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둘 기
이예경
외출했다가 집에 오니 대문 앞 가스 검침기 위에 비둘기가 앉아있다. 웬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제자리가 아닌 것 같아 비둘기를 쫒으려고 현관에 세워둔 우산을 집어들었다. 그랬더니 옆에서 보던 남편이 깜짝 놀라 우산을 뺏으며 혀를 찬다.
“쯧쯧! 밤눈이 어두운 비둘기더러 이 저녁에 어디로 가라는 거요.”
나는 돌아서며 웬지 꺼림직 했지만 그냥 들어왔다. 아파트의 나무에 벌레소독을 하는 것도 자연보호를 모르는 정책이라며 반대를 해왔던 남편이다.
다음날 새벽, 배달 온 우유를 집으려고 현관문을 열던 남편이 내게 빨리 와보라 한다. 현관 앞이 발을 디딜 수가 없게 새똥 범벅이고 비둘기가 앉았던 가스 검침기 위에도 오물이 수북히 쌓여있다. 그 오물을 치워달라고 나를 부른 것이다.
“비둘기를 사랑하는 자비로운 당신이 치우세요.”
엊저녁 일 때문에 내 대답이 순순히 나올 리가 없다. 평소에도 마누라 말이라면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습관이 있었다는 둥 이 기회를 잡아 나는 남편을 성토했다. 그는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인줄만 알았지 똥싸개인줄은 몰랐다고 하며 돌아선다.
나는 새똥을 치우면서 내내 비둘기가 왜 콘크리트 건물의 십층 복도 끝 우리 집 앞에 있는지 생각해보았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결혼 전 한옥에 살 때 비둘기들이 지붕 위에 집을 지은 적이 있었다. 정원수에 앉기도 하고 새를 가까이 보는 것이 좋았는데 얼마 후 기하급수적으로 숫자가 늘어 새벽이건 밤이건 구구거린다. 지붕은 오물천지가 되어 마당까지 떨어지고 수막뇌염을 일으키기 쉬운 진균(眞菌)이 있다 해서 치우느라 신경을 쓰면서도 어머니는 자연과 같이 사는 게 좋다하셨다.
내 머리에 입력된 비둘기는 평화와 행복의 상징이었다. 서울 시청 광장에서 광복절 행사 때 날리던 수백마리의 비둘기, 잔디밭에서 땅콩을 받아먹던 비둘기, 그리고 피카소 미술관 천정에 가득 그려진 하얀 비둘기 두 마리, 등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우리 조상들이 귀소능력 때문에 비둘기를 통신용으로 키웠던 것은 다 아는 사실인데, BC 3000년 무렵 이집트에서 사육했던 기록이 있다니 흥미롭다. 관상용 외에 우는소리, 비행 기교 감상용, 그리고 외국의 경우 식용으로 독특한 냄새를 생강 양념하여 먹기도 한다니 우리에겐 생소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따뜻한 봄날, 동네공원에 나갔다가 비둘기 수십 마리가 마당에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짝짓기 철인지 수컷이 저마다 구구구 울며 암컷 주위를 돌고 있다. 그 암컷이 귀찮은 듯 가버리면 다른 암컷을 찾아간다. 거부반응이 보이지 않으면 목을 뒤로 젖히며 곁으로 와서 부리를 벌린다. 암컷은 그 안에 부리를 넣는다. 이 때 수컷은 먹이를 토해 주고 평생 부부가 된다. 수컷이 나뭇가지를 물어오면 암컷이 둥지를 틀고 알을 한두 개 낳아 키운다. 재미있다. 연애끝에 결혼해 사는 사람들 같다.
어디나 흔한 새가 옛날에는 참새였지만 요즘은 비둘기인 것 같다. 사람들이 가까이 가도 날아갈 생각은 않고 뒤뚱거리며 몇 발짝 비껴가는 척 한다. 사람을 우습게 보는 건지 비만증이라 행동이 둔해진 건지 아리송하다. 비둘기가 많다보니 여러 가지 모습을 가까이 보게 되는데, 발이 한쪽만 있어 뒤뚱거리는 놈,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쪼아먹는 놈, 과자를 쥔 애들을 따라다니는 놈 등 옛날 비둘기와는 다르다.
도처에 널려있는 쓰레기통에서 쉽게 많이 먹을 수 있으니 애써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싱싱한 먹이 대신에 쓰레기를 먹으니 건강이 좋을 리가 없고 몸도 무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몸이 무거우니 날기가 귀찮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비둘기나 나 자신이나 다를 바가 없다. 옛날 어머니들은 마당에 채소를 심어 가꾸었고 김장을 마당에 묻었고 우물물을 길어왔고 장독대를 오르내리며 살림을 했는데, 나는 백화점에서 깨끗이 다듬어 포장된 야채, 간장 된장을 다 사먹는다. 조리에 간편하고 양념이 입에 붙는 패스트푸드를 즐겨 먹고, 아파트에 사니 운동량이 적어 비만이 올 수밖에 없고, 그러니 몸이 무겁다. 비만걱정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 풍요로운 세상 속에 같이 사는 나 자신이나 비둘기가 뚱뚱해지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음날 복도에서 만난 청소부는 복도에서 새똥을 치운 일이 자주 있다며 집 앞에 먹이를 두었느냐한다. 그러고 보니 집 앞에 잠시 내놓았다가 깜빡 잊고 두었던 음식쓰레기 봉지가 생각났다. 그래도 비둘기가 10층 아파트까지 먹으러 올 줄은 몰랐다.
그렇다면 비둘기가 공원에서 옛날에 먹던 열매나 벌레는 어디로 갔을까.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송충이나 애벌레를 본 일이 없었다. 정기적으로 뿌려온 농약 때문일까. 곤충들이 죽어서 꽃가루받이가 안 되어 열매를 맺지 못했고, 곤충도 열매도 없으니 결국 먹이를 찾지 못한 새들이 굶주림을 면하려고 쓰레기라도 뒤지게 된 것인가 보다. 비둘기는 환경에 적응하며 산 죄밖에 없을 테니 알게 모르게 그런 환경을 만들었을 내게도 뭔가 책임이 느껴진다.
세상이 발전하면서 인간들은 편리하고 풍요로운 세상을 추구하여 연구에 연구를 계속하는데 문제 하나를 풀면 두 개 이상의 다른 문제가 생기고 예측하기가 어렵게 얽혀간다. 그렇다고 원시 야만의 시대로 돌아갈 수도 없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같이 본의 아니게 농약을 조금씩 먹게 되고 패스트푸드를 먹고 어울려 살아간다.
뒤뚱거리며 다니는 비둘기나 비만에 신경 쓰는 내 자신이나 자연친화적으로 살지 못하는 것은 다를 바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