 마음만 급했지 당겨야하는 때를 못 맞추니 매번 놓치기 일쑤 였다. 게다가 구더기를 보면 구역질을, 지렁이를 보면 징그럽다고 소리지르고 벌벌 떠는 공주기질이었던 내가 도움이 되기는커녕, 아버지가 내 시중까지 드시느라고 신경 쓰이는 일거리만 더 만들었는데,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겉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아들이 아니어서 죄송한 마음이었다.

조용한 물위에서 종일 낚싯줄을 보며 고기를 기다리다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지만, 아버지께서 잠시나마 복잡한 일상사를 잊고 머리를 식히는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친구들 이야기나 학교에서 생긴 여러 가지니 장래이야기를 아버지와 나누다보면 항상 내편이 되어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마음 든든하였다.

아버지랑 낚시 가던 때가 내가 중학생 때이니 사십 년전 일인데도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도 주위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만났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아버지이다. 이젠 사위까지도 자주 이럴 때 옆에 계셨으면 뭐라고 하셨을까, 장인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해보고 결정을 한다.

눈을 감으면 내가 어릴 적에는 온 식구가 저녁 산책을 나갔다가 졸리면 키 크고 우람한 체격인 아버지의 넓은 등에 업혀 잠들면서 흔들흔들 집으로 돌아오던 생각이 난다. 내 머리 속에 입력된 아버지는 항상 그런 옛 모습이기 때문일까. 요즘 친정에 가면 팔순을 넘긴 아버지께서 지팡이를 짚고 구부정하게 걸으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너무나 안쓰러워 기정사실로 인정하고싶지 않은 마음이다.

일행과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이 붕어찜이 상위에 차려졌다. 갑자기 시장기로 먼저 눈으로 먹으면서 침이 고이고, 붕어의 연한 살이 입에 닿는 순간 살살 녹으면서 매콤 담백 고소한 맛이 느껴진다. 제대로 밴 양념 맛도 일품이지만 통감자, 무, 흰콩, 통마늘, 시래기 등을 가득 넣고 찐 붕어찜은 눈앞에 펼쳐진 시원한 남한강과 함께 별미 중에 별미다.

붕어는 산후조리나 갱년기 장애, 노화방지에 좋은 스테미너 음식으로 알려지면서 근래에 붕어찜 전문 식당이 생기고 전문 요리사에게는 ‘향토음식 기능 보유자’ 자격증을 준다고 한다. 예부터 붕어는 별명이 희두(喜頭), 어(魚), 동자(童子)등으로 불렸고, 성질이 평(平)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으며, 효능은 익기건비(益氣健脾), 이수소종(利水消腫), 청열해독(淸熱解毒)이라 하여, 기를 보하고 비장의 열과 몸 안에 있는 독을 없애며, 오줌을 잘나가게 하여 부종을 내려준다 했다.

친정에 가면 약간 기울게 앉으신 채로 무심히 TV바둑을 보고계신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매번 가슴아프고 내눈에는 물기가 서린다. 이번에는 아버지를 모시고 내가 낚시시중을 들면서 낚시를 가고 싶다. 내가 낚싯밥을 끼워주고 노후의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만든 붕어찜을 아버지와 어머니께 맛보여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향토음식 기능 보유자가 만들었다는 붕어찜을 주의 깊게 맛본다. *

'자작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풍같은 봄바람   (0) 2009.08.11
불청객  (0) 2009.08.11
비 둘 기  (0) 2009.08.11
새로운 세대의 탄생   (0) 2009.08.11
서생원의 죽음  (0) 2009.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