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수필 산책

여성미에 관하여/ 유진오

이예경 2009. 12. 4. 01:22

女性美에 관하여

 

 

女性美도 美의 일종이요 美는 價値의 일종인 이상, 여성미도 普遍妥當性을 가진 것이라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즉, “야, 美人이다” 하는 칭송을 듣는 사람은 누가 보아도 미인이어야만 참으로 미인의 값을 지닌 미인이라 할 것이다.

옛날부터 미인의 표본처럼 일컬어져오는 클레오파트라네 西施네 하는 여자들은 그러한 보편타당적인 미인임에 틀림없으리라 믿어지지만, 사실 요새 미녀로 이름난 여배우들의 사진을 보아도 미인이 아니라는 반론을 세우기는 힘들 것 같다.

아름다운 여성은 누가 보아도 아름답다는 원칙을 부인할 용기는 없다. 그러나 모든 가치는 궁극에 가서는 상대적인 것이므로 여성미의 표준도 결국은 상대적임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세계 제일의 미녀로 뽑힌 미인이 내 눈에는 도무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이고, 누가 보아도 醜女로 보이는 여자를 그에게 반한 남성은 둘도 없는 미인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몇 十년 전 나에게 심리학을 가르쳐 준 선생님은 ‘미인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남자가 자기 자신의 美의 이미지를 여자 위에 던져놓고 그 여자를 보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사실은 자기 자신이 던져놓은 이미지를 보고 있을 때 생기는 착각’이라는 명강의를 들려주셨다.

한때 西洋의 近代文物이 물밀듯 東洋으로 밀려들어오던 시기에 미인의 표준도 함께 수입되어서, 明治·大正 시대의 日本 화가들은 일본 여자의 얼굴과 몸을 서양 여자처럼 그리느라고 땀을 뺀 일이 있었다. 一九三十년대에 고이데(小出)라는 화가가 절구통같이 굵고 짧은 다리에 솥뚜껑 같은 발을 가진 裸女를 그려 내놓았을 때 세상이 깜짝 놀란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지금 동양 여자가 세계 미인대회에서 一등을 차지할 만큼 미인의 폭이 넓어진 것은 相對主義的 世界觀을 기초로 하는 民主主義의 발전을 위하여 경하할 일이다.

미인의 표준이 상대적일 뿐 아니라, 도대체 여성미라는 말을 입에 올릴 때에 美의 표준을 어디다 두고 하는 것인가를 검토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얼굴, 몸집 등 용모가 중요한 표준이 됨은 말할 것 없지만, 여성미의 표준은 결코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인격, 성품, 교양, 건강, 경력, 직업, 환경 등까지도 한 여자의 미인 여부를 판정하는 데 중요한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얼굴이 남보다 잘생겼다 하여 뽐내다가는 큰 코를 다치기 알맞을 것이고, 반대로 얼굴이 남보다 못생겼다 하여 비관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미덕과 건강으로써 용모의 열세를 회복하고도 남음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용모미, 인격미, 교양미, 건강미 등의 美의 내용에도 가지각색이 있을 것이지만, 여성미라 하면 살아 있는 사람에 관한 價値評價이고, 사람이란 合目的的 활동에 의하여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바탕, 素材를 얼마든지 향상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므로, 타고난 美(자연미)와 가꾸어 놓은 美(인공미)를 구별하고 비교해 보는 것도 또한 의미 있는 일이다.

세상에는 사람이 타고난 그대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더 건강하고 더 도덕적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상당히 있는 듯하지만, 나는 美란 역시 가꾸어야 하는 것으로 믿는다. 데카당의 시인 보들레르는 ‘아름답고 고귀한 것은 모두 理性과 計算의 결과(浪漫派藝術論)’라 하여 Maquillage(化粧)의 효능을 강조하였는데, 이 命題에는 나도 동감이다. 다만 그 마키아지는 반드시 세련된 調和를 얻은 것이라야 한다. 분과 연지를 처덕처덕 바르고 루주를 시뻘겋게 바르는 것으로 금방 미인이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가꾸어진 美는 어디까지나 ‘理性과 計算의 결과’라야 한다.

그러한 인공미의 챔피언으로는 아마도 마를렌 디트리히를 들어야 할 것이 아닐까. BOAC가 신형 여객기 선전 광고에 쓰기 위하여 디트리히의 다리(脚) 사진(上半身은 나타나지 않는) 한 장을 찍는 데 十만 불을 낸 것도 까닭 있는 일이다. 그 다리는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 가지고 나온 그대로의 것이 아니라 최고의 知性과 審美眼과 創造的 能力을 종횡으로 구사하여 수십 년간 노력해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玉도 갈아야만 광채가 난다”2)는 말은 하필 勉學에만 한해서 쓰여져야 할 말이 아니다.

 

1) 이 글은 兪鎭午 선생의 『젊은이를 위한 思索 노트』에 실린 4편의 글 중 한 편으로, 1975년 汎潮社에서 펴낸(韓國隨筆家協會 編) 『韓國隨筆文學大前集』``5에서 옮긴 것이다. 다만 漢字의 노출과 문단나누기는 다소 달리한 데가 있다.

2) 이는 혹 『禮記』의 ‘玉不琢不成器, 人不學不知道(學記)’라는 구절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사회`:`안녕하십니까? <계간 수필> 제46호, 2006년 겨울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합평 작품은 유진오의 ‘女性美에 관하여’입니다.

이 작품을 선정한 이유는 그동안 주로 서정적인 수필만 다루었는데, 이런 지적인 수필도 다루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입니다. 자연미냐 인공미냐 하는 것도 오늘의 논란거리가 되겠지요.

오늘 토론자로는 최순희, 허창옥, 최병호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우선 유진오 선생의 연보와 이분의 문학 전반에 관한 것을 최순희 선생께서 말씀해 주시겠습니다.

최순희`:`유진오 선생(1906~1987)은 소설가이자 법학자이며 정치가였습니다. 아호는 현민玄民이며, 서울 재동 출신입니다. 경성 제일고보를 수석 졸업하고, 또 경성제대 법학과를 수석 입학·졸업했습니다. 1926년 <조선지광>에 단편 ‘스리’를 발표하여 등단하였는데, 초기에는 ‘복수’, ‘가정교사’, ‘여직공’ 등 카프 문학에 동조하는 작품을 써서, 식민지 백성의 고달픈 삶과 지식인의 고뇌 등을 다룹니다. 이후 대학생활을 바탕으로 한 그의 대표작인 ‘김강사와 T교수(1936)’를 발표하였으며, 1930년대 ‘문단의 총아’로서 각광을 받습니다. 경성제국대학 창설 이래 최고의 수재, 풍부한 인문학적 교양의 축적, 인텔리의 허위의식에 대한 생생한 고발, 그리고 동반자적 문학 경향, 이는 곧 그의 출신 성분을 고려할 때 존재 형태와 문학 경향이 둘 다 문제적이었음을 의미합니다. 경향문학의 경향성과 비 경향문학의 문학성을 동시에 담아내려고 노력한 균형 잡힌 작가라는 평입니다.

1936년 30세의 나이로 보성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1941년에 유일한 장편인 ‘화상보’를 발표합니다. 1948년에는 대한민국 헌법기초위원이 되었으며, 초대 법제처장을 지냈습니다. 1952년~1965년까지 13년 동안 제2대 고려대 총장을 역임하면서, 고려대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후에 주로 『젊은 세대에 부치는 書(1965)』, 수상록 『구름 위의 만상(1966)』, 수상집 『서울의 이방인(1977)』을 쓰셨습니다. 총장 퇴임 후엔 신민당 총재로 반독재운동도 하였으며, 1987년 8월에 타계하셨습니다.

유진오 선생에게 있어 수필은 선비에게 있어 사군자와 같은 존재였다고 합니다. 사상계에 발표한 22세 때의 일기 중에 ‘문학은 나에게 인생의 반면을 열어주고, 법률과 경제는 다른 반면을 열어주었다’, ‘내가 문학의 길을 택하지 않고 학문의 길을 택한 것은 문학이 너무 어려워서였다’라고 자기의 심경을 토로한 대목이 있습니다.

마침 올해는 그의 탄생 100주년으로서, 민족문학작가회의 주최 ‘2006년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제’를 통해 강경애, 최정희, 엄홍섭 등과 함께 잊혀졌던 마이너리티 소설가로서의 재조명 작업이 이루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사회`:`그러면 허창옥 선생께서 이 작품에 대한 비평을 해 주시지요.

허창옥`:`우선 포괄적인 시각에서 감상을 해 보겠습니다. 선생은 여성미에 대한 내적·외적인 가치와 개념을 서술하셨는데, 성형미인이 풍미하고 있는 이 시대를 생각하면 30년 전의 미에 관한 인식이 오히려 새롭다는 느낌입니다. 글을 읽으면서 시대는 변했지만 절대적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이를 위한 노트’에 게재된 글인 만큼 교훈적인 내용이라 강한 주장은 아니지만, 글쓴이의 사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논리적인 글이죠. 문장은 강건하며 건조체입니다.

글의 내용을 좀더 꼼꼼히 살펴볼까요? 저는 작가가 생각하는 미인의 개념이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순서대로 보았습니다. 첫째, ‘미인은 누가 보아도 미인이어야 미인이라 할 수 있다’에서 미인에 대한 객관적이며, 어쩌면 절대적일 수도 있는 판단 기준을 먼저 제시합니다. 둘째, ‘미인의 가치는 상대적이다’라고 한 부분은 남성의 시각을 중심으로 한 인식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꽃미남’이란 용어가 생길 정도로 이제 美는 여성만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시대가 아닙니다. 시대가 변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단락에서 이제까지 서술한 객관적이고 상대적인 외모 중심의 미인의 개념에 ‘인격, 성품, 건강, 경력, 직업, 환경’ 등의 내적·외적 내용을 미인의 조건으로 제시하여 그 의미를 심화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여성미는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한 가치 평가이므로 ‘타고난 것 외에 스스로 가꾸어야 한다’고 했어요. 자연미에다 인공미를 더한 셈인데, 인공미를 세련되고 조화로운 화장으로 적고 있어서 이 시대 시각으로 보면 이채롭게 느껴져요.

결론적으로 ‘미는 가꾸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이 글의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지성의 심미안과 창조적 능력으로 자신을 가꾸고 신장시키라’는 교훈을 담았는데, 작가는 이런 요소를 미의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하지만 ‘동양 미인이… 경하할 일이다’라든가, 인공미의 예로 마를렌 디트리히의 다리를 들고 있는데, 저는 이 두 부분의 표현이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회`:`그러면 허 선생께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유진오 선생이 ‘나는 미란 역시 가꾸어야 하는 것으로 믿는다’라고 하셨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허창옥`:`동감합니다.

 

사회`:`하지만 선생이 얘기할 때에는 성형수술 같은 것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만…….

허창옥`:`네. 아닐 겁니다. 그 시대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으니까요. 아마 유진오 선생은 젊은이들에게 ‘내적·외적 요소를 아울러서 가꾸어라’는 메시지를 강조하신 것 같습니다.

 

사회`:`여기서는 내적인 것이 아니라 마를렌 디트리히의 다리처럼 육체적인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허창옥`:`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저는 타고난 자연미에다 잘 가꿔놓은 인공미가 합쳐져야 진정한 미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말씀으로 보았습니다.

 

사회`:`그러면 오늘 남성을 대표하는 지정토론자로 나오신 최병호 선생께서는 이 글을 어떻게 비평하시겠습니까?

최병호`:`유명한 분의 작품이라 여러 모로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수필을 써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1문단을 보면 여성미의 뜻을 논설문체로 기략하고 그 같은 사실의 기록은 평서문체로 부연하고 있습니다. 그런 수법이 거기 동원된 어휘 때문인지 제겐 도무지 매끄럽게 읽히지 않았습니다. 보편타당성, 반론 세우기, 상대주의적 세계관, 합목적적 활동, 명제, 최고의 지성과 심미안과 창조적 능력 등등의 말이 그런 것들입니다.

2문단에서 여성미의 상대성을 얘기했는데, 3문단에서 다시 이를 강조 부연하죠. 또 결미에서 미인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남자가 여자에게 던져놓은 자신의 미적 이미지를 바라볼 때 생기는 착각이라고 가르쳐 준 옛 선생님의 명강의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성미란 남성이 갖는 하나의 나르시시즘 같은 것일까요? 저로선 좀 혼란스럽습니다.

이 글이 젊은이들에게 사색의 계기를 주고자 한 것이라면 4단락에선 무엇인가 좀 새로운 사색거리를 내놓을 법한데, 뜻밖에 폭이 넓어진 여성미를 두고 ‘민주주의의 발전’ 운운의 얘기가 나옵니다. 집필 당시의 사정을 감안하지 않는다고 유경환 선생에게 혼날지 모르겠습니다만 한 말씀 하고 싶네요.

미는 부의 사치가 만들어낸 악이라고도 합니다. 그 사치문화가 여성미 창출의 원천으로 베르사유 궁전은 최고의 표본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부의 힘이 사회적으로 넘쳐나게 되면서 성의 범람시대가 열렸다는 것입니다. 불합리한 금기가 걷히고, 대중사회의 점착력이 약해지고, 불태울 만한 이상도 가치도 혼란스럽고, 예민해진 자의식 등등이 곁들여 니힐리즘으로서의 성애가 기승을 부리게 된 것이래요. 그런 추세 속에 남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필요했던 무릇 여성미는 여성 스스로가 점차 스스로의 만족감이나 젊음의 영속을 원하는 방향으로 치닫게 되었다니, 그런 도정의 여성미의 다채로운 논의거리가 무척 아쉽게 느껴집니다.

여성미를 외부적 용모와 내부적 소양 등으로 대비하고, 내부적 소양이 외부적 용모의 열세를 회복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단언하며 격려하고 있습니다. 또 타고난 자연미와 가꾸어놓은 인공미를 맞세우며 단연 인공미 편에 동조합니다.

문제는 인공미의 강조를 위한 예시입니다. 마를렌 디트리히의 10만 불짜리 각선미 사진값을 ‘최고의 지성과 심미안과 창조적 능력을 구사하여 만들어낸 결과’라 했는데 참으로 망연합니다. 상업상의 과장이랄까 허구 같은 건 없는 것일까요? 과연 그것이 모두에 예거한 보편타당한 가치로 수용될 수 있는 미일까요? 사전에는 디트리히를 퇴폐적 미모와 각선미로 유명한 배우라고 했습니다. 역시 어리둥절해집니다. 어떻든 이런 형태의 수필도 잘 가꾸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제는 결미 문장 그대로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세 분의 지정 토론자들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자유롭게 질문하고 개인 의견들을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봉진`:`틀린 구석이 한 군데도 없이 명징하게 전달되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글도 다른 나라에서 수필이란 이름으로 많이 쓰여지고 있으니까, 앞으로 이런 흥미 있는 주제를 시도해 볼 만하지 않나 싶습니다. 다만 이 글이 무미건조하진 않지만, 좀더 재미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김병권`:`시·공간을 초월해서 무리 없이 읽히는 글인데, 문장력이 대단하다고 보여집니다. 젊은이들에게 의도적이고 교시적인 기능으로 쓰인 글입니다. 예를 들어, 자연미보다는 인공미에 초점을 두었다든지, 외향미보다는 내면의 미에 초점을 둔 점은 다분히 의도적이죠.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결미 부분인데, 이것은 자연미보다는 인공미를 중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외형보다는 내면, 인공미보다는 자연미를 강조하는 사람들의 얘기와는 조금 다르지요. 여성의 미는 다분히 여성들 스스로 좀더 가꾸어 돋보이게 하는데 인공적인 노력을 다하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진권`:`게으름 피지 말고 화장을 열심히 하라는 거죠?(웃음)

허세욱`:`평론 수필이라고 할 수 있겠죠. 사람에 따라서 보는 눈이 달라지겠는데, 역시 법학자의 수필입니다. 대단히 합리적인 조화를 주장했는데, 가다가는 그 조화가 균형이 깨지면서 인공미나 자연미 그 한쪽이 불거져서 볼상사납습니다. 그러면서도 결론에 힘을 주는 것은 결국 법학자가 결론을 내릴 때 쓰는 말을 쓴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건조한 논설문과 서정문의 중간쯤에서 긴장의 나사가 빠진 그런 거예요. 그래서 구성에 개성이 없게 보이는군요.

구양근`:`역시 현학적인 말들이 많고, 문학적인 어휘가 적은 좀 딱딱한 문장입니다. 자세히 보니까 모순된 것 같으면서도 모순되지 않은, 반은 논설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오경자`:`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강호형`:`글이 사변적이고 논리적이에요. 이런 글을 읽고 나면 그 메시지가 명료하게 드러나야 되는데, 그런 게 얼른 잡히질 않아요. 가령 여성의 미는 내적으로 가꾸어야 된다는 건지 화장을 잘 해야 된다는 건지, 아니면 두 가지를 다 잘 해야 된다는 건지 그런 게 명쾌하게 드러나질 않아요. 그래서 지금 다른 분들도 이런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이렇게 말씀하신단 말이에요. 서정적인 글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논설문에 가까운 글이라면 결론이 분명해야 하는데 논리의 일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홍혜랑`:`인용을 할 때 비록 논문은 아니더라도 독자를 위해서 좀 친절했으면 좋겠어요. 가령 보들레르의 인용이 이 글에서 비중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데, 어디에서 인용했는지를 밝혀주면 독자가 이 글을 이해하는데 훨씬 쉽게 다가갈 수 있을 텐데요……. 저희도 앞으로 글을 쓰면서 이런 부분은 좀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마를렌 디트리히의 다리를 소재로 삼았는데, 사실 경수필을 쓰는 분들은 자기가 이미 갖고 있는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서 소재를 가져오죠. 그게 딱 맞아떨어져야 독자한테 설득력이 있는데, 과연 이것이 주제에 알맞은 소재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김채은`:`저는 이 글에서 여성미를 모두 남성미로 바꾸어서 한번 읽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아, 글이 시대적인 어떤 증거가 되는 구실을 하는구나 느꼈습니다. 이때엔 남성미라는 것은 별로 얘기가 안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남성미가 여성미보다 더 화제에 오르는 시대거든요. 여기에서 클레오파트라니 서시니 마를렌 디트리히니, 요것만 조지 클루니, 브레드 피트, 톰 크루즈 등 요즘 여자들이 열광하는 잘 생긴 남자들로 바꾸어보면 여자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전 청개구리처럼 한번 그렇게 읽어 봤습니다. 그리고 시대가 바뀌어서 기분이 참 좋다고 생각했습니다.(웃음)

변해명`:`美라는 언어의 정의가 무엇인가를 여기서 잃어버린 것 같아요. 주관적으로 누가 바라보아도 아름답다고 느끼면 그것이 미인인데, 여기서는 철저히 이성과 계산된 거라고 해서 그 말이 맘에 걸립니다.

유경환`:`40~50년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는데, 그때에 한국에 세 사람의 천재 중 유진오라는 말이 꼭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관심이 있었어요. 어느 정도의 사람을 천재라고 하는가 싶었죠. 지금 다시 읽어보니까, 당시 한국 지식사회 성층권의 내적인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알 수가 있겠어요.

물론 책을 많이 읽었겠죠. 여기서 인용한 예문을 보거나 사용한 어휘를 보면 당시 평균적인 한국인이 잘 사용하지 않는 어휘를 많이 사용했어요.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을 어렵게 쓰고, 그것이 당대 지식인의 내적 수준이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작품에 대한 비평은 역시 당대의 비평이어야 정확하지, 이렇게 후대에 비평을 하면……. 그동안 바람처럼 지나간 세월을 여과시킨 그것을 몽땅 다 훑어 내버리면 어떻게 살아남겠습니까. 그러니까 눈 감아주어야 살아남는다, 저인망처럼 비평하면 무엇이 남겠는가 싶습니다. 그리고 작품 외에 한 가지 말하자면, 그 당시 어려운 시절에 유진오·이효석·최정희의 한국 지식인들의 우정이 돈독했던 점이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응백`:`여기에서 ‘미인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자기 자신이 던져놓은 이미지를 보고 있을 때 생기는 착각’이라고 했는데, 맞습니다. 그런 예가 많죠.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는 마음이 그리 가는 거예요. 조금 돌아보면 아니란 것을 금방 알게 되죠.

또 여기서 화장을 강조했는데, 여자에게 화장은 ‘독’이라고 생각해요. 화장을 많이 하면 얼굴이 망가집니다. 자연미가 얼마나 아름답나요? 그러니까 안 하는 게 좋아요.(웃음)

김병권`:`어떤 책에 보니까 극단적으로 ‘화장을 할 줄 모르는 여성은 예의를 모르는 여성이다. 화장은 자기의 만족을 추구하는 것도 있지만, 타인에 대한 예의로 필요하다’고 강조하더군요. 그래서 이 글을 읽고 나니까, 이런 마음이 선생의 마음에도 깔려 있지 않나 생각해 봤습니다.

이응백`:`아니 화장은 가면이죠. 그보다는 마음이 아름다워야 더 아름다운 거예요.

 

사회`:`그럼 김태길 선생님께서 끝으로 이 작품에 대한 총평을 해 주시지요.

김태길`:`우선 논리의 모순에 대해 지적할 게 있습니다.

1문단에서 ‘여성미도 보편타당성을 가진 것이라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고 단언했단 말이죠. 그런데 3문단에 가서는 ‘모든 가치는 궁극에 가서는 상대적인 것이므로 여성미의 표준도 결국은 상대적임을 면치 못한다’라고 했어요. 이것은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것인데, 이 두 가지 문장을 어떻게 화해시킨다고 그럴까, 그런 작업을 해야 될 것을 전혀 안 하고 있어요. 이건 우리나라에 ‘미학’이라는 학문이 들어오기 이전에 쓴 것이긴 한데, 오늘날 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읽으면 혹평을 할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아까 이런 것도 수필인가 하고 최병호 선생이 말씀하셨는데 베이컨의 수필집은 다 그렇습니다. 서양의 에세이는 이런 게 아닌 게 없습니다. 그러면 서양의 에세이와 우리나라의 수필과는 같은 거냐? 다르다고 하면 그만이겠는데, 우리나라의 일부 수필가들은 에세이와 수필이 다르지 않다고 보기도 합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젊은이를 위한 사색 노트’라 계몽적인 것인데, 사실은 논리적이고 지적인 것도 에세이가 되긴 하지만, 훌륭한 에세이가 되려면 계몽적인 교훈은 빼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처음부터 교훈을 위해서 쓴 것이기 때문에 좋은 수필이 되기에는 어려운 한계를 가지고 있는 거죠.

한 가지 이분의 천재적인 것이 어디에 보이느냐 하면, 이분 자신의 독창적인 것,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남의 책을 읽고 쓴 것이 아니라 이분 자신의 독창적인 것이 여기저기 비침으로써, 천재적인 명성이 허명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회`:`그러면 이것으로 오늘 합평회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