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수필 산책

혀의 축제/ 김선화

이예경 2009. 8. 19. 21:18

 

 

혀의 축제

김선화

 

연전, ‘상처와 치유’라는 주제의 한국현대미술전을 둘러보았다. 회화뿐 아니라 다양한 소재의 판화나 조각품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크고 작은 출품작들 중엔 철과 특수시멘트로 이루어진 작품 ‘춤추는 혀’가 매우 이색적이었다. 등걸을 휘감은 거대한 나무뿌리처럼 역동성으로 다가온다. 혀가 한차례씩 춤출 때마다 나타나는 여파는 어떠한 것들일까.

그야말로 혀의 축제다. 사랑일 수 있고 송곳일 수 있는 혀. 그 현란한 춤사위에 누구는 천상으로 또 누구는 벼랑으로 길이 갈릴 것이다. 사람의 키보다도 큼지막하게 만들어놓은 혀 앞에서 가슴이 위축되는 걸 보니, 나도 혀로서 죄를 지었나보다. 게다가 바닥에 닿아있는 가느다란 혀끝은 한껏 기를 모은 기세다. 금세라도 무슨 말인가가 튀어나올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살아오는 동안에 무슨 말을 얼마나 쏟으며 지나왔을까. 아무리 말수가 적은 사람이라 해도 무수히 흘러가버린 말을 다 헤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혹시라도 내 무딘 말솜씨에 상처 입은 이가 있다면, 이 짧은 혀의 방종을 탓하고 싶다. 허나 마음에서 말이 나온다는 이치를 따져보면 혀의 방종은 곧 마음의 방종이다. 그럼 이제라도 그들에게, 마음 잘못 부린데 대한 용서를 구해야겠다.

세상엔 말로 인하여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득보다는 해가 되는 쪽으로 기우뚱한다. 이런저런 말 중에서도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말은 시샘이 낳은 독언(毒言)이다. 특히 여성들 세계에서는 그걸 배제하기 어렵다. 여성이란 태초부터 ‘시샘동이’를 몸에 품고 난 것은 아닌지 의아할 때도 있다.

그러나 혀가 하는 일이 늘 고약스러운 것은 아니다. 말을 하는 혀가 다소 가벼운 느낌이라면, 행위를 나타내는 혀는 그와 반대이다. 백 마디, 천 마디의 말을 덮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럴 때의 혀는 한없이 묵직하다. 속 깊고 정 많은 연인을 떠올려보라. 남과 여의 달콤한 입맞춤…. 그때 비로소 혀의 축제는 무르익는다. 시샘에 겨운 독소 따위는 한낮 물거품이 된다. 혀로 인한 만 가지 상처가, 혀에 의해 치유되는 순간이기도하다. 이것이 진정한 혀의 축제다. (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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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 金善化 (예명-金宣和, 호-遲松)

『月刊文學』신인상에 수필(1999), 청소년소설(2006) 당선

 

<수상>

제1회 한하운문학상 수필대상

제3회 대한문학상 詩본상

제4회 代表에세이문학상

제27회 한국수필상

 

<저서>

수필집 :『둥지 밖의 새』『눈으로 보는 소리』

『소낙비』『포옹』『아버지의 성(城)』

시집 :『눈뜨고 꿈을 꾸다』『꽃불』

 

국제Pen클럽, 한국문협, 한국수필가협회, 수필문우회, 대표에세이 회원

『한국수필』, 『選수필』편집위원