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방

순천 선암사

이예경 2016. 3. 20. 12:26



 순천 선암사에 다녀왔어요


아침 7시 반에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주차장에 내가 타고갈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는 보통보다 더 큰데 28 인승 버스라 좌석이 넓직하고 편안했다.

바닥에 마루가 깔리고 호화버스인것 같다


5시간가량 걸려 선암사 주차장 도착

선암사는 조계산(해발 884m 전남 순천시 승주읍과 송광면에 걸쳐 있음) 의 능선아래

자라잡았고 창건된지 천년이 넘은 고찰이다

창건 주에 대하여 삼국시대 아도화상 창건설도 있으나

역사적으로는 신라말의 도선국사 창건설이 설득력이 있다

고려시대는 물론 배불숭유시대인 조선에 이르도록 수많은 고승을 배출했고

현재까지 구도자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단다

 

선암사 주차장에서 선암사까지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


선암사로 가는 길은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은 숲을 이루는 나무들이

다채로울 뿐 아니라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어서 더욱 더 좋다

시냇물이 맑기도 하지만 졸졸 흐르는 소리가 음악 그 자체다

15분 가량 오르면 오른편 길섶으로

부도 11기와 비석 8기가 줄지어 서있는 부도밭(浮屠林)이 나온다.


선암사 입구 탑비전

 - 8개의 비 중에 상월대사비만 정조6년 1782년에 만들었고

나마지는 일제강점기에 제작되었다고

 

입구의 부도밭길 옆에 자리한 부도밭 중 화산대사 부도는 (높이 4.1m로 1928년 추정) .

원숭이 처럼 생긴 네 마리의 사자가 삼층석탑을 지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특이하다.

 

앞줄 왼편에서 세 번째 부도가 약간 방향을 비틀어져 빼뚜름하게 있는 것은

묘향산에서 입적한 주지 스님을 위하여 묘향산을 향해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 규격화된 부도 탑을 배치하면서

이런 파격적인 착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부도밭을 지나 계속 가면 길가에 절하고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장승 한 쌍이 서 있는데 특이하게도 모두 남자상으로, 정묘년(1987)나무장승이다.


원래 이 자리에서 70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킨 국내 최고의 갑진년 나무장승(1904)

10년이면 썩는 보통 장승과 달리 조직이 치밀한 밤나무로 만들어져

쉽게 썩지 않았고 지금은 경내의 설선당으로 옮겨져 보호받고 있다.

 

이런 길을 제법 걸어가야 절이 보인다

속세에서 들어오는 중생들이 은은한 자연경관을 지나치며 한참 걷는동안

속세를 씻고 들어오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승선교

가련한 정묘년 장승을 지나 계속 큰길로 걸어올라가면 왼편에 계곡을 가로지르는 아치형 돌다리인 작은 무지개다리(虹橋)가 나타난다. 이 다리를 건너 모퉁이길을 따라 돌면 반원형의 큰 무지개다리가 나오고, 이 다리를 밟고 건너면 선녀가 하강했다고 하는 강선루(降仙樓)로 향한다.

두 무지개다리 중 큰 무지개다리가 선암사의 아이콘이자 대표적인 명물인 보물 제400호로 지정된 승선교(昇仙橋)로 일반 관람객들은 대부분이 그냥 지나쳐 간다. 선암사에서 2개의 승선교를 만들어서 계곡을 건너고 또다시 건너게 한 것은 현세와 선계를 구분하려는 것이라고 하지만, 승선교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숙종 24(1698) 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親見)를 기원하면서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그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아 낙심하여 장군봉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하였다. 이때 홀연 한 여인이 나타나 구하고 사라졌다.

대사는 홀연듯 자신을 구해준 여인이 관음보살의 화신임을 깨닫고 대웅전 뒤에 관음보살을 모시는 전각인 원통전 (圓通殿)을 지어 관음보살을 모셨으며, 장군봉에서 자신이 몸을 던져 떨어지려던 곳에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세웠으니 이것이 바로 신선이 되는 다리인 승선교이다.



앞에 보이는 다리가 승선교

속계에서 선계로 오르는 정취를 자아낼만큼 주변 경치가 아름답다

원형의 아치가 물에 비친 반원과 이어져 가득한 원을 이룬다



이곳 다리 아래서 강선루를 봐야만 물 위에 투영된 강선루와 지상에 세워진

강선루가 하나가 되어 완연한 원을 이루어 보이니

불가에서 말하는 공(, )이자 선가(仙家)에서 말하는 선녀하강(仙女下降)이다.

두 무지개다리는 대소의 차이가 있을 뿐 축조방법이나 겉모습에는 차이가 없다.

큰 무지개다리는 길이 14m 높이 7m 너비 3.5m,

길게 다듬은 30여 개의 장대석을 연결하여 홍예석을 드리우고 홍예석 양쪽에 잡석을 쌓아

계곡 양쪽 기슭의 흙길에 연결시켰으며, 위쪽에는 흙을 덮어 길을 만들었다.

기단부는 자연암반을 그대로 이용하여 홍수에 쓸릴 염려가 없도록 하였으며,

홍예석 중간에는 용형상을 한 이무기돌을 돌출시켜 장식적인 효과와 함께 재해를 막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승선교는 숙종 24(1698) 호암대사가 축조했으며, 순조 25(1825) 해붕스님에 의해 중수되었다.

영조 5(1729)에 놓은 보성 벌교의 홍예(보물 제304)도 선암사 스님들의 솜씨라고 전해온다.



작은 무지개다리에서 큰 무지개다리로 이어져 강선루에 이르는 길은

강선루로 직접 통하는 큰길이 생기기 전 선암사에 이르던 옛길이다.

이 길로 들어서야 비로소 반원형의 승선교가 물에 비치어 완전한 원형을 이루며,

강선루가 이 원 안에 들어앉은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선암사는 선녀와 단단한 줄이 닿아 있는 게 틀림없는 듯하다.

이름에서부터 선녀가 내려와 계곡에서 목욕하고 놀다가 하늘로 올라가는 선경이 떠올려지고,

그 이미지가 풍경으로 되살아난 듯하여 신비롭다.

.

강선루

강선루가 사찰의 출입용 문루 역할을 하는 팔작지붕의 중층누각이다.

길 중간에 있는데 사찰의 실질적인 경역이 여기서 시작된다.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 온다는 뜻으로 손님을 높여 부른 의미인 강선루는

누하 정면 1칸 측면 1칸이지만 2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인 2층 팔작지붕집이다.

초창연대는 알 수 없으며 1930년에 수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측면 기둥 중의 하나가 계곡에 빠져 있는 점이 특이하다.

강선루에서 뒤를 돌아보면 굽어흐르는 계곡물 사이로 두 다리가 크고 작게 잇달아 있어 더 운치 있다.

일주문에 이르기전 일주문 밖에 누각을 세우는 일은 드문 일이기도 하고

또 손님을 반갑게 맞이 한다는 선암사의 전통이기도 하다는 강선루에

올라 둘러보는 경치가 더 멋지지만 오르지 못하도록 문이 잠겨 있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


삼인당(三印塘)

강선루에서 한 모롱이를 돌면 길다란 타원형의 연못 가운데에

알 모양의 인공섬을 품은 연못이 바로 삼인당(三印塘)이다.

연못의 독특한 모습은 그 형태 안에 심오한 불교사상(4)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불교의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

이라는 삼법인을 뜻하며 만물은 변해서 그대로인 것이 없으며,

이것을 깨달으면 열반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로 불교의 중심사상을 나타낸다.

삼인당(三印塘)의 불교사상:

가운데 알 모양의 섬은 자각자리(自覺自利),

긴 타원형의 못은 각타이타(覺他利他)를 의미한다고 한다.


 


 

 

 

 '깐뒤' 선암사의 명물 

선암사에서 독특하게 눈길을 끄는 것이 대각암 가는 길의 해천당 옆에 자리잡은 뒷간으로 선암사의 명물이다. 입구에 간판이 걸려 있는데, 왼쪽에서부터 읽어깐뒤로 애교스럽게 불리곤 한다. 예로부터 어느집 가풍(家風)을 알려면 화장실과 부엌을 보라고 했는데, 크고 깊은데다 깔끔하고 냄새도 없으면서 고풍스러운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자형의 이 뒷간이야말로 단아한 선암사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다.

바닥의 짜임도 우수하고 내부를 남녀 구분한 것이나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도록 2열로 배치한 점도 눈에 띈다. 가장 안쪽에 앉아 벽면을 보면, 바깥 숲속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벽의 아랫부분에 살창이 나 있기 때문이다. 이 살창은 환기구 역할도 한다. 허물어지기 직전의 건물을 최근 보수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절집 화장실로 꼽히며 화장실로는 유일하게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도지정문화재 자료 제214).


선암사 경내 동백꽃 2016.2.23 현재


사찰의 주불전인 대웅전


대웅전 앞마당에 동3층석탑과 서3층탑이 있다.

동시에 축조되었으나 잘보면 상륜부의 보주가 다른모양이다

1986년에 해체복원되었는데 동3층석탑에서 금동사리탑이 나왔다


동서 삼층석탑 만세루를 옆으로 돌아들면 대웅전과 설선당, 심검당이

만세루와 함께 안마당을 이루고 있는 대웅전 영역으로

이곳에서는 앞마당에 서 있는 동서 삼층석탑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외관상 크기와 양식이 비슷한 두 기의 삼층석탑은 높이 4.7m이며 보물 제395호이다.


우선 서삼층석탑을 살펴보면 정방형의 지대석 위에 날렵해뵈는 기단부가 올라서 있다.

기단부를 이루는 하층기단과 상층기단은 여러 개의 석재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주와 탱주가 표현되어 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1매씩인데

몸돌에는 우주가 모각돼 있고, 지붕돌은 층급받침이 4단이며 지붕돌 위에는 독특하게도

호형(弧形)과 각형(角形) 두 단으로 이루어진 몸돌받침이 있다.

 

대부분의 신라 석탑은 이 부분이 각형으로, 한 단 또는 두 단이다.

지붕돌은 반전이 심하여 날카로운 인상을 가지며 모서리에는 풍경을 달았던 듯

구멍이 한 모서리에 8개씩 뚫려 있고, 초층 몸돌은 윗면이 아랫면보다 2정도 좁다.

3층 몸돌 역시 윗면이 0.5좁다. 이는 탑이 높아 보이게 하는 일반적인 수법이다.

상륜부는 노반이 남아 있고 그 위에 작은 석재들이 놓여 있다.



숨은 부처님 찾아보세요~ 돌과 함께 계신 부처님 몇분일까요?

자세히 보면 쌓인 돌 몇군데에도 작은 부처님들이 함께 기도를 해주는 모습이 정겹다


 


신라시대부터 현재까지 계속 증축을 해선지 각시대의 건물들이 어울려 있고
산쪽으로 높이 올라가면 계속 건물이 나오니 쾌적하기에 앞서 마을을 이룬다할까

대처승이 계시는 곳이라선지 친근감이 느껴지는 절 동네같다



 

선암사 경내의 연못으로는 설선당 서쪽의 쌍지(雙池),

삼성각으로 올라가는 계단 왼편 축대 아래에 조그맣게 만들어진 방지(方池)가 있다.

방지와 쌍지에 고여 있다가 작은 폭포를 이루며 떨어지는 물줄기가 있는데,

이 물은 인공수로를 따라 삼인당으로 흘러든다.

쌍지는 중앙에 통로가 있어 건너다닐 수 있으며,

방지 옆 무량수각 앞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생불(生佛)이라고도 불리우는

오래된 누운 붉은 소나무(赤松) 한 그루가 있는데,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200년 된 이 적송 한 그루는 참으로 멋지다.



선암사에 50주 정도 매화나무가 있는데 이 백매화가 가장 오래되었고 상태가 좋다

600여년전에 심었다고 전해지며 선암매라 불리우며

이 매화꽃이 피면 그걸 보려고만 오는 관광객도 많다고 한다






물맛이 시원하고 혀끝을 짜르르하게 만드는 기막힌 맛을 꼭 보시고 오세요


 




선암사 초입

다시 속세로 돌아가는 길






..... 이곳을 지나가면 다시 속세로 나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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