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의 절 자랑 이야기
우리나라에서는 불교가 전해진 이후 국가의 후원을 받으면서 거대한 절들이 많이 세워졌다. 현재는 통도사나 해인사처럼 천수백년 동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도 있는가 하면, 겨우 집 한 채만으로 절을 유지하고 있는 곳도 있고, 황룡사나 미륵사처럼 그 터만 남아있는 곳도 있다.
보통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을 자랑하듯이 승려들도 몸 담고 있는 절을 자랑하는 모양이다. 「조선일보」 1938년 8월 14일자에는 '절 자랑'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어서 옮겨본다. 큰 절이라고 해서 좋은 수행처인 것은 아닐 텐데, 모두 자기가 머무는 절이 크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다. 물론 우스갯소리이겠지만, 이들의 거짓말 실력은 대단하다.
"해인사 스님과 청암사 스님과 직지사 스님과 통도사 스님이 우연히 한곳에 모였다가 제각기 자기가 머물고 있는 절 자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통도사 스님은 '우리 절은 집은 작지만 가마솥이 어떻게 큰지 죽을 쑤면 배를 띄우고 노질을 해들어 가서야 그 죽을 휘휘 젓습니다.'
직지사 스님은 '통도사의 가마솥도 굉장하지만 우리 절 뒷간만은 못합니다. 우리 절 뒷간은 어떻게 깊은지 아침에 가서 뒤를 보면 저녁때나 돼야 밑바닥에 떨어지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천둥소리 같습니다.'
해인사 스님은 '통도사의 가마솥이나 직지사의 뒷간도 굉장하지만 우리 해인사만은 못합니다. 우리 절에는 모두 보잘 것 없어도 다만 방 하나가 어떻게 크고 넓은지, 아랫목에서 윗목까지 가려면 당나귀나 말을 타고 가야 하는데, 가는 길에 오리만큼씩 주막집이 있지요. 그런데 그 주막집을 열 집을 다 지나가야 윗목이 나옵니다.'
청암사 스님은 '세 절이 모두 굉장하기는 하지만 우리 청암사에다 비하면 어림도 없습니다. 우리 절에는 스님이 어떻게 많이 드나드는지 절의 문지방을 쇠로 만들었건만 하룻밤만 지나도 사람의 옷에 긁혀서 문지방 밑으로 떨어진 쇳가루가 서 말씩은 넉넉히 되지요.'
하더랍니다. 여러분은 어느 절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진1507> 보은 법주사 쇠솥. 통도사 스님이 자랑했던 가마솥은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만 보은 법주사와 논산 개태사에는 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큰 쇠솥이 남아있다. 둘레가 10.8m에 달하는 법주사의 쇠솥은 쌀 40가마를 한꺼번에 담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사진1508> 양주 회암사터 전경. 국가의 후원을 받으며 성장한 거대한 절중에는 미륵사나 황룡사처럼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는 곳도 많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머물렀던 회암사도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