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마음

내 휴가 2박3일

이예경 2010. 1. 2. 17:37

12/30에 작은아씨가 양력설에 가정모임 한다며 어머니를 모시러 온다고 연락을 했다

마침 1월초에 수원에서 청평으로 이사가면 자주 뵙기 어렵다며 두밤 같이 자고 싶다는 것이다

사흘치 약과 속옷을 챙겨 가방을 꾸려드리고 나니

작은아씨 차에 올라앉은 어머니는 행복감이 얼굴에 번진다

 

잘 다녀오시라고 배웅하고 시야에서 자동차가 사라지자

나는 절로 얏호! 소리가 나온다....나 2박3일 휴가 받았다!!!

그러다가 내행동이 웃겨서 혼자 중얼거린다.

....속보이는 짓이지만 시원한걸 어떡해~

 

당장 사무실에 가서 옵빠한테 저녁 먹고 극장에 가자고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일이 생겨 사무실에서 있어야하는 모양이다 ...나 참!

그럼 거실에 노래방 기계 있으니 크게 노래라도 불러볼까...

혼자 집에 오면서도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단 이틀간 만이라도 

샥-샥- 옷이 끌리는 소리내며 기어다니는 어머니에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식사시간에는 쩝쩝소리, 반복되는 긴 트림소리, 방구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고

온종일 왕왕울리는 티비소음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밤새도록 전등을 켜고 지내는 어머니방에 신경을 안써도 된다

한 뼘 정도 방문을 노상 열어놓고 온종일 문밖동정을 살피시는 어머니방 앞을

지날 때마다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집에 들어와 소파에 편안히 앉아본다 ....누워도 본다

옆방에 어머니가 안계시다고 생각하니 신경쓸게 없어서 괜히 더 편안한것 같다

 

아참! 일해야지...난 나가면 밖에 일이 기다리고 들어오면 집에 일이 쌓여있어 쉴 팔자는 아니다

저녁이지만 년말이니 방방이 이불 빨래를 걷어다 세탁기에 넣고

부엌을 말끔히 치우고 쓰레기 버리고 선반이니 냉장고 청소니 하면서 속이 시원하다

 

신나게 일하다가 문득 내자신에게 물어본다

...그래도 어머니를 4년이나 모셨는데 어디 가시고 안계시면 뭔가 썰렁해서 그리워야하는거 아닌가

...그러게~ 네 며느리가 너 없을때 그렇게 생각하면 너의 기분이 어떨것 같으냐

...좀 섭섭하겠지~ 그래도 난 내 시어머니보다는 잘하고 있는것 같은데....

...그렇다면 네 시어머님이 평소에 뭔가 공헌을 하고 살았다면 어머니가 그리울까....

...글쎄.....

혼자서 주거니받거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본다

 

저녁에는 티비 켜놓고 옵빠랑 딩굴딩굴 편하게 누워 얘기하다 시간 보냈고

밤에는 컴퓨터 붙잡고 있다가 늦게 잤고 ....

그러다보니 아침에는 늦잠을 잤다...

눈 떠보니 날은 밝았고 ....9시 반이랜다...기막혀!

 

새벽운동도 안갔고

7시 반에 가정예배도 안드렸고

8시 전에 하던 아침식사는 9시반에 했고....

어머니가 안계시니 일과 시간표가 억망이 되버렸다

 

이제보니 어른이 집에 계시다는 것 만으로도

한가지 일은 하시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모범을 보이고 베풀고 내리사랑하고 그러는것 이전에 말이다

 

......어머니는 1월2일 아침에 귀가 하셨다

작은아씨는 어머니를 내려주며

"아이쿠 어머니가 큰 짐이에요 짐" 한다

교회일 때문에 일찍 나와야하고, 가는길에 어머니를 모셔다 드릴려했는데

"더있다 가란 말도 없이 아침부터 내쫒느냐"고 어머니가 불평을 하더니

화장실에 들어가 앉으셔서 한시간 가까이 나오지 않더란다

달래서 모시고 나오느라 땀을 뺐다고 한다

 

눈때문에 아파트 현관이 미끄러워

보행기를 든 어머니는 발을 떼는게 조심스럽다

부축을 하며 걱정스럽게 내려다 보다가

........바꿀수 없는 일은 즐겨라!..........나는 발상의 전환을 해본다

그래도 그 정도라도 이동하실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못 걸으시면 내가 더 힘들었을텐데 ....다행이지 뭔가....안 그래?

 

어머니가 내집으로 들어오시더니

평소처럼 현관에서부터 기어서 방에 들어가셨다

옷을 벗어서 집어 던지고, 전깃불 밝히고, 티비 크게 켜고.....일상이 시작되었다

 

내 휴가는 끝났다

뭐 특별한 일도 없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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