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마음

3/23 병원 응급실에서 (2)

이예경 2013. 3. 28. 23:21

 

가족들이 모여 차례로 아버지와 1:1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머리맡의 심전도 혈압 호흡 등의 수치가 오르락 내리락 했다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쉬면 수치가 내려가고 이야기에 활기가 생기면 올라가는 것이다

몇명이 손잡고 가슴을 쓸어드리며 붙잡고 기도를 해드리니 표정이 편안해지셨다


 

인사가 한차례 돌았지만 잠시라도 쉬는 동안 아버지의 활기가 내려가지 않도록

가족들은 번갈아 아버지가 궁금해하실만한 내용을 생각해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워낙 인자하셨던 아버지이신지라 우리는 쌓인 추억거리가 아주 많았다

 

 

손주들도 부부동반으로 아이들까지 데리고 속속 도착해서 시시콜콜 대화를 나누었다
회사에서 뭘하는지 어떤일을 하는지 애들은 몇학년인지 학교생활은 어떠한지...

손주 사위는 외할아버님을 처음 뵈었을때 손을 꼭 잡고 하신말씀을

- 내 손녀를 잘 돌보아주기 바란다 라고 하셨던 - 평생 기억하고 살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웠을때, 내맘을 알아주셨을때 등등 기억나는대로 주절주절

그런데 아버지께서 갑자기 코를 골며 주무셔서 “그만할까요”물었더니

“더해라. 듣고 있어”하신다. 동생들도 생각난듯이 앞다투어 추억담을 풀어놓았다

옛날 일을 되돌아보면서 아버지와의 추억이 더욱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아버지도 그때 일들을 기억하세요?” 하고 여쭈니 “물론이지 다 생각난다” 하셨다

어버지께서 우리에게 항상 든든한 내편이 되주신것 좋았다고 합창을 하니

아버지는 매우 흡족해하셨으며 계기판의 수치는 차츰 좋아지고 있었다.

 

의사들은 교대할 때마다 자주 와서 상태를 체크해주고 간호사들도 자주 들여다보며
두시간에 한번씩 이쪽저쪽으로 돌아눕혀 주고 세심하게 돌봐주었다


 

그런데, 오후가 되니 의사가 응급상황은 끝났으니 더 이상 해줄것이 없다고 한다

혈압도 정상 호흡도 정상. 아버지 기분도 좋아보인다

그러나 상황이 바뀔수 있으니 하루저녁 더 지켜보는것도 좋겠다고 결론이 났다


혈뇨, 폐렴이니 비뇨기과던 내과던 과가 정해져야 입원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더니 삼성병원에는 입원실이 없으니 협력병원으로 안내를 해주겠다고 하였다

 

어쨋던 그날 밤에는 평화롭게 잠이 드셨다
고비를 넘기신 아버지가 너무나 고맙고 다행스럽다

내일 일은 내일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엊그제 위급상황일때 전화를 받았던 두사람이 생각나서

이제 괜찮아졌으니 오지않아도 된다고 카톡을 띠웠다

비행기값이 어디 한두푼인가.... 하던일들도 마무리하고 오는일이 쉽지 않을것이다 

 

그랬더니 이미 비행기표를 구했으며 몇시간후 공항에 나갈 것이란다

일이 많아 이틀밤을 꼬박 새워 일을 마무리 짓고 인수인계까지 마쳤단다

맘먹은 김에 그냥 나오겠다고 하였다

 

부모님 위급으로 외국에서 자손들이 본의아니게

두세번씩 왔다가 갔다가 했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들었는데

이제보니 그게 남의 일이 아니었다

온다는데 극구 말릴수도 없어서 나는 그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의사에게 물으니 아무도 모른다고

하나님은 아실까요?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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