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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종이(black paper). 미국인들은 김을 이렇게 부른다고 미국에서 생활했던 이에게서 들었다. 까만 종이에 밥을 얹고 돌돌 말아 간장에 찍어 먹는 모습을 신기해 하더란다. 우리네 조상은 바다물 속에서 너울거리는 이것을 어찌 얇게 떠서 두고 두고 먹을 생각을 하였을까. 어릴 적 이 까만 종이는 엄마를 비롯한 동네 아주머니들에 의해 더 맛있는 먹거리가 되었으니 바로 '김부각'이다.
"처음 한 장은 풀을 조금 묻혀서 얇게 발라야 돼요. 그 위에 붙인 김에는 많이 발라 줘야 깨가 잘 붙재." 손을 부지런히 놀리면서도 언제 다른 분 하는 것까지 보고서는 김부각 만들기 노하우 중 하나를 일러 주신다. "안 먹고 말지. 요즘 세상에 누가 이런 것을 만들어 먹는다요. 먹고 싶으면 백화점에 가서 사 먹는 게 낫지, 김부각 한번 먹으려다가 몸살 나겠네." 사진 찍으러 갔다가 졸지에 사진 아닌 깨를 찍으며 나는 투덜거린다. "백화점 가서 만들어진 것 먹어봐라. 이런 맛을 볼 수 있을지 아냐?" 엄마의 한마디는 한낱 말발이 아니고 사실이다.
한 장의 김부각이 탄생되는 데는 잦은 손길과 48시간 이상이 필요했으나 먹어 치우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게눈 감추는 시간. 김부각이 마르기를 기다리며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엄마는 화전도 부쳤다. 지천에 흐드러진 매화와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진달래를 수놓은 화전으로 부각팀은 간식을 먹었다. 볕이 좋은 한나절 나란히 줄 맞추어 마당에 널린 김부각을 보며 엄마는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했다. 자극적이지도 않는데 자꾸 손이 가는 김부각 맛의 비결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만드는 이의 은근과 끈기가 시간과 잘 버무려진 먹거리. 인스턴트와 차별화되는 바로 이 미덕이 입맛을 당기게 하는 중요한 요인은 아닐까. 입이 심심할 때 간식으로, 손님 오셨을 때 접대용으로, 요긴한 밑반찬으로 한동안 김부각은 사찰 식구들 입을 즐겁게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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