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마음

상처주고받기

이예경 2015. 5. 25. 11:41

이학년 순이가
일학년 나한테
숙제를 해달라고 자주 찾아왔다.
 
어느 날, 윗집 할머니 웃으시면서
순이 나중에 정생이한테
시집가면 되겠네. 했다.
 
순이가 말했다.
정생이는 얼굴이 못생겨 싫어요!
 
오십 년이 지난 지금도
순이 생각만 나면
이가 갈린다.
 
  권정생의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 2〉라는 시인데 분량을 조절하고 조금 손을 봤다. 십 년 전이던가 처음 접했을 땐 대강 ‘흐흐 참 귀여운 영혼이시네’ 했던 것 같다. 이제 보니 상처라는 참 어려운 ‘개념’을 이렇게 쉬우면서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우리는 누군가의 ‘순이’가 되고 또 누군가의 ‘정생’이가 되어 온 것은 아닌지. 받지도 말고 주지도 말자고 다짐하지만 삶 곳곳에서 평생 계속되는 것이 바로 상처이다. 그렇다면 상처 주고받기란 살아있다는 증거인가? 사람 사는 게 다 다르듯 상처와 대면하는 방법 또한 각양각색인 것 같다.
 

상처 주고 받기란 살아 있다는 증거인가? 

 
 “네 아버지 데리고 있던 년 생각하면, 그 첩이라는 것은 생각을 아니 하고, 그것이 얼마나 망령되고 어리석은 여인인지, 간사하고 꾀 많고 자식의 말이나 종의 말이나 모두 헐뜯고. 오로지 그 년에게 붙어서 당신 것을 맡기고 생각하니 누구를 원망하랴 싶구나. 아마도 나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니 속절은 없다. 내 서러운 뜻을 남편과 자식도 모르니 늘 몹시 용심이 나니 살지를 못하겠구나.”
 
  450여 년 전, 남편과 그 첩으로 인해 상처 입은 한 중년 여성이 시집간 딸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는 1977년 충북 청원의 비행장 건립 공사로 순천김씨의 묘를 이장하면서 출토되었다. 순천김씨는 채무이(蔡無易: 1537~1594)의 부인으로 ‘흥덕골 찰방’ 김훈(金壎)의 딸이었다. 편지의 주인공인 친정어머니는 신천강씨로 창원 부사를 지낸 강의(康顗)의 딸로 밝혀졌다.
 
  “집에 있어도 어느 종이 내 마음 받들어 일하여 주겠느냐  심열(心熱)이 있어 마음이 아찔하고 너희는 나를 살았는가 여겨도 이승에 몸만 있다. … 여자란 것이 오래 사는 것만큼 사나운 일이 없구나. 올가을은 더욱 마음을 잃게 되는구나. 아주 바삐 지나가므로 아무것도 보내지 못하니 광어 하나 민서방집.”
 
  ‘이승에 몸만 있다’는 어머니는 셋째 딸 ‘채서방집’으로 신세 한탄의 편지를 보내며 ‘광어 한 마리’는 가까이 사는 다른 딸 ‘민서방집’에 전해주라 하신다. 1580년대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순천김씨의 관 속에서 출토된 편지는 192건이다. 이 가운데 117건이 친정어머니 신천강씨가 보낸 것이고, 41건은 남편 채무이가 보낸 것이다. 그 밖의 것은 발신자가 다양했고 한문 편지 3건 외에는 모두 한글 편지였다.
 
  어머니 신천강씨는 가슴에 불이 붙을 때마다 딸에게 편지를 썼다. “종이나 남이나 시새움 한다 할까 하여 남에게도 아픈 기색 않고 있다. 너희 보고 서럽게 여길 뿐이지마는 마음 둘 데 아주 없어 편지를 쓴다.” “마음이 괴롭고 용심이 무한 나므로 특별히 아픈 데는 각별하지 않지만 늘 속 머리 아프고 가슴 답답하고 음식을 먹어도 내리지 않고, 밤이면 새도록 우는 날이 수도 없다.”
 

어머니의 심열(心熱)과 서로 다른 문법

 
  어느 날은 생원 아들이 편지를 보내왔다.
 “네 아버님께 생원이 편지를 하되, ‘어머님이 편치 않으신 증상을 적어 보내셨거늘 의원에게 물으니 약을 하셔도 마음에 용심이 계시면 어찌할 수 없으니 심중을 편하게 하고 한 가지 일도 서운할 일 없이 한 해나 약을 장복하면 없어질 것이라’하니 늙은 어미 홀로 두고 중병이 날로 심해간다 하니 민망하기 그지없구나.”
 
  어머니는 자신의 마음속 상처를 섬세하게 살펴주지 못하는 아들이 섭섭하다. 신천강씨가 생원이라 호칭한 아들은 김여물(金汝岉, 1548~1592)이다. 여물은 1567년(명종 22)에 생원시에 합격한 후 의주목사 등의 벼슬을 하다가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신립 장군과 순절한 충신이다. 신천강씨는 말한다. “생원에게는 말하지 말며 사위들과 남들에게 다 이르지 말고 너희만 보아라. 이렇게 앓다가 아주 서러우면 내 손으로 죽되 말없이 소주를 맵게 하여 먹고 죽고자 계교를 하니 다만 너희는 어이없이 되었다. 보고 불에 넣어라.”
 
  ‘즉시 불에 넣어라’는 부탁에도 불구하고 상처로 얼룩진 어머니의 편지를 딸은 고이 간직하다 저 세상으로 품고 간 것이다. 그 사이에는 아버지의 편지도 있었다.
 
  "우리는 옛날같이 살아 있다. 나는 병들고 네 어머님 시새움을 너무하여 병드니 너희는 오래지 않아 喪事를 볼까 한다. 그리 不通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情은 무진하지마는 숨이 가빠 이만 한다. 십이월 초팔일 父."
 
  신천 강씨의 차남 김여물 장군은 온 나라가 기리는 충신이 되었고, 그녀의 손자 김류(金瑬, 1571~1648)는 영의정이 되었다. 분명한 것은 어머니의 상처에 반응한 아들 여물의 방법은 어머니 신청강씨를 더 외롭게 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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