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수필 산책

수필가 김해경

이예경 2009. 8. 19. 21:25

- 평론 -

수필가 김 해경

김 영 만

1. 이상의 시

 

필명인 이상(李箱)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는 건축 공사장에서 인부들이 잘못 알고 부르던 이름이라고도 하고, 또 노구는 그 이전 고공(경성기계고등공업학교)을 졸업할 때 앨범 편집위원으로 서명을 하면서 썼던 자작(自作) 이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모르는 것은 남들이 아니라 오히려 본인 자신이었는지 모른다. 적어도 분명한 것은 시 ‘오감도’(1934년)를 발표한 후 이상은 이상이란 이름을 낯설어 했다는 것, 낯설어 했을 뿐 아니라 힘에 버거워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필명이 아닌, 한 독립된 인물로 이상이 등장했다는 증거였다. 이상문학에서 ‘오감도’는 이렇게 이상과 김해경을 갈라놓았다. 그래서 이상은 김해경 을, 김해경 은 이상을 서로 쳐다보며 때론 갈등하고 때론 타협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시 ‘오감도’로 등장한 이상의 모습은 김해경이 쳐다볼 때 참으로 요란한 것이었다. 우선 그 외양이었다. 알 듯 모를 듯한 숱한 라벨이 붙어 있는 옷, 이를테면 시대의 반란군이니, 난동자니, 초현실적 정신 이상자, 자의식 과잉의 철부지, 퇴폐적 보헤미안, 공격적 실험주의자, 다다이스트, 아방가르드 등을 울긋불긋 아무렇게나 걸쳐 입은데다 각혈까지 하는 폐결핵 3기의 몰골에, 건축기사 자리마저 던져버린, 그리고 하는 일마다 어긋나 이제 무일푼 백수가 된 그런 모습이었다.

 

요란했던 것은 그런 겉모습에서보다 규정할 수 없는 그의 정신 상태였다. 들끓는 독자들의 비난, 항의, 욕설, 야유 속에 모두 30편의 시를 15편으로 중단하면서, 김해경 은 하루, 냉정을 찾아 그 문제의 시 ‘오감도’를 꼼꼼히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나의아버지가내곁에서조을적에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그런데도나의아버지는나의아버지대로나의아버지인데어쩌자고나는자꾸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니나는왜나의아버지를껑충뛰어넘어야하는지

 


매일같이열풍이불더니드디어내허리에큼직한손이와닿는다황홀한지문골짜기로내땀내가스며드자마자쏘아라쏘으리로다나는내소화기과에묵직한총신을느끼고내다물은입에매끈매끈한총구를느낀다그리더니나는참총쏘으드키눈을감으며한방총탄대신나는참나의입으로무엇을내어배앝았더냐

 

김해경이 놀란 것은 먼저 이 시를 읽는 데서 느낀 심한 호흡 곤란, 호흡 장애였다. 물론 이것은 띄어쓰기라던가 구두점이라던가 하는 일상적 문법 규약의 파기에서 오는 것이었지만, 그러나 그보다는 본질적으로 법이라던가 규칙, 질서, 약속과 같은 현실을 받쳐주는 이른바 ‘제도권의 모든 틀’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데서 오는 흥분과 전율 같은 것 때문이었다. 특히 아버지로 표상되는 전통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은 반복된 어조, 극렬한 속도감과 함께 어떤 위기감마저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은 이전의 다른 시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데 놀라움은 더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놀란 것은 이 시의 난해성이었다. 분명 자신이 쓴 시였지만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시가 되어 있었다. 자의식의 과잉 때문이었을까. 정말 공격적 실험주의자인가, 난동자인가, 다다이스트인가, 김해경 은 대답할 여지를 찾지 못한 채 다시 한 번 이상과 자신의 간극(間隙)을 보았다.

 

김해경의 이상에 대한 놀람은 놀람으로 끝나지 않았다. 요란스런 이상의 등장이 곧 김해경의 실종(失踪)으로 이어오는 심상찮은 일련의 조짐들을 목격하면서, 그는 나는 누구인가 하는 자신의 정체를 절박한 몸짓으로 찾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이것이 바로 그의 수필쓰기였고, 이상에 대한 김해경의 해명(解明)이었다.

 


2. 김해경의 수필

 

김해경의 자기 해명으로서의 수필쓰기는 우선 그 언술의 태도부터 달랐다. 즉 이상의 시에서 보았던 그런 호흡 곤란이나 폭력적인 관념의 어지러움 같은 것이 신기하리만치 말끔히 가셔져 있었다. 맑고 청순한 어조, 정련된 관념, 육화된 페이소스가 고른 숨결에 실려 있다. 현실 비판이나 자기 갈등을 토로함에 있어서도 김해경은 이전의 과격성이나 반항아적 몸짓을 멈춘 채 순화되고 절제된 언어, 분석적 사고와 논리, 명민한 통찰력, 지적인 사물 인식을 전편에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언술의 태도는 물론 시와 수필의 담론 형식의 차이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점도 간과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이상적 자아와 김해경적 자아의 간극이었고 그 노출이었다. 즉 제도권 밖에 서 있던 이상과 제도권 안, 사회적 질서라던가, 체제, 전통, 이데올로기 안에 들어와 있는 김해경의 차이인 것이다. 예컨대 이상의 ‘오감도’에서의 아버지에 대한 무분별한 저항이 김해경의 수필 ‘슬픈 이야기’(1936년)에 와서는 불효를 한탄하는 한 평범한 자식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분들은 다 마음이 착하십니다. 우리 아버지는 손톱이 일곱밖에 없습니다. 궁내부 활판소에 다니실 적에 손가락 셋을 두 번에 잘리우셨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생일도 이름도 모르십니다. 맨 처음부터 친정이 없는 까닭입니다.

 


나는 그분들께 돈을 갖다드린 적도 없고 엿을 사다드린 일도 없고 또한 한 번도 절을 해본 일도 없습니다. 어머니는 내 대님과 허리띠를 접어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내 모자와 양복 저고리를 걸기 위한 못을 박으셨습니다. 동생도 자랐고 막내 누이도 새악시 꼴이 단단히 배겼습니다. 그렇건만 나는 돈을 벌 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버나요, 못 법니다. 못 법니다.  -『슬픈 이야기』중에서

 


비록 백부에게 양자로 갔지만 부양해야 할 마음 착한 부모가 있고 살펴줘야 할 동생이 있는 한 가정의 장자로서 할 도리를 못하는 통한(痛恨)이 김해경 에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돈을 벌 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버나요, 못 법니다. 못 법니다.’ 이것은 하나의 사설이 아니라 그러한 통한을 가진 한 불효자식의 울부짖음이요 통곡 이었다. 이것이 ‘왜나의아버지를껑충뛰어넘어야하는지…….’ 하며 아버지 밟기를 외치던 바로 그 이상의 모습이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런 서로의 간극은 ‘나는 19세기와 20세기 사이에 끼어 졸도하려 드는 무뢰한인가 보오’라 할 만큼 서로를 졸도의 지경으로까지 몰고 가기도 하고,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면 아니 된다. 나 자신을 암살하고 온 나처럼, 내가 나답게 행동하는 것조차도 금지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리만큼 서로를 암살하는 형국에까지도 이르게 한다.

 

다음, 김해경의 수필에서 또 주목을 끄는 것은 그의 집요한 인간 탐구의 정신이다. 자신의 정체를 찾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통해 인간 실종의 본질적 문제를 들여다보려 하고 있다. 그 눈빛이 생각 이상으로 형형하다.

 

우리 수필 무학의 최고의 경지로까지 일컬어진, 그리고 김해경의 마지막 유서와도 같은 ‘권태’(1937년)에서 그것은 집약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실 ‘권태’란 권태로 느끼는 자에게만 인식 되어지는 감정의 영역이다. 소외된 지역 성천에서 김해경이 권태롭게 느꼈던 것들, 일망무제로 덮여진 초록색, 한없이 이어진 벌판, 짖을 일이 없는 개, 최서방 조카와의 장기두기, 촌동들, 고요히 썩어가는 중인 웅덩이, 되새김질 하는 소 등은 사실은 지극히 정상적인 농촌 풍경이요 그 일상인 것, 변화 없는 반복성과 획일성을 말하나 그것 또한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실존적 조건이다.

 

문제는 이런 인간의 실존적 조건을 고통(권태)스럽게 인식하는 그런 의식(意識)에 있다. 김해경의 권태는 여기서 김해경 한 개인의 권태가 아니라 의식적 존재인 인간 모두에게 주어지는 고통으로 넓혀진다. 의식이 없는 인간을 상상할 수 없듯이 고통이 없는 의식적 인간이란 생각할 수가 없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요 비극이다. 이런 고통을 벗어나는 유일한 통로로서의 ‘똥누기’가 김해경 에게는 어쩌면 ‘속수무책의 최후의 창작 유희’로서 글쓰기였는지 모른다.

 

오분 후에 그들은 비키면서 하나씩 둘씩 일어선다. 제각각 대변을 한무더기씩 누어놓았다. 아! 이것도 역시 그들의 유희였다. 속수무책의 그들 최후의 창작 유희였다. 그러나 그 중 한 아이가 일어나지를 않는다. 그럼 그는 이번 유희의 못난 낙오자임에 틀림없다. 분명히 다른 아이들 눈에 조소의 빛이 보인다. 아, 조물주여! 이들을 위하여 풍경과 완구를 주소서.

                                                    -[권태]에서

 


김해경의 수필에서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것은 그의 독특한 문체다. 사적이고 서정적인 당시의 미문체 수필에서 김해경 은 다분히 토의적이고 사색적인 문체를 구사하고 있다. 전달하려는 내용보다 주변의 전경화에 무게를 두었던 산문풍에서 뼈대를 분명히 드러낸 구조화된 글을 쓰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비유와 은유, 유머와 위트, 아이러니와 패러독스, 냉소와 불신, 빈정거림으로 이른바 30년대의 선비적 문투를 과감히 벗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과적 논리성을 무시한 문과 문, 단락과 단락, 구와 절의 지속적 병렬은 김해경 수필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서를 보아도 벌판, 남을 보아도 벌판, 북을 보아도 벌판, 아~ 이 벌판은 어쩌라고 이렇게 한이 없이 늘어놓았을꼬? 어쩌자고 저렇게까지 똑같이 초록색 하나로 되어먹었노? …어제 보던 댑싸리나무, 오늘 보는 김서방, 내일도 보아야 할 신둥이 껌둥이.-[권태]에서   

                                                 

나는 개울로 간다. 가물로 하여 너무나 빈약한 물이 소리없이 흐른다.

뼈처럼 앙상한 물줄기가 왜 소리를 치지 않나.    -[권태]에서

                                                      

나는 닭도 보았다. 또 개도 보았다. 또 소 이야기도 들었다. 또 외국서  섬그림도 보았다.

                                                 -[공포의 기록]에서

 


그러나 드디어 참다 못하여 가을비가 소조하게 내리는 어느 날 나는 화덕을 팔아서 냄비를 사고 냄비를 팔아서 풍로를 사고, 냉장고를 팔아서 식칼을 사고, 유리 그릇을 팔아서 사기 그릇을 샀다.-[공포의 기록]에서                                             

 


이것은 김해경 수필의 유희적 문체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분열과 통합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가는 형상화의 기량을 십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3. 수필가 김해경

 

시, 소설, 수필, 평론을 자유로이 썼던 김해경 을 굳이 수필가로 지칭하려는 것은 그를 시인이나 소설가로 지칭하려는 거나 마찬가지로 아무 의미 없는 일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김해경 을 수필가로 부르려 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분명한 몇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째, 수필은 그의 문학 전반을 지배하는 지배소(支配素)이기 때문이다.

음악성이 배제된 ‘오감도’를 비롯한 일련의 시는 시라기 보다 하나의 산문이며, 서사성이 결여된 그의 소설은 소설이라기 보다하나의 독백에 가까운 글이다. 더구나 김해경 은 같은 수필에서도 ‘행복’이나 ‘병상 이후’(1939년)처럼 소설의 형식을 빌리기도 하고, ‘최저낙원’ ‘실락원’(1939년)처럼 산문시의 형식을 빌리기도 하는 것이다. 장르의식에서 초연했던 그는 짙은 자의식의 노출과 함께 오히려 수필적이었다 할 수 있다.

 

둘째, 수필은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 해석학적 단서이기 때문이다.

전술한 바 자신의 정체를 찾아 그를 해명하는 작업으로서의 수필쓰기가 난해하기 그지없는 그의 시나 소설을 이해하는 단서가 됨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만약 수필이 없었다면 김열규의 지적대로 그의 시나 소설은 이해의 차원이 아닌 느낌의 차원으로 끝나고 말았을지 모른다.

 

음영처럼 시 전반에 깔려있는 절망적 양상, ‘입체에의 절망에 의한 탄생’. ‘운동에의 절망에 의한 탄생’, ‘유크리트는사망해버린오늘(절대자의 폐허) 유우크리트의초점은---위험을재촉한다.사람은절망하라.사람은탄생하라.사람은절망하라’(시 ‘선에 관한 각서 1, 2’, 1931년)는 수필 ‘공포의 기록’(1937년)을 통해서 비로소 이해해 볼 수 있다던가.

 

소설 ‘날개’(1936년)가 갖는 구조를 콩트의 형식을 빌려 쓴 수필 ‘행복’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던가 하는 것이다.

 


아니야, 나는 지금 나만을 사랑할 동정을 찾고 있지. 한 남자 혹 두 남자를 사랑한 일이 있는 여자를 나는 사랑할 수 없어. 왜? 그럼 나더러 먹다 남은 형태에 만족하란 말이람.

 


물론 선이는 내 선이가 아니다. 아닐 뿐만 아니라를 사랑하고 그 다음를 사랑하고 그 다음 …….-  『행복』에서

 


나는 그러나 그들의 아무와도 놀지 않는다. 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사도 않는다. 나는 내 아내와 인사하는 외에 누구와도 인사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아내는 한 번도 나를 자기 방으로 부른 일이 없다. 나는 늘 웃방에서 나 혼자 밥을 먹고 잠을 잤다. 밥은 너무 맛이 없었다. 반찬이 너무 엉성하였다.-  『날개』에서

 


한 여인과의 동반자살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과정을 쓴 ‘행복’은 많은 남자를 사랑한 여인과 그만을 사랑하는 자신의 불균형을 실패의 원인으로 들고 있다. 이 교환의 불평등은 김해경 에게는 도덕적인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이것은 소설 ‘날개’에서 자신과 아내와의 갈등의 구조를 이루는 것이다.

셋째, 김해경 은 본격 수필의 면모를 부여 주었기 때문이다.

 

수필은 자아를 관조하는 문학이라 한다. 그렇다고 붓 가는 대로 유유자적, 삶을 초탈한 문인화적 심회 토로를 김해경 은 단연 거부한다. 화석월조(花石月鳥)의 상완(賞玩)이나 신변잡기적 농필(弄筆)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는 곧바로 자기 자신에 뛰어들어 가차없이 파헤치고 쪼개고 천착하는 치열성을 보이고 있다.

‘나’는 화자의 자리에만 안주하는 것이 아니다. 때론 또 다른 나에 의해 사찰을 당하기도 하고, 해명을 요구받기도 하며, 조소와 질책과 타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밤의 슬픈 공기를 원고지 위에 깔고 창백한 동무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 속에는 자신의 보고도 동봉하여 있습니다.

그럴 적이면 혀를 쑥 내밀어 제 자신을 조롱하였읍네 하고 제 자신을 속여버릇 하였다.

 


이러한 ‘나’에 대한 메타 의식은 김해경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한 안일한 묘사나 인과적 형상화를 허락하지 않았다.

 

끝으로 이제까지의 이상 문학이 수필을 도외시한 채 시나 소설을 중심으로 연구되어 온 것은 다시 한 번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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