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낮에 모임에 갔다가 즐거운 기분으로 4시경에 귀가하여
잠시 숨돌리던 참에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속에서 나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평소와는 달리 긴장감이 배어있었다. 앰블런스를 타고 삼성병원으로 가는 중이라고 한다
아버지께서 숨쉬기가 어려우니 구급차 안에서도 위독할 수 있다고 의사는 말했단다
나는 욕조에 받아놓은 물도 놔두고 부랴부랴 옷을 줏어들고 삼성병원으로 향했다.
참, 사람 팔자 시간 문제다. 잠시전까지 치들과 희희낙낙했었는데 어찌그런일이 생겼나.
별생각이 다 들어 가슴이 두근거리고 현기증이 난다.
아버지께서는 파킨슨병으로 거동이 불편했으나 식사는 잘하셨는데
최근 한달전부터 기운이 떨어진다고 하셨던 참이다
삼성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아버지께서는 중환자침대에서 산소호흡기를 코에 꽂고
소변줄, 심전도줄...등등 주렁주렁 줄을 달고 입벌린채 드렁드렁 소리내며 누워계시고
모니터에는 혈압이 89/49, 호흡 분/12회, 맥박 산소유입수치 등이 표시되있고
혈뇨 때문에 소변은 자줏빛이고 아버지 손을 잡으니 열이 절절 끓는다
먼저 온 어머니와 동생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급성폐렴으로 열이 오르신것 같다. 아니면 방광염 문제인가
혈뇨는 병원에 오기전부터 있었던 건데 색깔이 진해졌다
저녁 8시가 되니 다행이 열이 떨어졌고 혈뇨를 씻어내리니 색깔이 옅어졌다
5년전 방광암수술을 2번 하셨는데 이번에 재발한것 같기도 하다
웬만하면 방광암치료로 수술도 하시고 항암치료도 하시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90세 아버지께서는 와병상태 5년차로 최근에는 기력이 떨어져
물리치료도 마다하시고 거의 누워서 계셨으며 욕창이 나기 시작하신 상태.
수술후 회복할 기력이 안된다고 의사가 우려를 표시했었다
적극적 치료와 보존치료중 어느쪽을 택할 것인가는
보존치료 쪽으로 가족들간에 의견이 일치했었다
동생 둘이 아버지옆을 지키겠다해서 어머니와 나는 밤늦게 집으로 왔다
이러다가 어떻게 되려고 그러나.... 최악의 상황이 오면 어쩌나 잠이 오지 않았다
누워 뒤척이다가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전화소리에 잠을 깨니 새벽 5시반, 동생이 응급실에서 전화를 했는데 빨리 오라는 것이다 .
간밤에 혈압이 오르락내리락했고 힘들게 보내셨다고 했다
새벽 5시, 의사 말하길, 아무래도 아침을 넘기기 어렵다고 하였단다
깜짝 놀랬고 황당했고.....잠이 덜깬상태에서 외출준비를 하고 컴컴한 새벽길을 달렸다
한국에 있는 딸1,5,6과 사위1,5,6, 미국에서 엊그제 놀러온 딸2, 카나다에서 출장온 딸4
그리고 어머니까지 9명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병원에 모여 아버지를 에워쌌다
우리가 할 것은 기도 밖에 없다. 아버지께서 깨어나기를 기도할 뿐이다
우리는 걱정스러워 할말도 아끼고 숙연한 분위기에서 서로 쳐다보기만 하였다
미국에 있는 딸3과는 계속 실시간으로 카톡으로 소식을 주고받았다
아침 7시가 되니 혼수상태 같던 아버지가 눈을 뜨셨다
어머니께서 기도응답이야, 응답이야, 감사합니다, 를 되뇌이시는 동안
우리는 모두 감동하여 한마음으로 아버지, 아버지, 부르짖으며
딸들이 차례로 이름을 말하고 손을 잡고 이마에 뺨에 뽀뽀를 해드리며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활짝 웃는 낯으로 좋은 이야기를 골라서 하고
아버지 열이 떨어졌으니 금방 낫겠어요. 기운내셔요. 눈빛이 맑으시고 혈색도 좋으시네요
벙긋벙긋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속으로는 다른, 목이 메이는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다
눈물을 삼키며 아버지 사랑해요를 연발했다
예전의 아버지와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며 감사했던 마음을 전하고
아버지께선 환한 미소를 띠우며 간간히 응답을 해주셨다
미국에 있는 딸3과 전화가 연결되었고 사위2와는 아이패드로 화면을 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 둘 다 휴가를 내어 곧 비행기표를 구해서 오겠다고 하였다
미국에 있는 84세 작은아버지께 전화하니 입원 한달째 와병중이라고 하였다
하여튼 IT강국인 현재에 감사하며 두루 대화를 나누셨다
(계속)
'노인의 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태어났을때 - (0) | 2013.04.10 |
---|---|
3/23 병원 응급실에서 (2) (0) | 2013.03.28 |
12/30 구십 아버지 옆에서... (1) | 2013.01.05 |
12/27 아버지 혈뇨 (0) | 2012.12.27 |
12/23 아버지를 모셔 오면서 (0) | 2012.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