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생원의 죽음
이예경
한밤중인데 잠결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도둑인가하여 귀를 기울여 들어보아도 둔탁하게 간헐적으로 들리는 소리가 기분 좋은 소리는 아니다. 남편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거실로 나가 보자고 한다. 불을 켠 순간, 우리는 소리를 지를 번했다. 거실에는 바닥이 안보일 정도로 새털이 흩어져 있고,새장에 십자매가 간 곳이 없다. 바닥을 빗자루로 쓸어 내면서 구석구석을 살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없어진 십자매를 찾아 가구 밑을 살피던 나는 구석에서 살점 하나를 발견했다. 그 피도 마르지 않은 것을 집으려고 소파 밑을 들여다 본 순간, 나를 빤히 쳐다보는 서생원과 눈이 마주쳤다. 숨이 멎을 듯 놀랬지만, 그놈을 밖으로 내쫓으려고 현관문을 열어 놓고 막대기를 휘둘렀다. 그러나 서생원은 남편과 나를 놀리듯 부엌 쪽으로 숨어 버린다. 식구들이 나간 후 다시 둘러보았으나 그놈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놈도 편할 리는 없겠고, 밖으로 나가 주기만 하면 되겠는데, 나간 것 같지는 않아서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저녁 준비를 하려고 부엌에 나와 가스 불을 켰을 때다. 그 뒤에 숨어 있었던지 갑자기 그놈이 튀어 오르며 도망을 쳤다. 또 한번 질겁을 하고,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려고 쫓아가는데, 잽싸게 서재로 들어갔다.
다음날에는 할 수 없이 쥐약을 사왔다. 사용법대로 서재에 놓고, 만약을 생각하여 소파 밑과 화장실에도 놓았다. 다음날 보니 먹이를 건드린 흔적이 없는데, 어느 구석에도 서생원은 보이지 않는다.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여서, 의문을 풀지 못한 채 이틀이 지났다. 그러다가 청소를 하면서 방바닥에 톱밥 같은 것이 있어 찬찬히 살펴보니, 문 한쪽을 쥐가 쏠은 흔적이 있다. 서생원의 소행이 분명했다.
이튿날, 옆집 아주머니가 왔다가 무엇인가 썩는 것같은 냄새가 난다고 했다. 냄새의 근원지는 서재였다. 구석을 아무리 찾아도 없던 것이, 놀랍게도 커다란 놈이 책장 꼭대기에 엎드려 있질 않은가. 처녀 적 같으면 십리를 뛰었을 일이지만, 비위가 뒤집히는 것을 참으며 그놈을 치우고 소독을 하였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해서 그놈이 3층 아파트인 내 집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계절이 바뀌어 날이 더워지고 창고에서 선풍기를 꺼내게 되었다. 상자 한쪽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무심히 보며 선풍기를 들어올리는데, 뭔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것들은 놀랍게도 말라죽은 새앙쥐 열두 마리였다. 그제서야 그놈이 문밖으로 나가지 않은 이유를 짐작하였다.
추측컨대, 새끼를 밴 서생원이 옥상에서 고양이에게 쫓기다가, 홈통을 타고 내 집 창고에 들어오게 되었나 보다. 급한 대로 선풍기 상자 속에 새끼를 치고 나서, 배가 고파 헤매다가 거실 가운데 있는 새장을 발견하고, 십자매를 나꿔챘을 것이다. 잠결에 들은 소리는 그 십자매의 비명이다.
정든 십자매가 비명에 간 것이 가슴아파서, 나는 쥐잡는 데만 신경을 썼던 것이다. 사람들은 가축을 기르다가 잡고, 동물학자는 보신탕 먹는 것을 야만이라고 하지만, 인간은 만물을 관리하게 되어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어미를 기다리다 말라 버린 새앙쥐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눈에 밟혀, 어미 쥐를 잃게 한 일에 자책이 따른다. 변명 같은 이야기지만 쥐는 쥐구멍에 새끼를 쳤어야 했다.
조물주가 세상을 창조하여 미물을 만들 때는 그놈에게도 자기 나름의 의미가 있게 하였을 것인데..... (94.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