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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의 임신과 출산

이예경 2015. 5. 25. 10:52

전통시대의 임신과 출산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창세기 3장 16절)
 
구약성경에 의하면 임신과 출산에 따르는 고통은 자신의 명령을 거역해서 선악과를 따 먹은 하와에게 하느님이 내린 벌이다. 성경의 그 구절을 문자 그대로 신봉하는 사람들은 1840년대 후반에 등장한 클로로포름 마취제로 무통분만을 시술하는 데 대해 격렬하게 저항했다. 무통분만은 여성들에게 산고(産苦)를 부과한 하느님의 뜻을 거역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무통분만이 처음 시행되었고 반대운동도 가장 극렬했던 영국에서는 1853년 빅토리아 여왕이 마취하에 레오폴드 왕자를 분만하면서 저항의 기세가 꺾였다.
 
‘목숨을 건’ 임신과 출산
 
  개인차가 있지만, 여성들은 임신 기간과 출산 시에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경험하며 활동에도 제약을 받는다. 실제로 임신과 출산은 성경의 표현 이상으로 매우 큰 위험을 동반한다. 근대 이전에는, 요즈음과 달리 가임기 여성의 사망률이 같은 연령대의 남성 사망률보다 높았다. 반복되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수유 때문에 생기거나 악화되는 질병과 사고, 체력 약화 때문이며, 의학이 그런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의 관련 자료가 비교적 충실하게 남아 있는 스웨덴의 경우, 1700년대 모성사망비(母性死亡比)는 출생아 10만 명당 1000명가량이었다. 임신과 출산 때문에 사망할 확률(위험도)이 약 1%였다는 뜻이다. 만약 10번을 출산한다면, 죽을 확률이 10%나 된다는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모성사망비는 11.5명이다. 모성사망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던 ‘별로 오래지 않은’ 과거에는 임신과 출산이 가임기 여성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중대한 요인이었다. 그런데도 왜 여성들은 ‘목숨을 걸고’ 임신과 출산을 감행했을까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어렸을 때 이 시조 구절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주세붕(1495~1554)은 이 시조에서 어머니가 자식을 ‘기르신 은혜’도 언급하지만, 핵심은 아버지가 자식(아들)에게 생명을 준다는 점이다. 여성은 남편에게서 받은 생명을 ‘목숨을 걸고서라도’ 자신의 몸 안에서 길러야 하고, 자식이 세상 밖으로 나오면 양육을 해야 한다. 그리고 여성이 생명을 길러서 ‘아들’을 탄생시키는 신성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쫓겨날 수도 있다. 여성은, 남성에서 남성으로 이어지는 혈통과 가계 유지를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존재였다. 그에 따라 의사들도 자식을 잘 낳는 여성의 특징에 대해 관심이 많았으며, 모태 내의 여아를 남아로 바꾸는 방법도 연구했다.
 
〈동의보감〉에 소개된 ‘전녀위남법(轉女爲男法)’
 
  허준(1539~1615)이 편찬한 〈동의보감〉(1613년 간행)에는 다음과 같이 ‘전녀위남법(轉女爲男法)’이 기술되어 있다.
  “임신 3개월이 된 것을 시태(始胎)라고 한다. 이때는 남자와 여자가 구별되지 않았을 때이므로 약을 먹이고 방법을 쓰면 남자가 되게 할 수 있다[세의득효방].”
  “닭이 알을 잘 깔 때를 기다렸다가 도끼를 닭둥우리 밑에 달아매면 그 둥우리의 병아리가 모두 수컷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의학입문].”
  “석웅황(石雄黃) 1냥을 비단 주머니에 넣어 임신부의 왼쪽 허리에 두르고 있게 한다. 활줄 한 개를 비단 주머니에 넣어 임신부의 왼팔에 차고 있게 한다. 어떤 책에는 활줄을 석 달 동안 허리에 두르고 있다가 풀어 버린다고 하였다. 임신부가 원추리꽃을 차고 있게 한다. 수탉의 긴 꼬리털 3개를 임신부의 자리에 넣고 알려 주지 않는다[부인대전양방].”

 
  〈동의보감〉의 내용 대부분이 그렇듯이, ‘전녀위남법’도 허준이 창안해낸 방법이 아니라 〈부인대전양방〉 등 중국의 의학 명저에 나온 방법을 소개한 것이다. 전녀위남법은 1608년 허준이 선조의 명령에 따라 언문(한글)으로 펴낸 〈언해태산집요〉에도 나와 있다. 이전에도 이런 방법들이 소개되었지만, 허준의 책들이 나오면서 더욱 널리 알려졌다.
 
  1915년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에서 펴낸 〈조선위생풍습록〉에는 ‘도끼 방법’과 ‘수탉 꼬리털 방법’이 채록되어 있다. 그리고 유안진의 〈한국의 전통육아 방식〉(1994년)에 의하면, 50세 이상 된 초등학교 졸업 이하 학력의 부인들을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이 전녀위남을 기대하고 여러 가지 방술(方術)을 썼다고 하며, 며느리에게 그런 방법을 사용토록 한 경우는 90%가 넘었다고 한다. 그러니 조선 시대에도 당연히 전녀위남법이 광범위하게 쓰였을 것이다. 그만큼 아들 낳기를 간절히 바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