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와의 첫 대면
해산 한 딸이 산후조리 하러 내 집, 친정에 왔다. 아기는 젖내를 풀풀 풍기며 새근새근 잠이 들어있다. 아기는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한두 시간 간격으로 계속 울어대고 기저귀를 적시고 우리를 너무나 피곤하게 한다. 그로부터 달포간 애기와 지내면서 할머니 눈에 비친 아기는 어머니 눈에 비쳤던 아기와 사뭇 다른 느낌이다.
딸의 해산 전에 나는 멀리 나들이를 갔었기에 공항에 도착하자 딸에게 전화부터 했다. 예정일 일주일 전인데 마침 그날 아침에 이슬이 비쳤다고 한다. 태중의 아기가 할머니 계실 때를 잘 맞추었다. 딸애는 이슬만 비치지 진통이 없다며 걱정을 한다. "남들 얘기에 신경 쓰지 마라. 너의 할머니, 외할머니, 그리고 어머니도 모두 순산을 하셨으니 너는 순산할 수 밖에 없다. 너는 그 세 분밖에는 닮을 사람이 없으니까" 해도 마음을 못 놓는다.
다음날 새벽, 먼동도 트기 전에 전화기가 울리더니, 딸의 진통이 5분 간격이라 했다. 잠결에 택시로 딸네 가서 현관문을 여니,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소파에 걸터앉은 딸이 갑자기 눈에 들어온다. 문득 내가 딸애를 가졌을 때도 저렇게 부풀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병원에 데려가서 분만실에 들여보내고 괜히 초조해 하는데 간호사는 애기 아버지만 들어오라며 아버지가 가위로 탯줄을 자른다고 한다. 그리고 보니 대기실에는 장모님들만 우왕좌왕하고 아버지 후보들은 흰 가운을 입고 분만실을 들락거린다. 나는 격세지감(隔世之感)으로 책장만 넘기고 있는데 산모들의 산통 외침과 애기 소리가 대기실까지 들렸다. 사위는 10시에 5센티, 10시 반에 8센티뀉.하며 핸드폰으로 상황을 알려주었지만, 나는 분만실의 문이 열릴 때마다 벌떡 일어나 내 손자인가 싶어 놀라곤 했다.
내가 미국에서 딸을 낳을 때는 새벽이었다. 저녁부터 진통하다가 분만실에 들어가니 남편이 보낸 안경을 간호사가 갖다 주었다. 격막 마취로 고통을 못느끼니 천정에 설치된 거울로 자기가 해산하는 광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TV를 보듯 거울을 보는데, 내 아기가 탯줄을 줄줄이 끌며 나오자 "딸이다."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삼십여 년 전 일이다.
분만실의 문이 또 열렸다. 아기를 안고 나오는 간호사 뒤에 사위가 서있다. "순산 했어요." 보통 "순산"이라 하면 딸이던데, 요즘은 초음파로 미리 알려주니 뉴스도 아니다. 신생아실로 가는 길목에서 아기를 보았다. 투명플라스틱 침대에 누운 아가는 눈을 뜨고 있다. "아가야 너와 나의 첫 대면이구나, 반갑다." 내가 말하니 아기가 갑자기 활짝 웃는다. 나는 밀려오는 감동으로 가슴이 꽉 차올랐다. "배냇짓이에요" 간호사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해석은 내 맘이다. 방금 이 세상에 나온 아기 같지 않게 눈동자를 굴리며 주위를 둘러보고 하품을 하고 간호사가 침을 닦아주니 귀찮다고 얼굴을 찡그리기까지 한다.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탄생인가.
애기아버지는 아직 발그레함이 남아있는 표정으로 난생처음 본 해산 광경을 이야기 한다. 산모가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힘을 주자 순식간에 옹애 소리가 들렸고 생전처음 가위를 쥔 자기 손이 손수 탯줄을 자를 때는 상당히 떨렸다면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긴장된 순간이었지만 너무나 뿌듯하였다고 한다.
한참 만에 산모와 아기가 입원실로 올라왔다. "엄마 나 낳을 때도 그렇게 힘들었지요. 회복실에서 엄마생각만 했어요." 딸이 내게 덥석 안기며 말한다. 둘이서는 눈물이 그렁그렁 해가지고 더 꼭 안았다. 내 아기가 자기아기를 낳았으니 대견하고 고맙고 가슴이 벅차다. 아기는 산후조리원에서 배꼽이 떨어지고야 우리 집에 왔다.
오랜만에 아기를 안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몽글몽글 피어난 사랑의 봉오리들이 아기를 볼 때마다 분출을 한다. 어미는 의무가 앞서고 할미는 사랑이 앞서는가 보다. 외할미의 눈으로 본 손주는 어미의 눈으로 보이지 않던 새로운 면이 보이는 것 같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처음에는 옹애옹애 하더니 차츰 소리가 깊어지면서 달라졌다. 아기가 모음연습을 하는지 '오' 발음에서 차차 '아' 발음으로 바뀌어갔는데, 아기의 소리가 울음이라기보다는 자기표현의 언어로 들린다. 울음소리가 상당히 멀리 들리고 시끄러운 이유는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안간힘일 것이다.
산모가 잠을 길게 자고 쉬려하면 도리어 가슴이 뭉쳐 열이 나고 몸이 무거운데, 젖을 자주 물리면 자궁수축이 빨라지고 젖 몽우리도 쉽게 풀리고 몸이 가벼워진다. 이제 보니 어머니가 자애로워서 의지를 가지고 젖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모체는 아기의 조정을 받아서 아기울음 소리에 갑자기 젖이 돌아 뚝뚝 떨어지고 아기 생각만 해도 젖이 도니 신기한 일이다.
아기는 잠이 깨면 예외 없이 혼자 운동을 하는데, 단전을 불룩불룩 움직이며 호흡을 하면서 팔다리를 한쪽씩 차례로 이완시켜주고 온몸을 움직인다. 성장해가면서 하나씩 힘이 생겨 가는데, 울 때도 단전만 땅에 붙이고 팔다리를 모두 들며 운동을 하는 것이 국선도 단전호흡의 동작 그 자체이다. 나는 4년째 국선도 수련원에 다니면서 단전호흡을 새롭게 배우며 그동안 건강도 차츰 회복되고 있는데, 이제 보니 신생아 때부터 하던 것이었다.
아기를 돌보면서 조물주의 이치가 새삼스럽게 느껴지고 더욱 감사함이 느껴진다. 아기가 쉴 새 없이 먹어대고 기저귀 갈라고 하지만 울어도 예쁘고 똥 싸도 그저 예쁘기만 하다. 누구를 그렇게 댓가 없이 사랑한다면 이세상이 얼마나 화기애애하게 달라질 것인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이렇게 무조건 사랑하고 먹여주고 모든 걸 해결해주는 관계로 시작하여 일생을 내리사랑으로 지내게 되나 보다.
이렇게 하여 새로운 세대가 시작이다. 첫손주는 우리 모두의 "호칭"을 업그레이드시켜 주었다. 나는 할머니가 되었고 내 유치원생 막내조카는 졸지에 아줌마가 되었다. 호칭이 달라지고보니 새로운 마음으로 더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각오가 생긴다. 새로 부모가 된 딸네도 그럴 것이다. 항상 기쁨을 주는 사람으로 키우기를 기대해본다.
눈을 감던 뜨던 아기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좀 전에 만 해도 여행지의 유채꽃이, 호박이, 그리고 바로크식 궁전이 아른거렸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