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 용의 의미

불교에서 용은 어떤 존재인가?

절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장식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용이다. 주로 법당의 처마 밑이나 법당 앞 계단의 소맷돌 그리고 벽화, 또 범종을 거는 고리에도 용이 조각되어 있다. 불교에서 용은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이렇게 자주 등장하는 것일까?

서양에서 용은 죽음과 죄, 악의 상징인 사탄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에 비해 인도에서는 뱀을 신격화한 용신으로 등장하며,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왕과 같은 최고 권위의 상징이자 무궁한 능력을 가진 존재로 비유된다. 임금의 얼굴을 용안, 의복을 용포라고 하는 것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따라서 상상의 동물인 용은 매우 신성하게 묘사되었는데, 주로 머리에는 뿔이 있고 몸통은 뱀과 같으며 비늘이 있고 날카로운 발톱이 있는 네 다리를 가진 동물로 묘사된다.

불교가 성립되면서 인도의 여러 토속신이 불교의 수호신으로 받아들여지듯이, 용신도 불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받아들여졌다. 인도에서의 용신은 뱀의 모습이었으나, 이후 불교가 중국에 전해지면서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중국 용의 모습으로 바뀌어 졌다. 나아가 불교에서 용은, 그것이 조각되고 묘사된 위치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먼저 용은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으로 묘사된다. 용이 불교에 받아들여 질 때의 본래의 모습대로, 사악한 것을 물리치고 부처의 주변을 지키면서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사찰 입구에 있는 무지개다리 아래쪽에는 용머리를 조각해 놓아, 개천을 타고 들어오는 사악한 무리가 청정한 공간인 절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절의 일주문 천장에 조각된 용머리도 마찬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법당 안의 기둥이나 벽에 그려진 용은 부처와 불법을 수호하여 법당을 신성한 공간으로 만드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는 용이다.

또 불상 장식인 닫집에 조각된 용은 불법 수호의 의미와 함께, 왕의 최고 권위의 상징이었던 것처럼 부처의 최고 권위를 상징하고 있다. 이에 비해 법당 정면의 기둥 위에 조각된 용은 다소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의 저 언덕, 즉 피안 또는 극락세계를 향해 가는 탈것을 주로 배에 비유하였다. 그 배는 주로 용의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이를 반야용선이라고 한다. 즉 반야용선은 번뇌에 쌓인 이 세계에서 극락세계로 건너갈 때 타는 상상의 배인 셈이다. 법당은 바로 부처와 함께 극락세계로 가는 배와 같은 곳이다. 따라서 법당 앞쪽의 기둥머리나 계단의 소맷돌에 용머리를 조각하여 법당이 곧 반야용선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즉 용은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배와 같은 역할을 하는 중요한 존재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범종의 용뉴에 조각된 용은 대개 여의주를 물지 않고 입을 크게 벌린 채 묘사된다. 이 용은 포뢰라는 용이다. 고래를 무서워하며 그 울음소리가 우렁찼다고 한다. 그래서 종이 우렁찬 소리를 내도록 용을 종 머리에 놀란 모습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본래 단순히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어졌던 목어는 차츰 머리모양이 용머리 모양으로 변형되어, 용두어신(龍頭魚身) 즉, 용머리를 한 물고기 모양이 되었다. 용두어신은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되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이는 '등용문(登龍門)' 고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근거로 삼고 있다. 황하 상류에 용문이라는 계곡이 있는데, 그 근처에 흐름이 매우 빠른 폭포가 있어 큰 고기들이 수없이 모여들었으나 오르지 못하였으며, 만일 오르기만 하면 용이 된다고 하였다. 그 후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출세의 관문이 된다는 뜻으로 등용문이라 하였다. 따라서 용머리를 한 목어는 물고기라는 평범한 존재가 용이라는 깨달은 존재가 되어 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처럼 절에서 용은 호법신이기도 하고, 부처의 최고 권위를 상징하기도 하며, 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반야용선으로, 그리고 부처의 소리를 전하기 위한 범종의 용뉴로서, 또는 깨달음의 상징으로,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사진2914> 장흥 보림사 일주문 천장의 용머리. 용은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이다. 사악한 것을 물리치고 부처의 주변을 지키면서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보림사 일주문 천장에 새겨진 용머리는 일주문을 통해 사악한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있다.

<사진2915> 순천 선암사 대웅전 용머리. 법당은 바로 부처와 함께 극락세계로 가는 배와 같은 곳이다. 따라서 법당 앞쪽의 기둥머리나 계단의 소맷돌에 용머리를 조각하여 법당이 곧 반야용선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사진2916> 파주 보광사 목어. 단순히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어졌던 목어는 차츰 머리모양이 용머리 모양으로 변형되어 용머리를 한 물고기 모양이 되었다. 이것은 물고기라는 평범한 존재가 용이라는 깨달은 존재가 되어 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