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원 권 지폐 속의 석탑을 아시나요?
우리나라 화폐에는 재미있는 내용이 많이 숨어있다. 1만 원 권의 앞면 물시계 아래쪽에는 돋보기를 대고 보아야만 읽을 수 있는 '한국은행'이라는 글씨가 깨알같이 쓰여져 있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물시계의 정확한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덕수궁에 보관되어 있는 이 물시계의 이름은 자격루이다.
그런데 잘 모르고 보면 과연 이것이 국보로 지정될만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겨우 이 정도가 세종 시대의 과학을 대변하는 것이라는 말인가? 이런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이 유물을 그냥 물시계라고만 이름 붙여 놓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물시계의 일부'라고 해야 한다. 물시계인 자격루는 현재 남아있는 것보다는 훨씬 복잡했다. 시간이 되면 스스로 종과 북을 쳐서 시각을 알려주었을 만큼 복잡했다.
지금 남아있는 부분은 굳이 요즈음의 시계로 따지자면 동력장치 정도에 불과하다. 자격루는 기록에는 남아있으나 설계도가 없는 관계로 지금도 정확한 복원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그냥 물시계라고만 하면 오해받기 쉽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사진2620> 1만 원 권 지폐 부분. 경회루 오른쪽 숲속에 탑이 숨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사진2621> 현재의 경회루. 현재의 경회루 오른쪽은 숲은 사라지고 복원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뒷면 경회루 옆에 숨어있는 탑 이야기를 하졍?것이었는데, 전제가 너무 길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사진을 통해 이미 탑을 확인했을 터이니 이제 이것이 무슨 탑인지 추적해 보기로 하자.
현재의 1만 원 권 화폐에는 1979년부터 경회루가 도안되었다고 한다. 그 후 다소 도안의 변화는 있었으나 탑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그려지고 있다. 따라서 당시에는 그 자리에 탑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현재는 경복궁 복원을 하느라 나무들은 사라지고 탑은 다른 곳에 옮겨졌다.
본래 이 자리에 있는 탑은 '영전사보제존자사리탑'(보물 358호)이다. 강원도 원성의 영전사터에 있던 것을 일제가 경복궁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이런 사실은 문화재 연구가인 이순우가 기록을 통해 밝혀냈다. 일제는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을 훼손시키기 위해 수많은 건물을 허물고서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불교 문화재들을 경복궁으로 옮겼다. 지금도 경복궁에서 많은 탑과 부도를 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보제존자는 무학대사의 스승인 나옹화상이다. 나옹은 신륵사에서 입적하였고, 지금 신륵사에는 그의 부도인 '보제존자석종'이 있다.
제자들이 이 사리의 일부를 나누어 사리탑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영전사보제존자사리탑'이다. 모양은 탑과 같으나 사실 부처의 사리를 모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부도이다. 또 승려의 부도를 탑 모양으로 만든 것은 대단히 파격적인 것으로 흔히 볼 수 없는 경우이다. 선종불교에서는 깨달은 자는 모두 부처이니 사실 그리 문제될 것은 없다. 이 탑은 경복궁 복원 사업을 시작하면서 1990년 경복궁 주차장 곁에 옮겨져 있다
대체로 화폐에는 그 나라를 대표할 만한 인물들이 도안이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순신, 이이, 이황, 세종대왕이 화폐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모두 이(李)씨 성을 가진 분들이라는 것이 재미있다. 그런데 그곳에 도안자의 의도인지 아니면 있는 대로 도안한 것인지는 모르나 나옹의 부도가 은밀하게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나옹은 본래 이름이 아원혜(牙元惠)였으니 성은 아(牙)씨이다. 이씨를 질투한 도안자의 의도가 살짝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사진2622> 영전사보제존자사리탑. 이 탑은 고려 말 승려 나옹의 부도이다. 최근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둘 중 하나는 다른 승려의 부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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