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노화통

이예경 2014. 8. 11. 15:26

 

노화통

 

엘리베이터에서 윗층에 사시는 교수님을 뵈었다. 인사를 건넸더니 손을 내저으시며 귀를 가리키신다. 보청기를 안하고 와서 듣기가 어렵다는 뜻인 거 같다. 팔순이 넘으니 건강이 나빠져 한심하다고 한숨을 쉬신다.

 

교수님은 대학강단에서 반생을 보내셨고 저서도 많고 고전음악 들으며 독서하는 일이 유일한 취미셨다. 근래에는 그저 동네산보가 유일한 취미일 뿐, 보청기를 해도 귀가 어둡고 시력까지 나빠져 책도 음악도 즐기지 못한다고 했다. 의사소통이 어려우니 보호자 없이는 외출이 어렵고 일상생활은 물론 부부간에도 의사소통이 쉽지않아 불편하시다.

 

나는 삼 년 째 노인복지관에서 일을 하는데 낯익은 회원이 어느 날 지팡이를 짚고 기운없이 나타나실 때 마음이 짠하다. 처음 회원 등록때 노익장을 과시하셨던 분인데 이제는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노화의 길에 들어섰으니 안쓰럽다.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는 없을까. 세상을 얻은 솔로몬 왕도 세상을 헛되다했고 불로초를 구해오라 했다는 진시황의 그 안타까운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어떤 어르신은 혈압 고지혈약을 복용중이고 보청기 없이는 듣지 못한단다. 백내장, 축농증, 임플란트, 척추수술, 무릎수술 등 웬만한 수술을 거의 다 받았다고, 옛날 같으면 벌써 저세상 사람이었을 자신이, 세상을 잘 만나 인조인간으로 살아있다고 하신다. 솔로몬 왕이나 진시황도 현세에 계셨다면 온갖 수술을 다 받았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200살을 넘길 수 있었을까.

 

노인복지관의 회원관리 일로 최근 2년 이상 이용실적이 없는 회원들의 상태를 알아본 적이 있다. 이사, 병환, 사망 등으로 분류를 한 다음, 다시 오지 못할 회원들의 이름엔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내용을 삭제하는 일이다. 처음 회원 등록했을 당시에는 영어나 컴퓨터, 댄스도 배우는 등, 활기 있게 여생을 보냈을 그분들의 연락처, 학벌, 가족관계, 전직, 취미활동 수강과목이력 등을 일일이 삭제하면서 컴퓨터 속에서 살던 몇 백 명 회원들을 내가 밖으로 날려 보낸 것 같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고 기분이 내려갔다.

 

그러면서 오랜 와병상태중에 돌아가신 아버지도 떠오르고, 중풍 후유증으로 9년째 힘들어하시는 구십 시어머니, 가끔씩 기운이 없으신 친정어머니등 내 주위 친척 어르신들의 미래의 모습들이 머릿속에서 빙빙 돌아간다. 조만간 세상을 떠나실 분들, 그리고 얼마 후 내 차례가 될 것이다.

 

시아버님은 백내장 수술을 위해 종합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그곳이 감옥 같다고 하셨다. 누구는 폐암으로 누구는 위장병으로 각자 자기의 죄값을 등에 지고 들어와 침대를 하나씩 차지하고 고통을 겪는 것 같다고 하셨다. 눈을 가리고 병원에 누워만 계시니 식사도 간호사도 맘에 안든다 하시며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노년은 인생을 살아온 벌일까. 아기로 태어나서 세월 따라 청춘이 왔듯이 노경도 바라서 온 것이 아님에도 마음 한쪽이 슬퍼진다. 세월은 약, 세월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며 지혜가 그만큼 늘어간다는데, 그래서 노인 한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 했고, 위대한 나라는 젊은이들이 망치고 노인들이 회복시킨다는 말도 있는데 노화가 벌이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만물의 생노병사는 조물주가 정해준 인생의 과정이 아닌가. 태어날 때 출생통, 진통의 과정을 거쳐야 어미의 몸에서 분리되어 세상구경을 할 수 있고 사춘기의 성장통을 거쳐야 성인이 될 수 있다. 짝을 만나 자손을 낳고 키우면서 인생의 쓴맛단맛을 보아야 중년고개를 넘어가고 회갑이 지나야 노인이 되는 것이다. 젊음은 아름답지만 늙음은 고귀하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노화의 과정 또한 진도가 나간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조물주가 정해준 인생의 숙제를 잘 이루고 다음과정으로 가려는 것이다. 진통 성장통 성인통 뒤에 오는 노화통이다. 어느과정 하나 맘대로 순서를 바꿀수 없고 앞쪽에서 졸업해야 다음단계로 갈수가 있는 것이다.

 

슬퍼할 일이 아니고 어찌보면 자랑스러운 일 일수 있다. 3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하면 축하를 해주듯. 회사에 입사하여 과장 부장 하다가 아로 승진, 결국에는 퇴임하듯 노화의 끝은 인생의 퇴임 즉 별세이다. 그 과정까지 잘 가기위해 얼마나 긴세월 열심히 살아왔는가. 노화통은 노인병에 시달리는 것이라기 보다는 열심히 인생의 마무리를 위한 준비를 하는 과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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