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방

미륵불

이예경 2011. 7. 11. 17:32

민중들의 희망, 미륵불

우리나라의 곳곳에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미륵불로 불리는 불상이 수없이 많다. 남한 각 지역에 분포된 것만 보더라도 수백 기에 이른다. 사찰의 전각 속에서 화려한 장식과 함께 봉안되어 있어야 할 미륵불이 왜 마을 앞을 비롯하여 논밭이나 호젓한 산기슭에 서 있는 것일까? 석공의 뛰어난 솜씨로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대개는 민중들의 모습을 닮아 소박하고 어찌 보면 못생기기도 하며, 때로는 자연석에 약간의 손질이 가해진 것도 있다.

불교에서 미륵은 지금은 하늘나라 도솔천에서 중생 구제를 고민하며 수행하고 있는 보살이지만, 석가모니 열반 후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 부처가 되어 지상에 내려와 설법을 통해 수많은 중생을 구제해주기로 예정되어 있다. 그가 내려온 후 지상에서는 불국토, 즉 유토피아가 건설된다. 미륵이 출현하는 때는 석가모니의 불법이 쇠하여 끝없는 다툼이 계속되는 말법의 시대이다.

미륵의 출현과 불국토의 건설은 기독교의 메시아사상과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 재미있다. 아담의 원죄를 가지고 시작한 인간 역사는 예수의 부활과 재림, 그리고 지상에서의 천년왕국 건설과 최후의 심판으로 끝이 나고 새로운 신의 나라가 도래한다. 몇 년 전 이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종말론이나 자기가 재림 예수라며 사이비종교를 만들었던 것은 모두 이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생긴 일이었다.

우리 역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은 많았다. 전 근대 사회에서 민중들의 생활은 사회적, 신분적 차별 속에서 몹시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한 시기에는 더욱 그러했는데 이럴 때면 민중들은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줄 미륵의 출현을 기대했다. 특히 신라 말과 같은 혼란기는 말법시대로 여겨졌고, 미륵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들의 마음은 더욱 커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기에는 어김없이 자신이 미륵임을 주장하는 사람이 등장했다는데, 그 중 한 사람이 궁예이다.

신라 말 궁예는 오늘날의 강원도와 경기 지방을 근거로 후고구려를 세우고 스스로 미륵불이라 칭하였다. 그러나 궁예의 정치는 미륵의 출현이 약속하는 풍요롭고 평화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데에 이르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방에서 궁예는 미륵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경기도 포천군 구읍리 반월성터에 있는 미륵불은 궁예의 후신인 미륵불로 여겨지고 있으며, 경기도 안성군의 국사봉에도 궁예 미륵이 있어서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가 왕건에 의해 쫓겨남으로써 역사에는 난폭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묘사되었지만,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니 만큼 실제 그가 그러했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진2318> 경기도 안성군 삼죽면 기솔리 국사봉 궁예미륵. 불교의 미륵은 언제부터인가 불교를 떠나 민중의 소박한 꿈과 희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또는 메시아적인 존재가 되기도 했다. 우리의 농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못생긴 미륵불이 그것이다. 사진은 안성의 궁예미륵으로 궁예가 신앙의 대상이 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미륵의 출현을 기대하는 미륵신앙이 확대되면서 때로는 도적마저도 자신이 미륵임을 자처하는 부작용이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륵은 민중의 가장 사랑받는 부처로서 자리를 잡아갔다.

특히 조선후기에는 두 차례의 전쟁과 당파싸움으로 인한 정치 혼란 속에서, 민중들의 생활은 다시금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미륵의 출현을 기대하는 마음은 하나의 민간신앙으로 발전하였다. 이제 불교의 복잡한 교리와는 관계없이 새 시대를 열어줄 구세주 미륵의 출현만을 기대하게 된 것이다. 정씨 성을 가진 도령이 나타나 새 시대를 열어준다는 「정감록」이 하나의 신앙처럼 유행한 것도 이때였다.

그리하여 그들을 닮은 미륵불이 수없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민간 신앙의 일부가 된 미륵은 이제는 단지 언제 올지 모르는 메시아로만 남아있지 않았다. 민중 속에서 민중들의 소박한 꿈과 희망의 대상이 되었다. 농사도 잘되게 해주고, 고기도 잘 잡히게 해주고, 때로는 아들을 낳게도 해주고, 때로는 병도 치료해주는 소박한 신앙의 대상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렇게 미륵은 마을로 내려왔다.

<사진2319>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미륵불. 그 유명한 서산마애삼존불 가는 길옆에 그 다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서있는 용현리 미륵불은 이 지역 사람들의 소박한 신앙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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