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수필 산책

백범의 유묵 / 김영만

이예경 2009. 8. 19. 21:24

백범의 유묵


지난달 백범 사상에 관한 연구 모임에 나간 적이 있었다. 예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처럼 큰 마음의 휘둘림을 받으리라곤 생각지 않았었다.


발제를 맡은 K씨는 성가 그대로 당대를 주름잡는 대논객다웠다. 해박한 지식, 빈틈이 없는 논리, 문제를 포착하는 형안, 그리고 그것을 물고 늘어지는 끈기와 투지, 말하자면 그는 학문의 전사요 연금사였다. 가위를 든 날렵한 재단사 이기도 했다. 물론 백범은 무위의 알몸으로 그 앞에 서 있었다. 어떤 모양의 옷을 입게 되든 그것은 오직 그 사람의 재단에 달려 있었다.


그런데 그 안목에서 바라본 백범은 어쩌면 그렇게도 초라하고 볼품이 없는 존재일까? 허점투성이였고, 내용이 없는 오히려 유해한 인물로까지 비쳐지는 것이었다. - 자신이 민중계급의 한 천민 출신이면서도 퇴락한 지주계급, 즉 임정요인들에게 묻혀 민중에 의한 역사의 전환적 계기를 스스로 일실케 했고, 뿐만 아니라 민중을 해방시켜야 할 객체로 보는 메시아적 독선을 끝까지 버리지 못한 퇴영적 우파 보수주의로 역사의 질곡의 고리를 연결하는 데 일조를 했던 자 - 라고 규정을 하고 있었다.


백범을 소박한 우파 보수주의자로 비판하는 소리는 가끔 들어 알고 있지만 이처러 심한 논변은 처음인 것 같고, 더욱이 질곡의 역사적 고리를 연결하는 데 일조를 했다는 데에는 그만 간담까지 서늘해지는 것이었다.


나는 언뜻 좌중을 둘러보았다. 진지한 얼굴들이었다. 단 한 사람 그 표정의 변화를 읽어낼 수가 없었다. 결국 나만의 느낌이었단 말인가? 싸늘한 소외감만 꿀꺽 삼키고 말았다.


사실 내게 있어서의 백범은 나의 백부로 이어지는 남다른 회억의 끈이었다.


지금 나에게는 백범의 유묵 한 점이 있다. 반지 크기의 2행 10자로 된 종액이다. 낙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판공실 주석 노부 백범 김구'라 하였고 그 우측 상단에 '김득련 군수'라 기명하여 아예 가질 주인을 한정해둔 것이다.


김득련 군수는 바로 나의 백부이시다. 그가 어떻게 이 글을 받으셨는지 또 두 분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 아는 바가 없다. 백부댁에 유학, 그의 손에 자라다시피한 내가 당신에게서 단 한 마디의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다.


언젠가 한번 "백범이 어떤 분이십니까? 잘 아는 분입니까?"하고 단도 직입적으로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백부는 너무도 황망해 했다. 나는 백부의 그처럼 딱해 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얼른 그 자리를 피해 나와 버리고 말았지만 내가 그렇게 물어본 데는 분명 밖에서 들은 이야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백부는 백범쪽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당시의 백범은 단정을 끝내 거부하고 남북협상을 위해 평양을 다녀온 뒤였다. 정치적으로 완전 고립이 되어 안으로는 동지들이 흩어졌고 밖으로는 용공 내지는 좌익으로 몰려, 이른바 그쪽 사람들은 비로 쏠리듯 축출을 당하고 있었다. 한민당 쪽에서 나온 그때의 성명서를 보면 백범을 좌익세력으로 분명히 못을 박고 있었다.


그 무렵이었다. 나는 뒤꼍 채마전에서 종일토록 서성이시거나, 아니면 다락에서 서궤 안의 책을 온통 끄집어내 그것에 묻혀 저녁까지 내려오지 않으시던 백부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밤새껏 꺼지지 않는 사랑채의 불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때가 아마 9월 중순은 훨씬 넘었을 게다. 곤한 잠에서 번쩍 눈을 뜨고 보니 백부가 머리맡에 앉아 계셨다.

"옷을 입어라"

분명 자정은 넘었을 시간이었다.

"밖에 나가 마차를 타라, 집에가면 습기없는 쪽으로 광에 잘 보관해 두도록 하고..."

마차에는 다락 위에 있던 서궤 3개가 나란히 실려있었다.

60리 길이었다. 미리 알고 있었던지 집에서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눈치였다. 서궤를 광으로 옮길 때 나는 습기가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우리 집 광으로 백부의 서궤가 옮겨진 뒤 세상은 급하게 변해갔다. 6.25 동란이 났고 4.19의거가 터지고 그리고 어느 날 자유당 정권도 이승만 박사도 물러났다. 문득 백부도 가셨다. 곧 가져가마고 하셨던 그 서궤를 잊은 듯이 그대로 놓아둔 채.


나는 백부가 돌아가신 뒤에야 그 서궤를 열고 속에 있는 책들을 모두 꺼내보았다. 갈피를 열어 볕을 쬐이며 나는 백부와 오랜 얘기들을 나눌수가 있었다.


그런데 서궤 맨 밑바닥쯤에서 커다란 한지 봉투 하나를 발견하고는 나는 그만 실성한 사람이 되어 온 집안을 헤집고 다녔다. 그 안에는 몇장의 서찰과 함께 바로 백범의 그 유묵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한 번도 햇빛을 보지 못했던, 그리고 한 번도 주인의 손에서 보듬어지지 못했던 이 불운의 유묵이 이렇게 불쑥 내앞으로 나타나다니.

 

盟山草木知

誓海魚龍動


백범체라 불려지기까지 했던 그 특유의 필치였다. 한 자 한 자에 서린 활연하고도 장쾌한 숨결, 웅혼한 기상, 꿈틀거리는 투지가 결코 70노부의 몸짓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산과 바다를 일깨운 한 거목의 맹세를 백부의 그릇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가 없었는지 모른다. 좌우의 의미도 분간되지 않았던 한 시골의 소박한 관리로서, 끊임없이 이는 이념의 회오리바람을 이겨낼 방도가 없었는지 모른다. 백범 소리만 나와도 몸둘바를 몰라했던 소심한 가장으로서, 풍운을 부르는 그 유묵을 그대로 품고 있을 수는 더욱 없었을는지 모른다. 지금에 와서 백범이 오히려 우익 보수주의자로서 매도되는 저 거리의 소리들을 알 까닭은 더더구나 없었을 것이다.


바위인 양 굳고 화산인 양 불길을 뿜어내는 백범의 그 유묵을 대할 때마다 그 앞에서 땀을 흘리며 쩔쩔매고 서 계신 왜소하기 그지없는 백부의 모습을 영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어느 사이 그 백부 곁에는 그보다도 오히려 더 초라하고 왜소한 나 자신이 함께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거리는 오늘도 소란하기만 한데, 작은 그릇으로도 맘 편히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아직도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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