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머니가 금욜에 아버지 뵈러 가자고 했기에 떠나기전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조카가 받더니 할머니가 벌써 외출했으며 1시반에 돌아온다고 전하라 했단다
잠시 문밖에 나가신게 아니고? 점심을 잡숫고 온다고?...
1시반에 돌아오신 어머니는 구청에서 노인잔치를 아주 크게 잘 차렸더라하신다
그런데 힘들다고 누우시더니 일어날 생각을 안하신다
평소에 아침 10시에 떠나도 친정에 어머니를 모셔다드리고
내집에 오면 오후 6시였는데 오후 2시에 떠나면 몇시에 돌아오시겠다는건가...
나는 조금 짜증이 나서 어머니께 투정스럽게 말했다
"하루 한탕도 어려운데 기운 없다는 노인네가 오전에 경노잔치 같은델 왜 다녀오신대요?"
어머니는 갑자기 어성을 높히며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오라는데 있으면 다 가봐야지... 내년에는 못갈게 뻔한 거 아니냐?"
나는 할말이 없어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노인네 변덕을 누가 어떻게 이기겠는가.......
어머니가 쉬기는 좀 쉬어야할 것 같아서 결국에는 2시가 넘어 집을 나섰다
어머니가 좀 피곤해보였기 때문에 평소와는 달리 말 붙이기가 조심되었다
[2]
병원에서 뵌 아버지는 여전하셨고
틀니가 불편해져서 김치를 씹으려면 좀 아프다고 하신다
칫과치료가 필요하다고 하셔서 예정엔 없었지만 집으로 모시고 가기로 했다
토욜 오전에 칫과에 가시고 월욜에도 가시고 화,수 정도에 귀원 예정이시란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와 별로 이야기를 나눌 새도 없이 아버지 외출 준비로 바빴다
엄마는 병실에 가서 짐을 꾸리고 간병인은 아버지를 외출복으로 갈아입히는 등
그리고 나는 3층 간호사실에 가서 집에서 드실 약을 미리 주문하고
원장님을 만나 상담하고 진단서를 신청하는 등 할 일이 많다
휠체어 보행기 오줌통이니 보따리도 차에 실어야한다
자동차 앞칸에는아버지와 내가, 뒷칸에는 어머니와 조카딸이 앉았는데
뒷칸에 보행기와 함께 앉았기 때문에 좌석이 불편하셨을 것이다
트렁크에 휠체어를 싣고 짐을 실으니 그것만으로도 꽉 차서 그럴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러나 어머니께는 달리 편하게 해드릴 수는 없었다....
몸 편치않은건 참을 수 있어도 마음 불편한건 참기 힘들다하시니.....
엄마가 안 오실 수가 있겠는가....
[3]
진주 아파트 집 근처에 오니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지신듯했다
3개월만에 와보시는거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동네를 둘러보고 싶다고 하셔서 아파트 주위를 빙빙 돌아 집에 당도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휠체어를 타시던 옛날과 달리
이번에는 직접 걸어 에레베타까지 가시겠다고 한다
보행기로 잘 가시는 것을 보니 눈물겹게 운동을 많이 하신 티가 난다
휠체어는 빈 채로 굴려서 집으로 가게 되었다
현관에 당도하니 어머니는 플라스틱 바께스에 물을 담아 오셨고
내게 아버지를 씻기라 하고 어머니는 황급히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아버지 얼굴이 미끈덩미끈덩하다
목은 안 미끈한걸 보면 얼굴에만 로션을 바르셨나보다
내손주들 얼굴 씻기듯이 정성스럽게 문질러 구석구석 씻겨 드렸다
손에도 거품을 잔뜩 내면서 맛사지 겸해서 문질러 드렸다
새로 따뜻한 물을 받아다가 잘 행구어 드렸더니
자꾸만 "됐다됐다" 그러신다
......
초등시절인가 어릴적에 아버지가 목욕시켜주던 생각이 났다
더운 여름 밖에서 놀다 먼지쓰고 들어오면 마당에 계시던 아버지가
내가 싫다고 해도 대문옆 수돗가로 나를 데려가 바가지로 찬물을 팍팍 끼얹어주셨다
나는 매우 부끄러워서 즐겨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온식구가 같이 공중 목욕탕에 갈 때가 있었다
부모님과 딸 넷이 목욕바구니를 들고 공중목욕탕 앞에 당도하면
어머니는 내 등을 떠밀며 "아버지를 따라가라" 하셨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남탕으로 들어가시고
엄마는 조무래기 동생들을 데리고 여탕으로 들어가셨다
아버지가 후딱 먼저 씻으시는동안 나는 할아버지들과 아저씨들을 구경했다
엄마는 때를 밀고 비누질하고 물을 끼얹은 다음에 새로 또 때를 밀고 비누질하고
껍질을 완전히 벗겨내서 완벽을 기하는 스타일이었고
아버지는 그렇게 반복은 안하셔서 간단해서 좋았다.....라고
씻기는 중에 아버지께 이런 옛이야기를 해드렸더니 웃으시며
"너희들은 내가 기억 못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알고 있구나" 하셨다
[4]
그러다보니 6시반이라 나는 슬슬 집에 갈 준비를 한다
8시에 약속이 있기도 하고 내집에도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는 시어머니가 계시니....
황급히 인사를 하고 진주아파트를 나섰다
퇴근 차량들로 역시나 교통이 꽉 막혀 길이 주차장 같다
라디오를 켤려고 하는데 전화가 따르릉 울렸다
"너 얄미워 죽겠다. 내가 너 저녁 먹여 보낼려고 집에 오자마자 숨도 안돌리고 부엌에서
저녁상을 차리고 있었는데 어째 밥도 안먹고 가버리냐"
엄마가 목청 높여 날 성토하신다
내가 큰 불효를 했다....
나 바쁜거만 생각하고 엄마 마음은 미처 생각 못했다
집에 와서 밥먹으면서 엄마 생각을 했다
다음엔 저녁밥 먹고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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