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마음

3/27 응급실에서 4

이예경 2013. 6. 10. 22:28
수요일도 부지런히 병원에 갔다
주차비를 툭하면 2만원도 내고 그랬기에 전철을 탔는데 한시간이 넘게 걸렸다
과천에서 4호선, 사당에서 2호선, 잠실에서 8호선을 타고 천호에서 내린다
친정에선 5분거리인데 내집에선 좀 멀다

아버지는 여전하신데 자꾸 시장하다고 식사를 가져오라고 하셔서 큰일이다
폐렴이 낫더라도 이제는 음식을 잡수실 수가 없다고 말씀드릴수 밖에 없다
간호사가 와서 우유암죽같이 보이는 영양링거를 매달았다

아버지 손등에 바늘이 잘 안들어간다며 다른자리에 꽂아야겠다고 한다
노환에는 몸이 마르면서 혈관도 가늘어지기 때문이란다
여기저기 해보다가 결국 왼쪽 정강이 아래 다리에 뚫고 주사바늘을 꽂았다
물같이 맑은 다른 링거는 포도당에 항생제와 위장보호제, 거담제를 넣었다했다
아버지께서 그 내용물이 뭐냐고 궁금해하셨다

그런데 나를 부르시더니 뭐라고 긴 문장으로 말씀하시는데
몇번이나 같은 말씀이지만 너무 어눌해서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
대충 짐작으로 이거에요 저거에요 물어도 다 아니라고 하신다
소통이 안되니 물론 아버지 자신이 제일 불편하실것이나 답답하긴 서로가 마찬가지다

웬일인지 아버지께서 누우신채 손을 허공으로 휘저으시며 뭐라고 말씀하셨다
주무시면서 하시니 잠꼬대 같으신데 잘보니 링거줄을 잡아당기고 계신다
의사는 안된다며 환자의 팔을 묶으려고 하였다
아버지 링거꽂은 팔에 수건을 둘둘 말아드리며 묶지는 말라고 부탁드렸다
그런데 시간만 나면 아버지는 링거줄을 잡아당기셨다
잠시 안보는 사이 줄이 없어져서 찾아보면 주먹안에 감추시고
꽉 움켜쥐고 계신다. 어디서 힘이 났는지 풀어서 꺼내는게 쉬운일이 아니다
간병은 이럴때 정말 힘들다

단순히 주사바늘이 들어간 손등의 통증때문에 그러셨을까
남은시간이 얼마 안남았는데 이런게 무슨 필요냐 그런 뜻이었을까

그러다가 시계를 보니 8시. 어머니와 동생을 남겨놓고 나는 슬슬 집에갈 차비를 하였다
종일 병실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 상쾌한 공기에 기분전환이 되는 것 같다
지하철을 타고 잠실역을 지날즈음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다시 열이 나시고 호흡이 가빠져 다시 응급실에 가셔야한다고 말이다
적극적인 치료를 하려면 아산병원응급실에 가야한다고 했단다
다시 중환자실에서 산소줄을 끼고 링거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전과 똑같은 상황.....
아버지께선 수욜 저녁 내내 새벽까지 열, 혈압, 호흡곤란으로 고생을 하셨다

노환의 병세는 정말로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내앞에 펼쳐지는 일들은 모두가 그전에 주위에서 익히 보아오고 들어왔던 스토리인데...
무슨, 정해진 각본따라 정해진 길을 가고 있는것 같기도 하다
다만 그전에는 내가 당사자가 아니었던 것만 다를 뿐이다
....그래서 어느 나이가 되면 인생이 평준화 되더라는 말이 있나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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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연옥
(03/29 07:39)
그렇지...
일어나는 모든 평상의 일들이
나와는 상관없었는데
별안간 내 일 되버리니
난감하기 그지없지.....

모두들 겪는일
아님 겪었던 일들인데

중환자실에선 원래 간병인을 들여보내지 않느데
시어머님땐
자기네가 통제곤란하니 들어와 간병하라더라
밤새 눈한번 못 부치고
발작하시는 시어머님과 지내다 보니
내가 먼저 가겠더라구

회복하시고도
몇년 더 사셨어....
김경애B
(03/29 14:22)

며칠 컴을 열지 못하고, 이제야 '응급실..' 을 읽었네요.

예경아, 큰 딸이며 맏며느리이니, 아무리 세상이 많이 변했다 해도 ...

힘 내라 우리 친구 예경 !
이예경
(03/30 09:27)
어르신을 모시고 살면서 어르신 병환때 모든 일을 감당했던 연옥이
경험담을 알려주니 힘이 되고 참 고마워요
양화진
(03/31 20:41)

나도 시부모님, 친정 부모님 떠나 보내면서 병원을 수없이 들락거리고
아주 힘들게, 그리고 너무도 고요하게 조용히 그래서 가시는 줄도 짐작 못하게,
이렇게 천지차이로 경험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지만

그러나 마지막 모습은 그 누구도 예감 못한다는 사실이지,
마지막이 평화로울 수만 있다면
조금 덜 살더라도 우리 모두는 그 길을 택하고 싶은 건데 ~~

양화진
(03/31 20:48)

예경이, 맏딸이라서 가지는 부담감이 어쩔 수 없이 배어 나오네,
너는 정신없이 이리 저리 뛰어 다니는데 그래도 우리는 춤을 추네 ~~

이예경
(04/01 11:28)
아프다고 자꾸 호소하시니 가는 날까지 고통없이 가시게 해주세요
의사한테 말했더니 대답이 ....
허허허 그게 모두의 소망이지요, 맘대로 될지 모르겠지만
그러니 쉽지 않다는 말씀인데...

애기들이 좁은데로 온몸이 나오느라 고통을 겪고
나비같은 미물들도 번데기에서 빠져 나오느라 고통을 겪는다던데
다시 저세상으로 가는 곳도 좁은 곳이 아닐까

그래서 고통이 따르고 세상과 주위와 가족들과 이별하고
몸속의 장기들이 하나하나 차례로 기능을 잃어가고
근육이 줄어지고 핏줄이 줄어들고 몸 전체가 말라 작아진 뒤에
갈 수 있는게 아닐까
김옥자
(04/04 17:21)
나도 맏딸인데 두려워.
닥쳐오면 잘할수있을까?

예경인 모든일에 모범이고 친구들이 많이 의지하고 존경한다.
그래도 힘내라는 말밖에...
김양순
(04/05 22:23)
예경 선배님, 요즘 게시판을 못 봐서
이제서야 아버님 위중하심을 알았네요
하루하루 변경되는 병환일지가
저두 염려됩니다
부디 극복하셔서 고통 없는 평안한
나날이 오길 기원합니다
선배님 온 가족들도 건강 잘 유지하시길 바랍니다
송영숙
(04/06 11:07)
예경아, 힘내! 무어라 할 말이 없네.
아버님이 정해진 길을 가고 계시다면, 그저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가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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